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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투자에서 시작된 8년의 동행

“아직도 채권 7인방이 남아 있다” 스타트업 지원하는 투자자 임성중의 플레이리스트
등록 2026-03-30 16:11 수정 2026-03-30 16:24
개발자 출신 스타트업 투자자 임성중씨는 특유의 표정과 구도로 커뮤니티 단체사진을 남긴다. 스페인 MWC(왼쪽)와 미국 CES(오른쪽)에서 찍은 사진. 임성중 제공

개발자 출신 스타트업 투자자 임성중씨는 특유의 표정과 구도로 커뮤니티 단체사진을 남긴다. 스페인 MWC(왼쪽)와 미국 CES(오른쪽)에서 찍은 사진. 임성중 제공


 

개발자 출신 스타트업 투자자 임성중(제이콥). 시작은 소셜벤처를 하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다.

“처음엔 믿음으로 임시 융통해준 것이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돈이 묶였죠. 채권자가 되고 보니 선택해야 했습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이들이 일어설 수 있게 끝까지 밀착 지원할 것인가.”

자본의 세계에서 ‘채권’은 가장 차가운 단어다. 숫자가 어긋나면 관계도 냉정하게 잘려나간다. 그런데 임성중은 빌려준 돈을 못 받고도 그 사람들의 사업을 계속 도왔다. 뺨을 맞고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처럼. 그는 스스로를 농담처럼 ‘채권형 액셀러레이터’라 부른다. 8년 전, 굿네이버스 등 비정부기구(NGO)와 소셜벤처 자문을 하던 그는 오랜 친구들의 뜻 좋은 사업에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사업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돈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는 그들과 관계를 끊지 않았다.

이 경험을 계기로 3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펀드를 운영했다. 지에스아이시(GSIC·Global Startup Investor Club) 대표로서 14개 기업에 투자 중인 그는, 단순히 자금을 수혈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올해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 ‘시이에스(CES) 2026’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이동통신 박람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직접 가서 한국 스타트업을 글로벌 무대와 연결했다. 투자한 기업이 실제로 흥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사실 임성중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그는 늘 여러 커뮤니티를 오가며 바빴다. 미래의 조직 구조를 연구하며 커뮤니티 연대를 꿈꾸는 ‘다오랩’(DaoLab), 인공지능(AI)을 도구 삼아 비개발자도 코드의 세계를 항해하게 돕는 ‘바이브 코딩 길드’, 그리고 우리가 매일의 삶을 기록으로 다듬는 ‘회고 모임’ 등. 지인들 사이에서 “제이콥은 세쌍둥이”라는 농담이 돌 만큼 그는 늘 연결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저 마당발인 줄로만 알았던 그의 삶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 건, 함께 회고 모임을 하면서였다. 그의 일기에 ‘채권’이란 무거운 단어가 나왔을 때 멈칫했다. 그런데 그 무거운 단어 뒤에 그에게 원망이 없었다는 것이 마음을 울렸다. “잘 안되는 건 기본이고, 잘되면 기쁜 거예요.”

임성중이 수많은 커뮤니티를 넘나들며 사람을 엮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이를 최근 ‘입길에 오른’ 유시민의 에이비시(ABC) 이론을 빌려 설명한다. 가치를 좇는 A, 이익을 좇는 B,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C. “가치와 명분(A)만으로는 버텨지지 않아요. 실리(B)만 좇다가 사기로 끝나는 경우도 봤죠.” 10년 넘게 소셜벤처의 부침을 목격한 그의 결론은 간결하다. A와 B를 이어줄 C의 디엔에이(DNA)가 많아져야 한다는 것. 그가 바쁘게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건, 결국 가치와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C 타입’의 기업가를 발굴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다.

임성중은 2026년을 ‘주빌리'라 부른다. 성경에서 7년의 안식년이 일곱 번 반복된 다음 해인 50년째, 모든 빚이 탕감되고 땅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오는 해방의 해다. 그에게는 아직도 채권 7인방이 남아 있다. 임성중은 차가운 자본의 논리 안에서도 끝내 연대의 방식을 찾는다. 실패를 보고도 냉소하지 않고, 매일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오는 사람이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임성중(@jacob.lim21)의 플레이리스트

 

1. 전화성의 CNTV

씨엔티테크 전화성 대표가 매일 아침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곧 1300회를 맞이한다. 꾸준한 기록은 제이콥이 믿는 ‘지속성’이라는 커뮤니티의 교본이다.

 

2. 찰리 채플린 모던타임스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찰리 채플린이 깃발을 든 건 우연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따라왔다. 임성중은 스스로를 그 우연한 깃발지기라고 믿는다.

 

3. 보다(BODA)

‘왜 그럴까'를 끝까지 파고드는 채널. 전문가의 깊은 통찰(A)을 대중의 언어(B)로 풀어내는 콘텐츠. 그가 지향하는 ‘C의 소통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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