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 타이완 여행기’, 대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

대만(타이완) 작가 양솽쯔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전미도서상과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잇달아 받았다. 이 책을 번역한 김이삭 작가는 “백합 소설 장르의 편견을 깨고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니, 덕후 주식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제공
“덕후 주식 성공이었죠.”
번역가 김이삭은 최근 몇 달을 이렇게 요약했다. 오랫동안 한국에 소개하고 싶었던 대만(타이완) 작가 양솽쯔의 소설 ‘1938 타이완 여행기’가 전미도서상과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잇달아 수상하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한 ‘백합 소설’(여성 인물들 간의 애정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가는 장르를 가리키는 일본식 표현)이 장르의 경계를 넘어 최고 권위의 문학상까지 도달한 사례다.
이 작품은 독특한 메타 구조를 가진다. 일본인 작가 아오야마 치즈코가 1938년 대만을 여행하며 통역사 왕첸허와 관계를 맺고 이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이후 그 텍스트를 왕첸허가 중국어로 번역하고, 현대의 양솽쯔가 이를 발굴해 주석을 붙여 출간했다는 식의 ‘가짜 번역본’ 구조다.
“기획과 형식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랑 연결될수록 뛰어나다고 생각하거든요. 대만의 식민지 역사를 메타적 허구라는 형식을 통해 훨씬 입체적으로 전달한 셈이라서 감탄했죠.”
대만의 출판사 역시 이 메타적 설정을 그대로 살려 마케팅을 진행했다. 덕분에 출간 당시에는 이 설정에 완전히 속은 독자가 적지 않았다. “진짜 100년 전에 쓰인 소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다 거짓말 아니냐는 댓글이 엄청 달렸어요. 저는 그런 반응도 되게 재미있었어요.”
그가 보기에 ‘1938 타이완 여행기’는 오늘날의 대만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텍스트 가운데 하나다. “우리는 단교 이후로 오늘날의 대만을 잘 모르거든요. 관광은 많이 가고 편의점에서 뭘 파는지는 아는데, 정작 대만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는 잘 몰라요.”
그는 오늘날 대만의 젊은 창작자들이 정체성 문제에 깊이 천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민지 시기와 국민당 통치, 2·28 사건, 그리고 2014년 해바라기 운동을 거치며 대만 사회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1938 타이완 여행기’는 193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은 그 질문들에 대한 현재형의 답변이다.
김이삭이 양솽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19년 대만의 창작 집단 ‘타이베이지방이문공작실’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였다. 그들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민간 설화 등을 조사해 서사를 부여하는 창작자였다. 미팅 도중 그들이 “네가 딱 좋아할 만한 동인지”라며 건네줬는데, 그 동인지에 객원 작가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신인 작가 양솽쯔였다. “역사 백합을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이건 너무나 내 취향이다’ 싶었죠.” 그리고 이듬해 ‘1938 타이완 여행기’가 대만에서 출간됐다. 하지만 한국 출판계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식민지 시기가 배경이고, 일본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양솽쯔와 ‘1938 타이완 여행기’를 소개했고, 마침내 출판사를 설득할 기회를 얻었다. “다른 일 다 미뤄놓고 검토 보고서를 썼어요. 이 작품이 왜 필요한지, 어떤 독자가 읽을지, 어떤 리스크가 있고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까지.”
당시는 2024년 전미도서상 수상 전으로, 영어권에서도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전이었다. “(계약서) 도장 찍기 직전에 전미도서상 후보에 오른 거예요. 진짜 걱정됐죠. 혹시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곳에서 출판하게 되면 어떡하나. 그런데 계약하고 나서 상을 받았어요.”
번역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자, 그는 의외로 작품 마지막의 후기를 꼽았다. 실제 양솽쯔는 쌍둥이 자매와 함께 활동했다. 언니는 글을 쓰고 동생(양뤄후이)은 번역과 연구를 맡았으나, 동생은 2015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언니가 글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썼으면 좋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런데 ‘1938 타이완 여행기’ 속에서 동생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소설을 번역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죽은 동생이 아직 살아 있고, 이 작품을 번역했다는 설정으로 동생을 작품 속에 살려놓은 거예요. 동생이 번역을 시작한 날짜가 소설에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는데, 그게 실제로 동생의 기일이에요. 저도 동생을 하늘나라로 보낸 경험이 있어서 울면서 번역했어요.”
한국판 출판 과정에서 출판사는 작가에게 한국 독자를 위한 ‘작가 서문’을 요청했다. 작가는 고민 끝에 김이삭에게 의견을 구했고, 그는 이를 만류했다. 작가의 말이 등장하는 순간, 이 메타적 설정과 동생을 향한 애도의 문학으로서의 의미가 깨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판에는 작가의 말 대신 김이삭 번역가의 후기가 실렸다.
그가 이토록 완벽하게 작품의 결을 지켜낸 이유는 문학 번역을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일이 아닌 ‘가장 깊은 독해이자 새로운 창작'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문장을 하나하나 옮기며 자료를 조사하고 작가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품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국내에 이미 번역 출간된 중화권 도서만 읽어도 충분할 법하지만, 그가 여전히 답답함을 뚫고 원문을 먼저 찾아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외 작품이 한국에 선택되어 들어오는 건 전혀 다른 맥락이에요. 동시대의 이야기가 여러 필터를 거쳐 들어오면 너무 늦거든요. 저는 번역 문학이 수입된 나라에서 새로운 맥락을 얻고,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학사적 계보를 새롭게 구성해나가는 불일치의 매력을 되게 좋아해요.”
김이삭은 이에 대한 흥미로운 예시로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를 들었다. “최근 이 책이 대만에서 출간됐어요. 우리에게 ‘고래’는 과거 작품이라 동시대적 맥락으로 읽히기 어렵지만, 대만에서는 지금 이 순간 가장 뜨거운 ‘동시대 한국 작품'으로 수용될 수 있어요. 들어온 시기와 현지 독자의 니즈가 다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번역 문학만의 묘미죠.”
‘1938 타이완 여행기’는 그가 한국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새로운 계보’의 중요한 퍼즐이었다. “기존의 틀에 박힌 책들만 들어오면 문학의 스펙트럼이 좁아지잖아요. 다양한 목소리와 낯선 시선이 더 많이 소개돼야 생태계가 풍성해지고, 제가 사랑하는 장르문학이라는 ‘본진’도 국내 시장에 단단히 안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옮길 때도 더 많은 사람이 장벽 없이 읽을 수 있도록 ‘가독성’에 가장 큰 포커스를 두었습니다.”
현재 그는 본인의 다음 소설책은 물론 한국과 대만의 작가들을 연결하는 양국 동시 출간 앤솔러지와 연극 교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좋은 작품을 번역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어 새로운 작품과 창작자들이 서로 마주하게 하는 일. 김이삭의 시선은 이미 한 권의 책, 그 너머에서 이어질 다음 이야기를 향하고 있다.

번역가 김이삭. 김이삭 제공
■ 김이삭 번역가의 플레이리스트
1. https://youtu.be/CmDgB7q6ISA?si=JZtrFqoUXT_LMr30
대만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을 꼽으라면 항해의 여신 ‘마조’일 겁니다. 북송 시기의 실존 인물 묵낭은 바다가 인접한 지역의 작은 신으로 모셔졌다가 이주민과 함께 멀리 다른 곳으로도 퍼졌습니다. 대만에서 ‘마조’는 항해의 여신보다는 디아스포라의 신에 더 가깝습니다. 대만 원주 종족을 제외한 사람 대다수는 ‘마조’와 함께 대만으로 넘어왔던 이주민의 후손이니까요. 이주민들은 위험한 이주의 과정(항해)에서 자신들을 지켜준 여신에게 모든 걸 기원하기 시작했고, ‘마조’의 신격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마조’의 탄신일이 다가올 때면 대만 곳곳에서 종교 행사가 열립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행사는 마조 신당에 모셔졌던 신상이 원래 구역에서 벗어나 경계를 지나는 ‘라오징’일 겁니다.
2. https://youtu.be/feOq6MWeUXA?si=htKPlQeaghbRZWW3
화어권 음악 덕질을 25년 정도 했는데, 지금 제 본진은 채의림(차이이린)입니다. 여러 노래를 좋아하지만, 아티스트로서 채의림에게 공감하고 지지하게 된 건 이 노래 ‘장미소년’ 덕분이었어요. 학교에서 죽은 대만 청소년 엽영지에 대한 노래로, 퀴어 청소년을 향한 애도의 노래이자 조심스레 건네는 위로의 노래입니다.
3. https://youtu.be/CGFJeBjfVNc?si=mbo0eLZNyG6RPJtW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습니다. 주로 이런 글을 쓰고, 이런 글을 읽습니다. 대만 역사와 괴력난신을 엮어 민속적 선율에 담아 부르는 대만 인디밴드 ‘동근생’의 노래를 아주 좋아합니다. ‘동근생’은 한국과도 나름대로 관련이 있어요. 이날치밴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한국 괴담과 관련한 노래도 냈습니다. 한국의 ‘콩콩콩 귀신’을 재해석한 ‘동동’이 그러합니다.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김수진 소셜저널링 ‘66데이즈’ 대표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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