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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관계의 미학을 추앙해

연결마저 자본화된 시대, 유쾌한 감정 수집가 제니가 제안하는 만남의 기술
등록 2026-04-23 20:37 수정 2026-04-26 10:52
15년차 마케터 제니(신가은)는 “사람을 기대하고 오지만, 사람을 자산화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하는 여러 독특한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아침 커피챗에 참여하는 신가은. SMCC 제공

15년차 마케터 제니(신가은)는 “사람을 기대하고 오지만, 사람을 자산화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하는 여러 독특한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아침 커피챗에 참여하는 신가은. SMCC 제공


“주위 5명의 평균이 곧 나라고 하잖아요. 그 평균을 계속 깨주는 게 커뮤니티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서울 용산구 어느 카페. 아침 8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낯선 사람들이 삼삼오오 마주 앉는다. 명함 교환도 없고 “또 만나요~!”라는 작별 인사도 없다. 호스트가 준비한 그날의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나누고, 각자 흩어질 뿐이다. 아침을 깨우는 커뮤니티 SMCC(서울모닝커피클럽)의 한 장면이다. 이 자리에서 유쾌한 공기를 불어넣는 호스트 중 한 사람이 신가은(제니)이다.

제니는 15년차 마케터로 여러 독특한 캠페인을 이끌어왔다. 그가 꾸리는 모임은 ‘공간 선정'부터 남다르다. 대형 프랜차이즈는 거의 찾지 않는다. 통유리로 햇살이 드는 곳, 동그란 테이블이 모여 있어 대화가 트이는 곳, 사장님의 미감이 묻어나는 곳이 우선이다. 마치 디제이가 음악의 질감을 고르듯, 제니는 공간의 질감을 모아 지도 위에 핀을 꽂아 수집한다.

새로운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제니의 상상이 시작된다. ‘ENFP들이 모여 윷놀이 판을 열면 어떨까?’ ‘세븐틴 덕질 메이트들과 호들갑 감상 모임을 하면 어떨까?' 그림이 그려지면 곧장 판을 짠다. 인터뷰하던 날에도 새 아이디어가 반짝였다. 6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이것은 개념미술이 (아니)다’ 전시에 맞춰 디저트를 곁들인 프리뷰 모임 ‘이것은 티라미수가 아니다'를 열어보겠다는 것이다. “와주시는 분들의 시간은 특별하잖아요. 그래서 킬링 포인트 하나는 꼭 넣으려고 해요.”

15년차 마케터 제니(신가은)는 “사람을 기대하고 오지만, 사람을 자산화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하는 여러 독특한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신가은 제공

15년차 마케터 제니(신가은)는 “사람을 기대하고 오지만, 사람을 자산화하지 않는 공간”을 지향하는 여러 독특한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신가은 제공


 

제니의 아침이 카페에서 시작된다면, 밤은 일기장에서 마무리된다. 하루 끝에는 온라인의 어느 한 정원에서 낯선 이들과 일기장도 나눈다. 씩씩데이즈(66DAYS), 66일 동안 같은 주제로 일기를 나누는 소셜 저널링의 풍경이다. ‘오늘 내 하루는 엉망이었는데, 누군가는 같은 하루를 또 다른 결로 살아냈구나.' 서로의 일기를 합법적으로 훔쳐보다보면 환기가 되면서 오늘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 서로 짧은 댓글 한 줄을 남기면 어느새 하루가 마감된다.

제니가 씩씩데이즈에서 기획한 ‘유쾌 정원'은 참가자들이 66일간 자기다워지는 공간을 하나씩 모으는 프로젝트다. 나를 설레게 한 공간, 어쩐지 떠나고 싶은 공간, 누군가와 소중한 기억이 깃든 공간. 누구는 햇살 드는 카페를, 누구는 어두운 바를 꼽는다. 그리고 이 공간이 기분을 어떻게 바꾸는지 서로 이야기한다. 제니의 지도를 따라 걷던 이들이 이제 각자의 큐레이터가 되는 셈이다. 그렇게 쌓인 지도는 알고리즘의 동선과는 전혀 다른 모양을 띤다.

소셜미디어가 더 이상 소셜하지 않은 시대, 우리는 연결마저 자본화된 시대를 살고 있다. 알고리즘 사이로 광고가 끼어들고, 인공지능(AI)마저 자본의 언어에 가세한다. 그 틈에서 진짜 연결은 점점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일수록 얼굴을 마주하고 커피를 나누는 자리, 낯선 이의 일기 한 줄이 곁에 놓이는 자리가 우리를 진정으로 연결한다. 그래서 제니가 좋아하는 커뮤니티는 “사람을 기대하고 오지만, 사람을 자산화하지 않는 공간”이다. 제니가 지도 위에 꽂는 핀 하나는 결국 누군가가 진짜로 만날 자리다. 거기서 매일 아침, 그리고 매일 밤, 몇 사람의 하루가 한 뼘씩 가까워진다.

 

김수진 컬처디렉터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제니(@jen2shin)의 플레이리스트

 

1. 냥숲

https://youtube.com/@nyangsoop?si=HT-qqO4NHvGRxJ_L

정갈한 루틴과 냥숲의 취향이 가득한 공간을 조용히 엿보는 재미.

 

2. 오늘의집

https://youtu.be/S3DO18D6L0Y?si=pXPYVmnQP0i7hZlL

처음 내 공간을 마련해 좋아하는 것들로 공간을 채워가던 시기부터 꾸준히 보고 있어요. 공간 활용 팁과 아이템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거든요. 카니가 방문한 우리 집도 여기에 소개된 적이 있어요.

 

3. 가비 걸

https://youtube.com/@gabeegirl?si=VvDacy3pI9qsYPVw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한 그녀. 퀸의 마인드는 이런 것. 한 수를 넘어 두 수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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