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잔인한 낙관’ 스틸컷. 신목야 감독 제공
친구가 만든 영화 ‘잔인한 낙관’이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올랐다. 다큐멘터리 대학원에 다니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던 신목야 감독이 마침내 빚어낸 결과물에 친구로서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다정하지만은 않았다. “꺼드럭의 향연”이라는 관객의 날 선 한 줄 평. 누군가는 이 영화가 미술계의 허세를 비판한다 했고, 누군가는 그 허세를 비판하는 척하는 또 다른 허세라고 꼬집었다. 어제의 지망생이 오늘의 데뷔 감독이 되어 대중의 도마 위에 발가벗겨진 채 올려진 풍경.
영화는 메인스트림 데뷔를 앞둔 작가와 기획자들이 얽힌 미술계 생태를 비춘다. 그 안에는 성공을 향한 열망, 얄팍한 허세,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사교술이 달콤씁쓸하게 뒤엉켜 있다. 관객이 ‘꺼드럭’이라 인식한 그 기묘한 공기는, 사실 예술이라는 우아한 외피를 뒤집어쓴 처절한 생존 투쟁에 가깝다. 영화의 제목 ‘잔인한 낙관’(Cruel Optimism)은 미국의 문화이론가 로런 벌랜트의 동명 저서에서 따온 것으로, 애착의 대상 자체가 더 이상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됨에도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정동을 뜻한다.
나를 망가뜨리는 줄 알면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매달리는 슬픈 희망 고문이다. ‘버티면 언젠가 빛을 보겠지’라는 믿음이 영혼과 일상을 착취해도 우리는 그 동아줄을 놓지 못한다. 그 꿈을 놓아버리는 순간, 간신히 버텨온 내 삶의 이유와 정체성마저 통째로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스크린 속 인물들의 이야기인 동시에, 감독 스스로가 온몸으로 통과해온 궤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얄팍한 자기 연민이나 감정 과잉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다.
“나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든 게 아니야. 훌륭한 서사, 폭발하는 연기력, 화려한 미장센의 영화는 아니거든. 그냥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읽었던 책, 내가 익숙하게 자리하는 술자리, 내가 본 군상, 나의 행동 모습. 그런 것들이 영화에 객관적으로 배치되게 하려고 노력했어.”
사람은 자기 안에 없는 걸 만들어낼 수 없다고 한다. 가끔은 세상이 요구하는 ‘나답게 하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답게 하란 말인가. 하지만 창작자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란 내 허세와 지질함까지 다 품은 ‘지금의 나’를 가감 없이 마주하는 일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참 ‘그답게’ 만들어졌다.

영화 ‘잔인한 낙관’ 스틸컷. 신목야 감독 제공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 대체 왜 그토록 고되게 영화를 찍는 걸까. “나는 이 시대가 너무 궁금하고, 이 시대를 관통하는 역동적인 한 사람이 되고 싶어. 다들 그런 생각 하고 살지 않아?” 무심히 던진 그의 반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이 시대가 진심으로 궁금한가.
어쩌면 우리는 끝내 나를 갉아먹을지도 모를 애착, 그 눈부시게 잔인한 낙관 하나쯤은 기꺼이 품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관객의 조소마저 서사의 일부로 쿨하게 끌어안은 채, 그는 다음 시대의 맨얼굴을 기록하려 또다시 고통스러운 객관화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지금, 그답게 시대를 뚫고 나가는 유일한 방식이기에. 왓챠피디아의 5점 만점에 4점짜리 댓글을 응원으로 보낸다.
“꺼드럭은 때로는 그 자체가 극으로 달하면 멋질 수 있다. 본질은 다 멋있자고 하는 거 아니겠어?”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신목야(SHIN Mokya) 감독의 플레이리스트
1. https://www.youtube.com/watch?v=seYfmj3L2EA&list=RDseYfmj3L2EA&start_radio=1
Yunchan Lim - Bach: Goldberg Variations, Aria (Official Video)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아리아'다. 시나리오를 쓸 때나 편집하다 쉴 때, 혹은 오가는 지하철 안에서 글렌 굴드의 피아노를 즐겨 듣는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백마저 물리적 질감으로 다가오는 경이로운 4분이다.
2. https://www.youtube.com/watch?v=w_mqAZnPcn0
everything is dying...
영화 미학과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하던 채널 ‘시네마 카르토그래피’(The Cinema Cartography)가 ‘더 하우스 오브 타불라'로 정체성을 전환하며 남긴 영상이다. 자본과 조회수를 위한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가벼운 소셜미디어의 문법을 거부하고 타협 없는 예술적 무결성을 지키겠다는 창작자의 묵직한 화두가 담겨 있다. 25분짜리 영상이 시작되자 끝까지 볼 수밖에 없었다.
3. https://www.youtube.com/watch?v=x6_mbnsh6VU&list=RDx6_mbnsh6VU&start_radio=1
GENER8ION - STORM starring Yung Lean
스웨덴의 래퍼 영 린(Yung Lean)이 출연한 제너레이션(GENER8ION)의 뮤직비디오다. 획일화된 제복과 디스토피아적 공간 등 규격화된 세계 속에서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시각적 타격감이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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