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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 7년 방치, 임신중지 여성이 뒤집어쓴 살인죄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나영 대표 인터뷰
등록 2026-02-26 21:27 수정 2026-03-03 17:00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제공


임신중지는 완전히 비범죄화돼야 한다. 양질의 임신중지 지원에 대한 접근성과 시의적절한 지원을 방해하는 규제, 정책 등의 장벽은 물론 실제적인 장벽도 제거돼야 한다. 여기에는 사유 기반의 접근 방식(특정 사유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임신중지 허용), (임신중지가 가능한) 임신 주수의 제한, 의무 대기 기간, 제3자(임신을 초래한 상대 남성, 여성의 보호자 등) 승인 요구 등이 포함된다. 또한 국가는 의료인의 신념을 이유로 한 지원 거부로 인해 발생하는 장벽으로부터 지원의 접근성과 지속성을 보호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22년 세계 각국에 권고한 지침(가이드라인) 중 일부다. 한국은 2024년 세계보건기구의 집행이사국(총 34개국)으로 내정돼 2027년까지 세계보건기구의 주요 사업 전략과 지역 종합계획(프레임워크) 등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런 나라가 2019년 헌법재판소의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위헌결정의 일종) 이후에도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가이드라인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임신중지를 선택한 여성을 살인죄로 처벌하려고 한다.(제1601호 참조) 2026년 2월3일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사진)를 만나 이런 모순된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듣고 2월24일 추가로 이야기를 나눴다.

―헌재의 위헌결정 뒤로도 정부와 국회의 직무유기가 7년째 이어지고 있다.

“헌재 결정에 따른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 정부와 국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공식적인 보건의료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두 기관이 아무 일도 안 해서 비밀상담을 하거나 의료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비공식적 관행이 유지되고 있고, 청소년을 비롯한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일수록 건강보험 미적용에 따른 높은 의료비 부담, 보호자나 파트너의 동의 요구, 시술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 부족 등 접근성 제약으로 임신중지 시기가 크게 지연되고 있다. 위기임산부 상담전화 1308은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를 안내하지 않는다. ‘러브플랜’(인구보건복지협회가 운영하는 정보제공 누리집)도 지금의 임신 주수에서 가능한 임신중지 방법이나 의료기관 정보 등 실질적인 정보 제공과 지원을 못하고 있다.”

―인터뷰 중에 2020년 형법에서 ‘낙태’ 처벌 조항을 삭제하고 ‘임신중지법’을 제정한 뉴질랜드 사례를 언급했다.

“뉴질랜드 보건부가 운영하는 임신중지 정보 누리집에 접속하면 사는 지역과 가까운 임신중지 서비스 제공 의료기관 위치, 그곳에서 제공 가능한 임신중지 시술 방법, 해당 기관에서 시술이 가능한 임신 주수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임신을 계속 유지할지 말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 상담받을 수 있는 기관이랄지 임신중지 비용에 관한 정보, 임신중지 방법에 따른 구체적인 의료 정보, 유산유도제 정보 등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보건부는 임신중지 임상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의료인들에게 배포했다.”

―임상 가이드라인의 주요 내용은.

“임신중지 시술 전에 의료인이 환자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와 안내사항, 의료적 준비사항, 충분한 정보 제공을 통한 의사결정 지원 지침, 유산유도제를 통한 내과적 임신중지와 수술적 임신중지 방법, 임신 20주 이후에 요구되는 의료적 조치 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다. 이를 통해 표준화된 진료 내용을 제시한다. 헌재 결정으로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된 이후에도 의료인이 모든 것을 각자 알아서 판단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너무 대조적이다.”

―검찰이 임신 34~36주 시기에 임신중지를 한 권아무개씨를 살인죄로 기소해 징역 6년을 구형했다.(3월4일 이 사건 선고공판이 열린다.)

“권씨는 방문한 여러 병원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해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을 들었을 뿐 어디에서도 임신중지가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태아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다. 결국 권씨가 접한 건 임신중지 병원을 알선하는 브로커(중개인)뿐이었다. 정부가 헌재 결정 이후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는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했다면 권씨가 지금 같은 상황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제도의 부재에 있다.”

―브로커의 개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임신중지 병원을 알선하는 브로커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2009년 말 프로라이프 의사회(당시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가 ‘낙태’ 시술 병원 고발에 나서고 정부 단속이 강화되면서다. 2010년에는 임신중지를 원하는 임신부를 유인해 성폭력을 저지른 브로커가 구속된 사건이 있었으며, 2013년에는 여성 20여 명에게 병원을 알선하고 수백만원을 챙긴 20대 브로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임신중지 불법화와 처벌 강화가 브로커를 양산한 것이다. 임신중지 비범죄화 이후에도 이런 브로커가 여전히 활동한다는 건 명백히 공식적인 보건의료 체계를 구축하지 않은 정부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은.

“앞으로도 한겨레21에서 같은 이슈도 고정된 틀을 넘어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심층 기사를 더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 관련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8803.html
<후기 임신중지 여성에 징역 6년 구형, 안전은커녕 범죄자 낙인 찍는 국가>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396.html
<임신중지 ‘안전망’ 6년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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