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2023년 4월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안락한 삶을 가지면 이해 못하는 일이 많아요. 우리나 선생님은… 그들을 판단 없이 맞이하기 위해 있는 거예요.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우리 일은 그들을 구하거나 교훈을 주기 위한 게 아녜요.”
책 ‘나의 임신중지 이야기’(오드 메르미오 지음, 이민경 옮김, 롤러코스터 펴냄, 2020)의 등장인물인 간호사 이본이 의사 마크 자프란에게 건넨 말이다. 임신중지를 결정한 여성들을 만나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해준다. 그러나 대한민국 법정 풍경은 정반대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중지한 여성을 법정에 세워 비웃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고압적인 질문으로 나무란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해 위헌 취지의 결정을 했는데도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은 국가가 살인죄로 기소한 20대 여성이 겪고 있는 피해다.
권아무개(27)씨는 임신 34~36주 시기인 2024년 6월25일 인천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에서 임신중지를 했다. 권씨는 임신 사실을 불과 나흘 전에 알게 된 것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임신중지를 하고 병원에 입원하면서 경험한 일을 약 2분40초 길이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다. 단순한 브이로그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는 권씨의 일상을 범죄로 매도했다. 권씨, 그리고 권씨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한 병원장을 살인죄로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2024년 7월12일 서울경찰청에 제출했다. 이후 진행된 수사 결과 병원장 윤아무개(81)씨와 집도의 심아무개(62)씨, 권씨가 2025년 7월23일 살인죄로 기소됐다. 더불어 권씨를 포함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을 병원에 소개하며 수수료 약 3억원을 취득한 브로커 한아무개(64)씨와 배아무개(35)씨도 같은 날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2026년 1월26일 서울중앙지법 311호 중법정에서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이 사건 결심공판이 열렸다. 피고인 신문 진행을 위해 권씨가 피고인석에서 증인석으로 이동했다. 앞선 재판 과정에서 병원장 윤씨와 집도의 심씨는 ‘제왕절개수술로 권씨 뱃속에서 꺼낸 아이를 냉동고에 넣어 사망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을 인정했다. 검사는 권씨가 이들과 공모했다고 주장한다.
남성 공판검사 “(임신중지 전에) 병원에서 상담할 때부터 (수술에 필요한) 전신마취를 하기 전까지 병원 상담실장과 의료진 등으로부터 임신중절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권씨 “아뇨, 없습니다.”
공판검사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태아의 생명이 어떻게 끊어지는지 알았어요?”
권씨 “그것도 몰랐습니다.”
공판검사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태아가 사망할 거라고 생각했죠?”
권씨 “그 부분은 생각 안 했던 것 같습니다.”
‘몸 밖으로 나온 아이가 윤씨와 심씨에 의해 사망할 것을 알고도 권씨가 묵인했다’고 보는 공판검사의 유도신문이다. ‘임신중지는 살인’이라는 낙인이 박힌 질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의 나영 대표를 2026년 2월3일 만났다. 셰어는 2024년 6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총 90명을 상담하며 국가가 방기한 임신중지 상담을 진행했다.
“살인하겠다는 생각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처한 복합적인 상황에서 ‘태어날 아이의 삶을 함께 책임질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내리는 결정이죠. 그런 고민 끝에 병원에 가서 임신중지가 잘 완료되기를 바랄 뿐이지, 태아가 살아서 몸 밖으로 나올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어요.”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008~2010년 미국 21개 주 30개의 임신중지 시설 대기실에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 1100여 명을 모집해 5년 동안 진행된 연구가 있다. ‘턴어웨이’ 연구다. 이 연구의 책임연구원인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는 책 ‘턴어웨이’(김보영 옮김, 동녘, 2021)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의 양적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임신중지를 선택한다. 출산의 시기와 환경이 아이에게 이상적이지 않거나 현재의 아이에게 이 상황이 부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홀로 아르바이트하며 생활하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단절된 권씨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주심판사 “출산이 아닌 임신중절수술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씨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서 아이를 행복하게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임신 당시 피임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아이가 기형아로 태어날까봐 많은 걱정도 있었습니다.”
양육의 현실적인 난관과 부담은 측량이 불가능하다.(책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가브리엘르 블레어, 성원 옮김, 은행나무, 2024)) 그러나 공판검사는 이런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낙태’라는 말까지 써가며 권씨를 압박하기 바빴다.
공판검사 “피고인은 관심이 없었죠? 태아가 살아서 나오는지 죽어서 나오는지. 수술 들어갈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죠? ‘낙태’가 중요했죠?”
권씨 “사산된다고 병원에서 안내해서 그 생각 자체를 못했습니다.”
공판검사 “태아가 사산하나 살아서 나오나 피고인에게 그게 중요한 문제였어요?”
권씨 “살아서 나온다고 했으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는 공판검사의 비난은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이 이를 어떻게 수습할지 고민에 빠지고, 걱정과 불안 속에서 숱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실을 지운다. 권력을 가진 안락한 삶이 이해하지 못하는 진실이다.
“(보통 임신부터 출산까지 소요되는) 10개월의 기간 동안 다양한 변수가 등장할 수 있어요. 출산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굉장히 복합적인 상황이 개입하죠. 그래서 원했던 임신을 중지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은 임신을 유지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임신을 초래한) 상대 남성이 함께 양육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해서 임신을 유지하다가 임신 12주차나 20주차 시기에 그 상대 남성과 헤어지거나 연락이 두절될 수 있고요. (임신한 여성 입장에서) 본인의 직장이나 학업 유지, 또는 주거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요. 가족이나 주변 사람이 임신중지를 요구할 때도 있고요. 상담을 하면서 보니 많은 (여성) 내담자가 상대 남성의 경제적 어려움을 책임지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원하지 않은 임신까지 하게 되면 임신 유지가 매우 큰 부담이 될 수 있죠.” 나영 대표의 말이다.
충분한 돈이 없어서, 임신을 초래한 남성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서, 키우고 있는 아이에게 집중하려고, 삶의 계획과 직업적 목표가 흐트러질까봐, 건강상의 위험 때문에…. 이처럼 여성이 임신중지를 고려하는 이유는 다양하다.(‘턴어웨이’)
임신 34~36주차에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권씨는 황급히 인터넷에서 후기(28~40주)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을 검색해 윤씨가 운영하는 병원을 알게 됐다. 이진관 부장판사가 물었다.
이진관 부장판사 “검색하셨을 때 ‘낙태’ 시술(구체적인 시술 방법)에 대해 검색한 적은 없다고 증언하셨는데, 맞나요?”
권씨 “네, 맞습니다.”
이진관 부장판사 “‘낙태’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보는데 그 시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검색은 안 해봤나요?”
권씨 “네.”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 네트워크’ 주최로 2023년 4월9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안전한 임신중지 보장해!’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그러나 임신중지 상담을 하는 여성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것은 시술의 해부학적 과정이 아니라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장소와 임신중지 가능 여부라는 것이 나영 대표의 설명이다. “특히 수도권 외 지역에 계신 분들은 ‘임신중지가 가능한 병원이 어디인지’를 많이들 물으세요. 그리고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약을 구할 수 있는지’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지’를 주로 물으시죠.”
임신중지가 가능한 의료기관 정보 제공, 보건소와 국공립 의료기관, 대학병원을 연결한 지원체계 구축은 복지부가 법률 제·개정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국외 여러 국가에서는 보건당국에서 이런 정보와 연계 체계를 구축하고 임신 주수에 따라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방법과 병원 정보를 안내한다. 의료인에게도 임신중지에 관한 임상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런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없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혹자는 ‘그래도 권씨가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출산해야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를 위한 길이 아닐 수도 있다. ‘턴어웨이’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아이는 기다림의 대상일 때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은 임신중지를 한 이후 새로운 아이를 가진 여성보다 확실히 낮은 유대감(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보였다. 예를 들어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은 ‘아이가 웃거나 미소를 지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라는 말에 동의할 확률이 좀더 낮았고, ‘엄마라는 역할에 갇힌 기분’이라고 말할 가능성이 좀더 높았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의 9%는 지표 아동(원하지 않은 임신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과 유대감이 좋지 않다고 답했는데, 이는 뒤이은 아동(임신중지 이후 새로운 임신으로 태어난 아이)에 대해서는 3%가 그렇게 답한 것과 비교되었다.”
‘입양’도 임신중지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언론에서 다루는 소수의 ‘성공한 입양 사례’와 달리 입양아는 성장 과정에서 정체성의 혼란과 차별을 경험하면서 자라는 경우가 많다. 여성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다.
여자는 엄마가 돼야 하고, 임신을 원치 않는 여자도 출산을 감수해야 하고, 일생의 양육 책임은 성관계한 여자가 감당해야 마땅한 ‘결과’ 또는 ‘처벌’이라는 논리(‘책임감 있게 사정하라’)가 권씨가 피고인으로 선 이 사건 법정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아이를 낳기 위한 존재가 아니다. 최소한 헌재의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취지의 결정 이후에 국회와 복지부가 마땅히 마련했어야 할 안전한 임신중지 체계가 있었다면 권씨는 피고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힘없는 개인에게, 그것도 ‘살인죄’를 뒤집어씌워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현장이 바로 이 사건 법정이다.
공판검사는 권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사건 선고공판은 2026년 3월4일 열릴 예정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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