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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엘리트 선수, 그는 칼로 무엇을 베려 했나

등록 2025-11-27 23:11 수정 2025-12-04 07:05
서윤지(가명)씨가 2025년 11월2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서윤지(가명)씨가 2025년 11월2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엄청 단단해서 깨지지 않는, 약간 검은색 기둥 같은 느낌의 물체에 그때의 고통과 감정이 들어가 있어요.”

한때 엘리트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던 서윤지(30·가명)씨는 ‘지금 어떤 심정인지 말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1년간 코치로부터 성폭행과 폭행 그리고 갖은 모욕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부모의 기대, 대학 진학, 올림픽 출전이라는 거대한 관문 앞에서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고통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했다. 그렇게 13년 전의 아픔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 한편에 쌓여 “단단한 검은 기둥”이 됐다.

그런 와중에 결국 일이 터졌다. 2025년 9월17일 저녁, 서씨는 고통을 마주하려고 찾은 스케이트장에서 자신을 성폭행하고 때린 코치와 우연히 마주쳤고, 호신용으로 들고 다니던 흉기를 꺼내 들었다. 국가가 인정하지 않았던 성폭력에 저항하듯 코치의 머리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서씨는 “검은 기둥이 계속 커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현행범으로 체포돼 범행을 인정한 그는 곧 법원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몸은 버텨냈지만, 마음이 온전치 못했던 시간이었다. 숱한 자살 시도와 자해 그리고 내면의 고통이 온몸에 문신으로 남았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회, 폐쇄적인 엘리트 체육 시스템, 지도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위력 구조, “사귀는 사이”라고 쑥덕거린 주변의 시선, 수사기관의 ‘위계에 의한 그루밍 성폭력’(피해자와 관계를 쌓아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적으로 가해 행위를 하는 폭력) 사건에 대한 몰이해 등이 피해자 서씨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한겨레21은 서씨를 포함해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 등 각종 소송 자료와 변호인 의견서를 토대로 살려고 발버둥쳤던 서씨의 지난 13년 삶을 재구성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이자 특수상해 가해자가 된 한 여성의 아픔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에게 들어봤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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