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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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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아웃사이더’의 대통령 당선, 남의 일일까

브라질 보르소나우 대통령 탄생기 좇은 넷플릭스 다큐 ‘열대의 묵시록’…극우 개신교와 극우 정치인의 결탁이 낳는 혐오 막으려면
등록 2025-10-16 19:20 수정 2025-10-23 11:21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예고편 영상 갈무리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넷플릭스 예고편 영상 갈무리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복음주의 개신교란 도대체 무엇인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보수정당은 보수 개신교 세력의 하위조직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12·3 불법계엄 이후 전광훈·손현보 두 극우 개신교 목사가 ‘반탄파’(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파)의 양대 리더로 세몰이를 하고,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은 그 앞에 쪼르르 달려가 앞다퉈 충성 맹세를 했다.

교회 눈치 살피는 정치인은 세계 공통

 

국민의힘만 그런가? 신실한 집사인 김민석 국무총리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소속 교회의 국회 앞 피켓시위를 함께 한 지 아직 3년도 지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계 인사가 성소수자·낙태에 관해 난데없이 문제적 발언을 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 열에 아홉은 개신교에서 주최한 조찬기도회나 간담회 같은 행사에 참석해서 한 발언이다.

누군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에 기초해 개신교의 뜻을 따르고 누군가는 믿음이 없어도 표를 좇아 그렇게 한다. 어느 쪽이든, 유력한 정치인들이 교회 눈치부터 살피는 일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새롭지도 않다. ‘이러다 신정국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과장 섞인 염려까지 들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염려가 정말 과장이 맞나? 정말 현실이 되지는 않을까? 아니, 이미 현실인 것은 아닌가?

이런 염려에 대해 아주 비관적인 전망에서 참고할 만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2025년 7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이다. 2010년대 중반 브라질의 정치적 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 룰라에서 탄핵까지’를 만든 페트라 코스타 감독의 후속작이다.

다큐멘터리영화 ‘열대의 묵시록’ 포스터.

다큐멘터리영화 ‘열대의 묵시록’ 포스터.


브라질은 어떤 나라인가. 지구상에서 가톨릭 신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2억 명 조금 넘는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가톨릭 신자다. 그만큼 가톨릭이 주류 종교로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에 균열을 내는 종교가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 내외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복음주의 개신교는 최근 20년간 급격하게 성장했다. 상대적으로 정치적 조직화에 덜 관심을 보이는 가톨릭에 비해, 복음주의 개신교는 노골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며 브라질을 뒤흔들었다. ‘열대의 묵시록’은 바로 이 상황을 다뤘다.

‘위기의 민주주의’까지만 해도 개신교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 기득권 카르텔의 집요한 음모로 전직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를 뇌물 혐의로 구속하고 현직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를 탄핵한 사건을 다뤘는데, 여기서는 보수정당과 경찰, 검찰그리고 사법부가 카르텔의 주요 일원으로 등장했다.

아웃사이더 보우소나루 승리의 비밀은

이 사건은 브라질을 그야말로 반으로 갈라버렸다. 극심한 혼란과 정치적 양극화가 지배하는 가운데 2018년 대선이 치러진다. 이 대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열대의 트럼프’라고도 불렸던 강성 극우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극단주의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결선투표제도 그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아웃사이더 보우소나루는 어떻게 브라질 정치의 중심에 서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는가? ‘열대의 묵시록’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작품이다. 감독의 대답은 간단하다. 복음주의 개신교가 급성장한 결과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작품은 복음주의 개신교 인사들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감독은 정치적으로 명백히 그들의 반대편에 서 있지만,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인지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인사들의 자택이나 회의실에 드나들며 촬영한 장면이 많다. 그 덕분에 그들의 날것의 말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뭐, 애초에 요즘은 밖에서 할 말과 안에서 할 말을 구분하지 않는 시대이긴 하지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내레이션에 따르면 브라질에서 복음주의 개신교 세력은 지난 40년 사이 급성장해 인구의 30%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30%라는 놀라운 세력화가 곧 보우소나루의 승리를 이끌었다. 개신교는 보우소나루의 선거 운동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보우소나루는 개신교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선거를 앞두고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까지 해야 했다.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개신교와 그들의 지원을 등에 업으려는 극우 정치인의 완벽한 결탁의 결과로 보우소나루는 대통령에 올랐다.

감독은 이 상황에 몹시 당황했던 것 같다. 도대체 언제 개신교가 이토록 성장했는가? 어떻게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갖게 됐는가? 어쩌다 정치가 종교에 이토록 복속되게 됐는가? 사랑과 관용의 종교가 어째서 공감 능력이라곤 조금도 없는 극우 정부의 지지기반이 될 수 있는가? 자전적 목소리로 진행되는 다큐멘터리는 이러한 질문에 나름의 답변을 찾아간다.

복음주의 세력이 처음 신자들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한 장면으로 감독이 가져온 것은 인상적이게도 성소수자 인권 반대 집회 장면이다. 2011년 무수한 군중이 모여 “우리는 절대다수”라며 ‘성소수자에 반대할 권리’를 요구한다. 목사는 마치 텔레비전 쇼의 과장된 진행자처럼 거친 목소리와 몸짓으로 발언을 쏟아낸다. 그리고 군중은 “단결된 교회는 절대 패배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연호한다.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라는 남미 지역의 고유한 사회운동 구호를 교회식으로 전유했다. 이들은 누군가를 배제하고 차별하며 성장 동력을 얻었다. 이 장면을 중요하게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다큐멘터리는 보우소나루의 당선을 지나 2022년 대선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사이 룰라는 실형 무효 판결을 받으며 정치적 권리를 회복했고, 재선에 나선 보우소나루를 꺾기 위해 다시금 대선에 나섰다. 가톨릭 신자인 룰라는 원래 정치와 종교를 철저히 분리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했다. 인구의 과반을 차지하는 가톨릭에 어필하면 표가 되지 않겠냐는 참모진의 조언에도 “교회와 성당은 기도할 때만 갈 것”이라 답하며 거절했다. 그러나 그런 룰라도 2022년 대선 과정에서 결국 교회를 찾아야 했다. 복음주의자들에게 낙태금지법을 유지할 것이며, 종교의 자유도 존중하겠노라고 편지까지 보냈다.

룰라의 초박빙 승리,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열대의 묵시록’의 한 장면.


 

2022년 대선은 룰라의 승리로 끝났다. 한 목사는 “룰라는 복음주의 사회에서 선택받을 수 없는 사람이므로 무조건 질 수밖에 없다”고 의기양양하게 얘기했지만, 자신들의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 같다. 다만 중요한 것은 격차다. 결선투표 끝에 50.9% 대 49.1%라는 초박빙의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룰라가 이겼지만 다음 대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통계자료는 2030년이 되면 개신교 비율이 40%까지 성장해 가톨릭을 역전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룰라의 당선으로 브라질의 총성 없는 전쟁은 중단됐다고 할 수 있을까? ‘열대의 묵시록’은 룰라 취임 이후 풍경까지 충실하게 담아냈다. 복음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한 보우소나루 지지 세력은 대선 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제는 세계적으로 하나의 유행이 된 ‘부정선거론’을 들고나와 대규모 거리 시위를 펼쳤다. “하느님, 국가, 가족 그리고 자유!”를 부르짖으며. 그리고 마침내 브라질 의회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당선 직후 미국 의회를 점령했고, 한국의 극우파들이 서부지법을 습격했듯.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박살 난 브라질 의회의 파편들을 천천히 훑는다. 두 눈을 가린 것으로 보아 정의의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이 목 부위가 부서진 채 뒤집힌 장면도 포착된다. 정의가 부서지고 뒤집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장면에서 뒤집힌 정의의 여신 모습은 어째선지 트럼프 대통령을 닮았다.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패배하자 일부 브라질 시민들이 의회를 습격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박살난 의회의 파편을 천천히 훑는다. 정의의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의 목이 부서진 채 뒤집힌 장면도 포착된다. 넷플릭스 갈무리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패배하자 일부 브라질 시민들이 의회를 습격했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박살난 의회의 파편을 천천히 훑는다. 정의의 여신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상의 목이 부서진 채 뒤집힌 장면도 포착된다. 넷플릭스 갈무리


‘열대의 묵시록’은 오직 브라질의 풍경만을 담아냈지만, 복음주의 개신교의 부흥과 정치 세력화는 세계적으로 발생한 현상이다. “미국을 하나님 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기독교 지키기’를 국정 목표로 내세운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성경 말씀에서 대한민국 헌법 체계가 나왔다”고 주장했던 윤석열 등 그 사례는 차고 넘치게 많다.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 다음날인 2022년 10월31일(현지시각),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상파울루 군시설 앞에서 군 개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 다음날인 2022년 10월31일(현지시각), 결선투표에서 패배한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상파울루 군시설 앞에서 군 개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얼마 전 암살당한 미국의 극우 활동가 찰리 커크 또한 전형적인 복음주의 개신교 인사였다. 그는 피살 닷새 전 한국을 찾았는데,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유시장경제를 의제화하는 단체인 ‘빌드업코리아’의 국제 콘퍼런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그는 일부 교회가 압수수색받은 사건을 알고 있다며 “한국이 지금처럼 행동하면 미국이 옳을 길을 위해 일어나서 싸울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세계 각국의 극우 개신교 세력이 서로 연결됐음을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다.

앞서 ‘열대의 묵시록’에서 개신교 세력이 성소수자 권리 반대 집회로 동력을 얻었다고 한 대목을 다시 떠올릴 차례다. 인종주의, 반이민, 반페미니즘, 반피시(PC·정치적 올바름)라는 공통된 반동주의가 극우적 복음주의와 결속한 결과 복음주의 개신교의 부흥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브라질에서 실제로 그랬고,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의 보수교계도 차별금지법 반대 캠페인, 그리고 한국화된 인종주의인 ‘혐중 선동’에 전략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모양새다.

차별·혐오와 어떻게 선을 그을 것인가

결국 우리가 극우 개신교의 부흥을 막아내기 위한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면, 그 전선은 분명히 차별과 혐오 선동이라는 전장에 그어지게 되리라는 얘기다. ‘열대의 묵시록’의 현지화 작품이 ‘한반도 묵시록’으로 탄생하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볼 것인가. 아니면 차별금지법 제정과 혐오 추방의 전선에 함께 서서 그 미래의 도래를 막아낼 것인가. ‘열대의 묵시록’이 담아낸 브라질의 경험은 우리에게 더 늦기 전에 싸움을 준비하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강남규 ‘토론의 즐거움’ 멤버·‘지금은 없는 시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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