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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 ‘특급대단지’는 어쩌다 통째로 공매에 넘겨졌나

9개월째 ‘텅텅’ 425가구·상가 2개실 통째 공매 절차… 너무 비싼 분양가에 도민·외지인 모두 ‘외면’
등록 2025-10-02 20:44 수정 2025-10-08 09:23
2025년 9월19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에 있는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 서보미 기자

2025년 9월19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에 있는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 서보미 기자


 

‘제주 최초 대단지 프리미엄’ ‘통경축이 접목된 하이엔드 특급대단지’

2025년 9월19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의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 입구에는 화려한 분양 홍보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하지만 펼침막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거니 “지금은 분양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완판’됐다는 뜻일까.

전국적으로도 이례적인 악성 미분양

2024년 12월 사용 승인을 받은 오션뷰의 ‘특급대단지’는 9개월째 텅텅 비어 있다. 준공될 때까지 전체 425가구 중 9가구만 분양됐는데, 그마저도 1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취소된 탓이다. 유일하게 분양받은 가구도 2025년 3월 분양대금을 돌려달라며 시행사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 중에서도 악성이다.

분양대금을 받지 못한 시행사(신한자산신탁)와 시공사(효성그룹 자회사 진흥기업)는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고, 결국 아파트 425가구와 상가 2개실 모두 2025년 8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공매 절차에 들어갔다. 최초 최저입찰가(물건이 팔릴 수 있는 가장 낮은 금액)는 약 4006억원으로, 감정평가금액(약 3336억원)보다 높게 책정됐다. 400가구가 넘는 중·대형단지가 통째로 공매 절차에 들어간 건 제주 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매우 이례적이다.

2025년 9월19일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의 출입구. 서보미 기자

2025년 9월19일 효성해링턴 플레이스 제주의 출입구. 서보미 기자


 

하지만 이미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통 크게 사겠다고 나설 구세주를 찾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캠코의 온라인 입찰 시스템인 온비드를 보면, 2025년 9월9일 시작된 입찰은 열흘 동안 네 차례나 유찰됐다. 경쟁에 뛰어든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최저가격 이상으로 써낸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네 차례 유찰되는 사이 최저입찰가는 약 3434억원으로 떨어졌다.

제주 지역에선 ‘제주 랜드마크 아파트’를 내세운 효성해링턴이 2023년 6월 분양을 시작했을 때부터 흥행에 참패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커뮤니티센터도 주차시설도 최고급인 아파트라지만, 분양가가 높아도 너무 높았다. 34평형(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가 8억9110만원에 달했다. 당시 도민들은 “어떤 제주 사람이 시내 외곽 아파트를 9억원 주고 사냐” “돈 있는 외지인만 살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절반만 맞는 예측이었다. 코로나19 엔데믹(감염병의 일상적 유행)으로 ‘제주살이 열풍’이 잦아들자 실거주·투자 목적으로 제주 부동산을 사려는 외지인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문제는 도민의 주거 문화와 맞지 않게 시내 외곽에 지어졌거나 지어지는 고급 타운하우스·빌라·연립주택들이 더 있다는 점이다.

‘제주살이’ 열풍 식으며 고가 공동주택 ‘공동화’

제주도 관계자는 “애월뿐 아니라 다른 읍면 지역에도 도외인(외지인)을 겨냥한 고가 공동주택들이 있다”며 “코로나 초기만 해도 (제주 이주 열풍으로) 대부분 분양이 됐지만, 지금은 주택시장이 좋지 않아 미분양이 생기고 있다. 그런 공동주택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서보미 한겨레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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