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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안에 갇힌 여자들

강화길 4년 만의 장편 ‘치유의 빛’
등록 2025-06-12 16:28 수정 2025-06-19 06:27


강화길이 돌아왔다. ‘치유의 빛’(은행나무 펴냄)은 강 작가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이다. 강 작가는 ‘괜찮은 사람’ ‘다른 사람’ ‘화이트 호스’ 등 여성이 겪는 공포스럽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꾸준하게 선보여 ‘한국형 여성 고딕 스릴러물’을 쓴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작품은 몸의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는 숨이 긴 소설로, 갇힌 공간 이야기에 특화된 작가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작가가 천착한 안진이라는 지역 소도시, 엄마와 딸, 학교, 종교 단체 등 폐쇄적 공동체의 여성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 갈등, 질투, 경쟁, 독점욕 등을 다룬다.

주인공 ‘지수’는 열다섯 살이던 가을, 엄청난 식욕 탓에 몇 달 만에 몸이 불어난다.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 했지만 그 몸 덕에 좋아하던 ‘해리아’의 눈에도 띄게 됐다. 어린 시절 커다란 몸을 없애버리고 싶던 기억을 뒤로하고 지수는 성인이 되어서도 ‘먹토’(먹고 토하는 일)를 반복한다. 스스로 역겹다고 느끼면서 살 빼는 약 펜터민(일명 나비약)을 삼킨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번갈아 겪지만 애인인 태인에게는 이를 숨긴다. 원하는 대로 몸을 만들고, 몸을 장악하는 감각을 뿌듯하게 느끼면서 살아간다.

지수는 어느 날 건강 문제가 생겨 휴가차 고향인 안진으로 향한다. 채소요리 세미나를 한다는 엄마의 입을 통해 지수는 오랜만에 친구 신아의 이름을 듣고 과거를 회상한다. 오래전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 물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아이, 해리아는 공부를 잘하고 아름다운 몸을 가졌지만 수영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다. 오랜만에 지수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신아와 해리아를 마주하는데….

오늘날 미용과 건강은 모두의 과제가 됐다. 현대인은 치유·통증·재생이라는 명목으로 자기 몸을 수정하고 교정하며 회복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 살아간다. 사이비 종교·치유 단체와 음울한 지역 소도시라는 공간도 폐쇄적이지만, 결국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갇힌 감옥은 각자의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장 공포스럽고 환상적인 사건은 가장 가까이에서 벌어진다는 점을 보여주듯 등장인물도, 치유 공동체도, 소설 속 소설 ‘힐라리아’ 이야기도 소름 돋게 익숙하다. 혐오·낙인·억압이 교차하는 몸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고통과 감각, 그 빛과 그림자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384쪽, 1만8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당신은 하마스를 모른다
헬레나 코번·라미 G. 쿠리 지음, 이준태 옮김, 동녘 펴냄, 2만2천원

세계 최고 하마스 전문가인 저자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인 하마스의 사상, 역사, 조직 등을 두고 대담했다. 2025년 5월28일 기준 팔레스타인 주민 사망자 수는 5만4천 명을 넘어섰다. 프로파간다에서 벗어나 하마스에 관해 균형감 있는 관점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감수했다.

 

 


우리 일의 미래
김봉찬 등 지음, 메멘토 펴냄, 1만9800원

정원(김봉찬), 생태/환경(박진영), 출판(한미화), 저널리즘(장일호), 페미니즘(손희정), 과학기술학(임소연)까지 2020년대 가장 뜨거운 분야 전문가 6명의 강연과 문답을 종합했다. 시민들의 참여와 관찰을 강조하는 것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점이 흥미롭다. 1인 출판사 모임 ‘출판하는 언니들’이 공동 기획·편집했다.

 

 


피뢰침과 스며듦
윤여일 지음, 돌베개 펴냄, 2만2천원

동아시아 연구자 윤여일이 지난 10년간 일본 교토, 제주 등지에서 연구한 바를 쓴 자전적 기록. 연구 조사와 논문 집필을 넘어 상황에 개입하는 연구자로서, 무언가를 써서 말을 건네는 자로서 경험과 고민을 담았다. 삶과 연구가 하나 되는 순간, 서로의 수동성과 능동성이 교직하는 순간의 가슴 뜨끈한 이야기.

 

 


해적 계몽주의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고병권·한디디 옮김, 천년의상상 펴냄, 1만9500원

‘불쉿 잡’ ‘모든 것의 새벽’ 등을 쓴 독창적인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서구 백인 중심적인 계몽주의에서 벗어나 해적들과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 여성 공동체를 중심으로 최초의 계몽주의 실험이 이뤄지는 장면을 재구성한다.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쓴 한디디와 ‘읽기의 집’ 운영자 고병권이 함께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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