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컴퍼트 우먼’을 쓴 노라 옥자 켈러. 2019년 방한 때의 모습이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990년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한 기념비적 소설 ‘컴퍼트 우먼’(김지은·전유진 옮김, 산처럼 펴냄)이 28년 만에 새로 번역돼 나왔다. 이 책은 1997년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어권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미국에서 출간돼 이듬해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저자 노라 옥자 켈러는 한국계 미국인으로, 1993년 하와이에서 황금주(1922~2013)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충격에 빠져 소설을 썼다.
‘위안부’였던 엄마 아키코(순효)는 열두 살에 위안소로 끌려간다. 처음엔 빨래 같은 잡일을 했지만 이후 일본군에 잔혹하게 살해당한 인덕의 뒤를 이어 ‘아키코41’이 된다. 위안소 여성들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군수물자’였다. 죽은 인덕의 혼은 아키코 주변에 머물면서 그의 수호자이자 또 다른 자아가 된다. 미국인 선교사 남편을 만나 이주한 아키코는 미국에서 딸 베카를 낳고 하와이에 정착한다. 딸은 영매가 된 엄마와 함께 살아가며 성장한 뒤 죽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부고 담당 기자가 되고, 홀로 죽은 엄마의 몸을 거둬 장례를 치른다. 엄마가 남긴 유품을 정리하던 딸은 비로소 엄마가 전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책은 내내 강렬한 모녀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킨다. ‘위안소’ 여성 몸에 가해진 무수한 폭력의 서사는 읽기 버거울 정도로 잔인하다. 굿을 하는 동안 울부짖는 아키코는 말한다. “나는 죽은 자들을 위해 울고 있는 거야. 제대로 된 존경을 보여주려고. 사랑을 보여주려고.”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바리데기 전설과 ‘강물의 노래’를 공유하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에서는 ‘모녀 서사’뿐만 아니라 애도의 타자성을 강조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의 존재를 연결하고 이분법을 넘어서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철학 또한 뚜렷하게 나타난다. 1990년대 소설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적이다.
저자의 딸인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으로 2021년 미국 청소년문학계의 최고상인 뉴베리 메달을 수상한 최연소 작가가 됐다. 이 책 또한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이어지는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를 전면적으로 다뤄 호평받았다. 한국계 모녀 작가가 대를 이어 여성 디아스포라의 페미니즘적 서사를 펼치고 있는 셈이다.
‘컴퍼트 우먼’은 1997년 밀알출판사에서 처음 번역돼 ‘종군위안부’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다수의 오역을 바로잡고 문학적 표현을 살린 이번 한국어판을 읽다보면 긴 세월을 지나 마침내 책이 ‘고국’에 당도한 느낌을 받는다. ‘위안부’ ‘정신대’ 등 용어에 담긴 맥락이나 역사적 사실 확인을 거쳐 이 작품의 문학성과 철학까지 섬세하게 풀이한 옮긴이 김지은의 해제는 책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다. 352쪽 1만8800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대한민국은 어떻게 망가졌는가
박현 지음, 서해문집 펴냄, 1만8500원
2022년 11월 초부터 한겨레에 실려 입소문을 탄 박현 기자의 칼럼 ‘눈 떠보니 후진국’을 발전시켜 단행본으로 엮었다. 윤석열 정권 출범부터 몰락까지 3년 동안 정치·외교·국방·역사·권력기관 등 한국 사회 곳곳이 어떻게, 얼마나 퇴보했는지 돌아본다. 한국은 왜 윤석열의 등장과 권력 남용을 막지 못했나.

라두 루푸는 말이 없다
이타가키 지카코 엮음, 김재원 옮김, 봄날의책 펴냄, 2만원
1945년 루마니아의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는 2019년 은퇴 뒤 2022년 세상을 떠났다. 인터뷰를 일절 거절한 그의 인생을 언드라시 시프, 다니엘 바렌보임, 정경화, 조성진 등의 목소리로 복원했다. 수수께끼 같은 청년 시절과 함께 음악가들의 인연도 만나볼 수 있어 근현대 고전음악사적 의미가 크다.

빛은 얼마나 깊이 스미는가
사브리나 임블러 지음, 김명남 옮김, 아르테 펴냄, 2만원
중국계 미국인 퀴어 작가 사브리나 임블러가 과학책과 회고록을 넘나들며 쓴 새로운 장르의 책. 금붕어, 문어, 철갑상어 등 해양생물의 생태와 중층적인 정체성을 갖고 살아온 본인의 삶을 교차하는 방식이다. 이민자의 자손이자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삶과 죽음을 섬세하게 연결한 수작.

재벌과 검찰의 민낯
김영석 지음, 인문서원 펴냄, 1만6800원
삼부토건에서 28년간 일해온 저자는 2019년 윤석열 검찰총장 청문회부터 윤석열과 조남욱 삼부토건 회장 부자와의 오랜 유착관계를 제보받아 조사하기 시작한다. 옛 사주 조 회장이 어떤 과정으로 극우세력의 거물이 되었는지 살피고, 정치검사 윤석열과 검찰정권의 탄생까지 재벌과 검찰 권력의 유착관계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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