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늘 부수적인 거죠. 나라는 인간이 온전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근데 지금 이 일은 제게 딱 맞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경북 상주시에서 독립서점 ‘좋아하는 서점’을 4년째 운영하는 박은정(40)씨는 말했다. 서울에서 기간제 한문 교사, 쇼핑몰 직원, 스타트업 에디터 등 여러 직업을 거쳤지만, 매번 치명적으로 싫은 점이 존재했다.
“수업을 열심히 준비하는 게 선생님의 일인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아이들을 돌보는 게 더 빛을 발하는 공간이었어요. 제 성대도 약했죠. 4년 하고 그만뒀는데, 예전에 같이 임용 준비하던 언니가 쇼핑몰을 하고 있어서 거기 일을 도왔어요. 장사가 잘돼 월급도 많이 받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미련 없이 매번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던 건 ‘그리 대단한 걸 하고 있지 않아서’라고 그는 표현했다. “나랑 안 맞는 일은, 그 일이 뭐가 됐든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남들이 좋다고 해도요.”
그렇게 흘러 흘러, 싫은 게 하나 없는 일을 찾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서점 일은 돈을 못 번다는 거 빼고는 다 좋아요. 근데 돈을 못 버는 게 저한테 그렇게 큰일은 아니더라고요. 저 한 명 먹여 살리는 건 가능하니까.”
서점은 크게 세 가지 수입원으로 돌아간다. 책 판매, 책 납품, 그리고 모임 판매. 서울에 사는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도 온라인 글쓰기 모임 덕분이다. “이 작은 서점 안에서 벌어지는, 책과 글에 관련된 모든 일이 제가 더 잘하고 싶은 일이에요. 이쯤 했으면 됐지가 아닌, 계속 더 잘해나가고 싶은. 쉬는 날엔 도서관에 가서 ‘서점 주인이라면 이 정도 책은 알아야 하는데 아직 못 읽은 책이 있나?’ 하며 살펴보는데, 원래도 좋아했던 도서관 가는 일이 제 업에 도움이 된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처음엔 책 파는 일이 뭐 그리 재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들어보니 알겠다. 이 사람, 직업을 통해 자기가 꿈꾸는 사람이 돼가고 있구나. 하지만 문화 소비자가 서울에 몰린 시대에 상주시에 있어 외롭지 않냐 물으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알게 되어 배우는 게 많단다.
“제가 글쓰기 모임을 여러 연령대 분들과 하는데 똑같은 글을 가져가도 반응이 다 달라요. ‘욕망하는 마음’에 대해 쓰면, 젊은 친구들은 공감해요. 힘들어하면서도 해방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어른들은 허허 웃어요. 그것도 젊어서, 선택의 여지가 많아서 그런 거라고. 어릴 땐 모두 방황하는 거라고. 어느 날은 ‘이해’에 대한 글을 써갔는데 또래 친구들이 냉소적인 거예요. 어차피 이해라는 거 힘들어. 어떻게 타인을 이해해.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대요. 70대가 되고 귀촌해서 삶을 일궈보니, 내 삶을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생은 충분하더래요. 덕분에 다양한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가고 있어요. 지역에 와서, 서점을 하며, 글을 쓰면서.”
2024년 처음 플리마켓에 참가해 책을 팔며 다짐했다. 서점은 절대 안 해야겠다고. 안 사고 나가는 수많은 사람을 보는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자신도 초반엔 그랬지만 4년을 해보니 안 사던 사람이 다음에 와서 사가기도 한다며, 제주도의 어느 유명 서점에 가보니 주인이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에게 동일한 톤으로 인사해서 ‘저게 내공이구나…’ 감탄한 일화를 들려줬다.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 더 잘하기 위해서. 그러니 부디, 일하며 힘든 날보다 기쁜 날이 많기를. 여러분도 좋아하는 서점이 있나요?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궁금한 건 당신’ 저자
❶ 전진희
https://youtu.be/oz1HNZ9iLHI?si=c9D_lrkyQnEygzDa
유튜브는 서점에 음악 틀어놓을 때만 사용한다. 손님에게 추천받아서 알게 된, 연주곡들이 좋아서 계속 듣는 전진희님의 음악 중 ‘Breathing In October’(브리딩 인 옥토버)는 손님이 없을 땐 한 곡 반복으로 온종일 듣기도 한다. 뮤직비디오도 아름답다.
❷ 알쓸인잡
https://www.youtube.com/watch?v=JTP9ZSuRAxU&list=PLYXqaUwf8raoNtb3Zk0k7i74rzxXFppql
‘알쓸인잡’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다시 보는데 가끔 메모까지 하면서 본다.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7화. 김상욱 교수가 한 ‘진실을 알려면 성실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❸ 헤이메이트 ‘시스터후드’
https://www.youtube.com/watch?v=KugO__SawIA&list=PLG-lpHon_nk9RL3QzeoUaSIlaWTXFNbzt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 하는 팟캐스트를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채널은 ‘책읽아웃'과 ‘시스터후드'. ‘책읽아웃'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고, ‘시스터후드'는 여성주의 관점으로 콘텐츠를 보는 즐거움을 알려줬다. 둘 다 무기한 휴방 상태지만 기적적으로 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자주 재탕한다.
*남플리, 남들의 플레이리스트: 김수진 컬처디렉터와 정성은 비디오편의점 대표PD가 ‘지인’에게 유튜브 영상을 추천받아, 독자에게 다시 권하는 칼럼입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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