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기사는 분량을 쪼개어 선보입니다. 이 기사는 ‘[단독]한국, 2024년 이스라엘에 무기 84억원 팔았다’에서 이어집니다.
한국에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반전 집회가 있다. ‘팔레스타인인과 연대하는 사람들’(팔연사)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긴급행동) 등이 매주 토요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연다.
2024년 11월23일 열린 제61차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도 1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이들은 이스라엘 대사관을 향해 “학살을 멈추라”라고 소리치고 행진했다. 어린아이를 들쳐 업고 온 엄마와 대학생 활동가, 외국 국적의 교환학생 등이 모였다. 참석자들은 “전쟁에 무력해지지 않으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매주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까지 지하철을 타고 온다는 신장섭(59)씨는 “(한국의 무기 수출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돈은 올바른 방법으로 벌어야지 누군가를 죽게 해서 버는 건 국민이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마리얌과 나리만도 매주 그 집회에 간다. “제겐 집 같은 곳이에요. 한 주 동안 받은 감정적 타격이 해소되죠. 여기선 누구나 저를 걱정하고 반겨줘요. ‘이 사람들이 내 뒤에 있다’고 생각하면 집처럼 편안해져요.” 나리만이 말했다.
다만 한국의 반전 운동은 수천 명씩 모이는 유럽 국가의 반전 집회와 견줘 여전히 규모가 작다. 전쟁을 ‘내 일’로 여기는 시민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작은 셈이다. 한국 정부도 이를 핑계 삼아 침묵한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2024년 10월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스라엘로 수출하는 무기가 있느냐’는 질문에 “제가 아는 한 없는 거로 안다”며 사실과 다른 해명을 했다.
방산 기업과 미디어 역시 전쟁의 고통을 ‘남 일’처럼 여기긴 마찬가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의 대표 무기 기업과 군사 협력을 하겠다는 홍보 자료를 전쟁이 한창인 2024년 10월 버젓이 내놓았다. 이들 기업이 협력한다는 ‘엘빗시스템스’는 이스라엘 정부에 가장 많은 무기를 조달하는 기업이다. 언론은 해당 기업이 “전쟁으로 실전 경험을 축적”했다고 추켜세웠다.
전쟁에 대한 오해도 널리 퍼져 있다. 10월31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이스라엘 무기 수출 반대 서명을 해달라’는 게시글을 올리자 악성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하마스가 먼저 민간인을 공격했으니 이스라엘 입장에선 정당방위라거나, 누가 옳든 한국은 일단 무기 수출을 ‘기회’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무차별 학살로 변모한 가자 전쟁의 양상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전쟁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이다. 이튿날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에 나서 양쪽 군인과 민간인 수백 명이 숨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압도적 군사력 우위에 있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무장 세력과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고 난민촌과 병원까지 무차별 공격했다. 후방이 없다시피 한 가자지구 남쪽으로 피란민을 몰아넣고 폭격을 가하거나 식량 수송을 막아 굶주리게 했다. 전쟁 초기 하마스의 테러를 비판했던 서방 지도자들도 이스라엘의 이런 행태는 ‘인종학살’(Genocide)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쟁 이후 1년간 이스라엘 사망자는 1200여 명이지만, 가자 사망자는 4만 명에 이른다. 국제형사재판소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을 전쟁 범죄자로 지목해 11월21일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긴 분쟁 역사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전쟁은 어느 날 느닷없이 하마스가 시작한 게 아니에요. 이스라엘의 점령과 학살은 1948년부터 쭉 계속돼왔어요. 강압과 폭력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시작한 거라고요.” 나리만의 호소다.
한국의 무기 수출이 ‘기회’라는 인식은 어떨까. 죽음 장사로 돈을 버는 나라가 아무 탈 없이 무역 시장에 머물 수 있을까. “누가 이스라엘을 지지하는지 많은 사람이 유심히 지켜봅니다. 최근 스타벅스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 노조를 고소했다가 ‘친이스라엘 기업’으로 분류돼 불매운동 대상이 됐죠. 한국 연예인들도 스타벅스를 마시는 사진을 올렸다가 에스엔에스(SNS)에 비판 댓글이 우수수 달렸고요. 중동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 평판도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나리만이 말했다.
특히 중동 지역의 이스라엘 불매운동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스라엘군에 무상식사를 제공한 케이에프시(KFC)·맥도날드 등이 불매운동으로 인해 중동 지역 곳곳에서 매장을 닫았다. 비티에스(BTS) 팬덤 ‘아미’는 600만달러를 유니세프와 팔레스타인에 후원하는 한편, 이스라엘을 공개 지지한 소속사 하이브 이사진을 퇴출하라는 SNS 청원 운동을 전개했다. 2024년 6월 외교부와 한국방송(KBS) 등이 이스라엘에서 개최하기로 한 ‘케이(K)-팝 페스티벌’ 참가 예선을 두고 SNS에선 ‘노 투 아트워싱 인 케이팝'(#NoToArtwashingInKpop) 같은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졌다. ‘가치 판단을 미루고 경제적 이익만 취한다’는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셈이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무기 수출이 아니라 자동차, 반도체 등 제조업을 통해 이뤘습니다. 군수산업은 이를 뒷받침한 핵심 산업이 아니었죠. 결국 무기는 세계 강대국의 필요에 의해 만드는 건데, 수출강국인 한국이 그걸 반드시 선택해야 할까요.” 마리얌이 말했다.
한국도 과거 분쟁국 무기 수출 중단을 결단한 역사가 있다. 2021년 미얀마 군부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해 수천 명이 사망하자 최루탄 등 시위 진압용 무기 수출을 중단한 것이다. ‘미얀마 모델’을 가자 전쟁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반전단체는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의 대응은 세계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국방 정보’라는 이유로 민간에 공개된 무기 수출 내역을 속속 비공개 처리한 것이다. 관세청은 2024년 2월 자체 포털과 무역협회를 통해 제공하던 무기·총포탄·부품류 통계(HS 93)를 전면 비공개했다. 2024년 5월엔 무기·실탄류와 전차류 수출액을 합친 통계(SITC 코드891)도 전면 비공개 조처했다. 현재 공개된 무기 관련 통계는 전차류(HS 8710) 통계 하나뿐이다. 관세청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24년 7월 유엔의 무기 통계(UN Comtrade)에서도 한국 정보를 빼달라고 요청했다. 한 달 뒤 관련 통계는 잠겼다. 일반 대중이 접근할 수 있는 한국산 무기의 수출 현황 자료가 원천 봉쇄된 셈이다.
반전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여지우 활동가가 이에 맞서 무기류 정보 공개 소송을 최초로 제기했다. 이 소송으로 2024년 11월22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첫 변론기일이 열렸다. 관세청은 ‘무기 수출 정보가 국방 정보를 담고 있어 국익에 반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원고 쪽은 ‘수출 금액 정보가 국방과 무슨 관련이 있나. 무기 배치 현황 등 국토방위에 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도 아니다’라고 맞섰다.
한국 사회가 가자 학살을 ‘남 일’로 간주하지만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일제 치하의 한반도 역사를 ‘내 일’처럼 느낀다. 투쟁과 저항의 한국사를 배우며 동질감을 느끼고 위로를 얻었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의 투쟁, 제주 4·3 사건 등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투쟁과 저항으로 가득한 한국 역사를 배우며 ‘이건 우리 이야기’라고 느꼈다. 또 그때는 말하지 못했을 아픔을 이제는 사람들이 말할 수 있고 글로 역사로 기억하는 게 가슴 벅찼다.” 나리만의 말이다.
나리만과 마리얌은 계속해서 한국을 ‘해방의 롤모델’로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이스라엘과 우방 관계를 맺고 무기 팔아 돈 버는 것, 평시라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인종청소에는 제발 가담하지 말아주세요. 한국이 최소한의 인도적 가치를 생각하고 중립이라도 지켜주세요.”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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