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3월24일 오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일대에서 산불이 번지고 있다. 한겨레 김영원 기자
“퇴직 3개월 남았습니다. 이제 얘기 좀 하려고 합니다. 제대로 대처했으면 사람은 거의 안 죽었을 겁니다.”
2025년 3월31일 강원 강릉에서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을 만났다. 이 과장은 소방청 소속 산림화재 전문강사로 대형 산불 대응에 대해 수년간 연구와 강의를 해왔고, 일반 화재뿐 아니라 산불 진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소방관이다. 그는 31명이 사망하고 4만8238㏊ 산림 피해가 발생한 2025년 3월 경남·경북 지역 대형 산불에 대해 작심한 듯 말했다. 그의 얘길 들어보면, 우리나라에서 봄철 대형 산불은 △3~5월 △고온건조한 남서풍 △풍속 5㎧ 이상 △침엽수림대라는 조건에서 시간당 5~10㎞의 빠른 속도로 일정한 연소 확대의 패턴을 그리며 진행되고, 남서풍이 지속되는 한 더는 탈 게 없는 바닷가에 가서 꺼진다. 이 때문에 불길은 발화지점에서 북동 방향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다. 이번 의성 산불도 영덕 해변에 가서 꺼졌다.
이상호 과장은 이런 패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산불 지휘 체계의 문제에 대해 꼬집었다. “이번 산불의 진행 방향과 진행 패턴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습니다. 3월25일 의성에서 영덕까지 대형 산불이 일어나기 전 남서풍에 의한 강풍이 예보됐습니다. 바닷가까지 부채꼴 패턴을 미리 그려 방송사와 주민들에게 알렸으면 이렇게 피해가 커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이것은 대형 산불 대응에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미리 대피하지 못했고 패턴 밖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패턴 내에서 여러 번 대피하여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비유하자면 고속도로에 중앙선을 그리지 못하고 통행하게 한 것과 같은 참혹한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불길이 30번 상주~영덕 간 횡단 고속도로를 넘은 것이 3월25일 오후 2시30분이었지만, 안동시 전 시민에게 대피하라고 한 건 오후 5시가 된 뒤였어요. 그것도 ‘무조건 대피하라’고…. 이렇게 무책임하고 전문적이지 못한 대형 산불에 대한 지휘가 어디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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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후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이러한 대형 산불은 계속 일어날 수 있는데, 기후위기, 강풍 탓으로만 몰아갈 건가. 엄청난 피해 상황에 대형 산불 대응기관이라면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산림청이 임도 확충, 장비 도입을 강조하고 있는 데 대해 이 과장은 “봄 산불의 특징을 잘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피해 면적 100㏊ 대형 산불로 번진 적이 거의 없는 겨울 산불은 봄 산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데 지금 대책은 겨울 산불에 맞춰져 있다”며 “강한 바람에 불티가 비산해 헬기도 못 뜨는 상황에서 임도를 확충해 진화대원을 보낸다면 이번 산청 산불의 진화대원 사망사고처럼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봄 산불은 대규모 인명 피해와 건축물 피해를 동반해 도시 비화 복합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헬기 등 장비 확충이나 임도 건설보다 대형 산불에 맞는 지휘권 체계와 대응기법, 대응훈련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21 1557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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