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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마지막 여성 광복군’ 오희옥 지사 별세

등록 2024-11-23 00:02 수정 2024-11-23 17:31
오희옥 애국지사가 2015년 8월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개막행사'에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축소판을 전달받는 모습. 연합뉴스

오희옥 애국지사가 2015년 8월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 개막행사'에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축소판을 전달받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1910~1945년),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0년 9월17일 한국광복군(광복군)을 창설했다. 총사령관에 지청천, 지휘관을 돕는 참모들의 장인 참모장에 이범석 등이 임명됐다.

이렇게만 보면 광복군이 남성의 전유물 같지만, 남성 광복군만 있지 않다.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광복군에 참여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총을 들었다. 2024년 11월17일 숙환으로 별세한 오희옥 애국지사도 그중 한 명이다. 향년 98.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난 오희옥 지사는 광복군 창설 전부터 일본에 맞섰다. 임시정부를 옹호한 광복진선 계열 청년들이 1939년 2월 중국에서 만든 군사조직인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청년공작대)에 두 살 터울 언니 오희영 애국지사(1969년 별세·향년 45)와 함께 그해 4월 입대했다. 청년공작대 전체 대원 34명 중 11명이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여성 대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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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옥 지사는 청년공작대에서 대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한 가두선전과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연극·무용 등의 공연 활동에 참여했다. 이후 청년공작대가 1941년 1월 광복군 제5지대로 편입되면서 오희옥 지사는 다른 여성 대원들과 함께 전방 격전지에 투입됐다. 일본군의 정보 수집 활동, 심리전 활동, 선전 활동, 초모 활동(비밀리에 일본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가 거점을 확보하고 그곳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포섭) 등이 주요 임무였다.

정부는 독립을 위해 일제에 항거한 오희옥 지사의 공로를 인정해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훈장 12종 중에서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한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생존한 마지막 여성 광복군이었던 오희옥 지사가 별세하면서, 고인이 2017년 8월15일 제72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홀로 애국가를 부르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주목받고 있다.

오희옥 지사가 타계하면서 생존 애국지사는 이제 5명(국내 4명, 국외 1명). 고인은 2024년 11월20일 독립유공자로서 경찰의 장례 에스코트(장례 운구행렬 호위)를 받고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됐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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