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로이드 올터(71)는 한때 건축가이자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그는 포르셰를 몰고 출퇴근하며 겨울엔 주말마다 개인 스키클럽을, 여름엔 가족들과 머스코카의 별장을 다녔다. 그리고 매년 사업과 여행을 위해 몇 차례씩 비행기를 탔다. 연 30t의 탄소가 발생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전세계 1명당 평균 탄소배출량이 4.5t 수준이니 6배가 넘는다. 탄소 ‘고배출자’인 올터는 2020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1년 동안 탄소배출량을 연간 2.5t 이내로 줄이는 실험을 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라이프스타일을 택한 것이다.
올터의 실험은 나비효과가 되어 한국까지 닿았다. 독일 베를린에 기반을 둔 비영리 연구소인 ‘핫오어쿨연구소’(Hot or Cool Institute) 연구진이 올터의 실험을 듣고 16명을 모아 ‘1.5도 라이프스타일 한 달 살기’ 실험을 했다. ‘1 FIVE’ 프로젝트다. 한겨레21과 녹색전환연구소가 공동기획한 실험도 ‘1 FIVE’ 프로젝트를 참고해 만들었다. 우리보다 앞선 이들의 실험은 어땠을까. 한겨레21은 올터와 핫오어쿨연구소에서 ‘1 FIVE' 프로젝트를 설계한 케이트 파워(48)를 서면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올터가 쓴 ‘1.5도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기’(Living the 1.5 Degree Lifestyle) 책과 ‘1 FIVE' 프로젝트 공식 보고서도 참고했다.
올터가 실험을 시작한 계기는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재단법인 지구환경전략연구소(IGES)와 핀란드의 알토대학교, 디매트(D-mat)는 그해 ‘1.5도 라이프스타일: 탄소발자국 감소를 위한 목표와 옵션’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엔 지금껏 특정 제품이나 국가가 배출하는 탄소를 계산하던 방식을 넘어 개인의 소비와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앞으로 얼마큼 줄여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겼다.
이 보고서가 나오기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지구의 평균기온을 1.5도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전세계 1명당 연간 3.4t 이하로 탄소를 배출해야 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이는 전체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단순히 전세계 인구로 나눈 값이었다. 1.5도 라이프스타일 보고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전체 탄소배출량의 72%가 가정의 소비와 관련 있다고 계산하고, 개인이 배출하는 양을 연간 2.5t으로 맞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2040년엔 1.4t, 2050년엔 0.7t까지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가 나온 이후, 개별적으로 실험하는 시민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환경운동가 로절린드 리드헤드는 2019년 보고서를 바탕으로 1년간 1t의 탄소만을 배출하는 삶을 시도했다. 처음엔 2050년 목표치인 0.7t에 도전했지만, 현재의 인프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1t으로 목표치를 바꾸고 성공했다. 올터는 리드헤드로부터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실험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연간 1t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연구소에서 제시한 (2030년 목표인) 2.5t을 목표로 해보기로 했죠.”
연간 2.5t이라는 배출량도 하루로 치면 약 6.8㎏이다. 붉은 육류 위주의 한 끼 식사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약 7.7㎏ 정도이니, 연 배출 2.5t을 달성하기 위해선 먹거리부터 이동, 소비 등 삶의 전반적인 방식을 바꿔야 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의 첫 번째 전략은 교통수단의 변화였다. “북미 지역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의 가장 큰 부분이 자동차입니다. 저는 1년 동안 운전을 완전히 포기했어요.”
캐나다의 1명당 평균 탄소배출량 구성을 보면 교통이 35%로 가장 많다. 14.2t 중에 5t이 교통에서 배출된다. 올터가 운전을 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부동산 개발업을 그만두고 환경 관련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작가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집에서 일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근처에 있었고요. 제가 사는 도시는 쇼핑도 대부분 도보나 자전거로 할 수 있었어요. 또 대학에 강의를 나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 있었습니다.” 1년 동안 한 번 미국 뉴욕에 다녀온 것 외에는 비행기도 타지 않았다. 식단도 바꿨다. “고기를 포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소나 양을 포기하고 탄소 배출이 훨씬 적은 돼지와 닭만 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문제가 되는 건 소나 양과 같은 반추동물이죠.”
그가 변화를 시도한 또 다른 부분은 애플의 신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었다. “저는 항상 최신 애플 제품을 구매했어요. 그런데 애플 제품을 2년만 사용하면 탄소 배출이 많아지거든요. 그래서 아직 아이폰11을 사용하고 있어요. 제 애플워치도 구형이고요. (애플 외에도) 전자제품을 덜 구매하기 위해 소비 습관을 바꿨습니다. 의류든 전자제품이든 오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거든요.” 일반적인 스마트폰의 경우 총 30㎏의 탄소가 발생하는데, 제작 과정에서 이미 76%의 탄소가 배출된다.
올터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도시 디자인과 같은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먹거리도 매일 체크했지만 구조적인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저탄소 라이프스타일을 살기 위한 해결책은 주로 도시 디자인과 관련이 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고,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까지 간 다음, 걷거나 공유 자전거를 탑니다. 인구의 60%가 직장에 운전해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이런 식으로 설계된 거예요.”
핫오어쿨연구소에서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관한 개발 책임자였던 케이트 파워가 올터의 실험을 접한 건 2021년 그의 책이 나올 때쯤이었다. 올터의 책 초안을 본 그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여러 사람을 모아 함께 실험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소는 실험을 위해 영국과 독일, 캐나다, 미국, 포르투갈, 나이지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8개국의 81명에게 실험 초대를 했는데 이 중 프랑스와 스위스를 제외한 6개국의 16명이 참여했다.
연구소는 각자가 배출하는 탄소를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해 일상 활동을 기입하면 탄소를 계산해주는 시트를 개발했고 참여자들에게 공유했다. 아울러 모든 참여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세한 후기를 쓰도록 했다. 16명의 참가자 중엔 이미 혼자 실험을 했던 올터 외에도 스타트업 대표와 환경 엔지니어, 환경학 전공 대학원생 등이 포함됐다. 2021년 9월부터 한 달 동안 실험을 진행한 결과, 16명 중 11명은 연간 2.5t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에서 탄소를 배출했다. 나머지 5명은 연 2.5t을 넘었는데, 가장 많이 배출한 참가자가 연 7t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이들이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올터보다 좀더 다층적이었다. 도시 밖 교외에 사는 참가자는 교통이 주요한 문제라고 지적했고, 다른 참가자는 도시로 이동하기 위해 무조건 장거리 기차를 타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털어놨다. 주택을 개조해 에너지 부문에서 탄소 배출이 많이 발생하는데 당장 이사 갈 수 없는 참가자도 있었고, 전자제품을 수리해 쓰고 싶어도 부품 가격이 더 비싸 수리를 못한 이도 있었다.
참가자들은 또 실험 과정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제품에 얼마나 많은 탄소가 포함돼 있는지도 알게 됐고, 소비습관을 바꾸기 시작했다. 실험을 기획하고 본인도 직접 참여한 케이트 파워는 “제품을 만들기 위한 탄소배출량에 관해 잘 알게 되면서 물건을 덜 구입하고, 사도 중고 제품을 사게 됐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어려움 중에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데 자신만 홀로 먹거리와 같은 습관을 바꾸기 어렵다는 점도 있었다. 가족들이 육류를 섭취해 어쩔 수 없이 먹었다는 한 참가자의 후기는, 육류 섭취가 많은데다 함께 식사하는 특성상 채식하기 어려운 한국의 상황과도 비슷했다.
연구소는 이 실험을 통해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1.5도 라이프스타일은 약간의 학습과 적응이 필요하지만 즐겁고 더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과 ‘배출량을 줄이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제도적 장벽’이라는 것이다. 케이트 파워는 “흔히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실험 결과) 사실이었다”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디에 변화가 필요한지,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덧붙였다.
“많은 구조적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참가자들은 직업이나 가족행사 등의 이유로 비행기를 타도록 강요받았어요. 그것이 우리가 탄소‘발자국’뿐 아니라 탄소‘손자국’도 살펴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업무를 위해 비행기를 타는 건 당장 개인이 바꿀 수 없는 측면이죠. 이런 부분은 제도적인 변화를 통해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사실 정부와 기업은 경제 구조나 인프라 설계 방식, 제품에 대한 규제 등 중요한 문제에 관한 막대한 권한과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도하는 하향식 변화가 매우 중요해요. 그러나 이런 변화는 느리고, 달성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 같은 개별 시민들이 정부와 기업의 행동을 촉구하면서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죠. 버스와 기차가 충분하지 않고, 자전거 인프라가 없다는 경험을 정치인들에게 계속 얘기하는 거예요. 이들로 하여금 더 많은 조치를 하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건 ‘사회적 기준'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회적 기준’을 바꾸기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혼자 하지 않고 함께 하는 것이다. “소비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분명히 존재해요. 사회에서 허용되는 기준이 있어요. 여기서 벗어나면 제재를 받거든요. 그러나 분명 변화도 일어납니다. 유럽에선 채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현재 유럽인의 3%정도가 비건이고, 이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채식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해야 해요. 혼자서 이런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건 어려운 일이죠.” 케이트 파워가 말했다.
올터는 이런 개인의 변화가 모여 한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같은 문화적 변화를 계속 만들어야 해요. 비행기를 덜 타고 기차를 더 많이 타는 것과 같은 변화를요. 차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는 변화도 필요합니다. 북미에선 10년 전과 비교해 자전거 이용량이 4배나 늘었어요. 더 빠르고 더 저렴하고 탄소까지 절감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이미 개인적인 변화에서 비롯된 문화적 변화를 보고 있어요.”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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