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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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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착각과 거만함에 날아든 경고장

등록 2024-07-05 12:28 수정 2024-07-12 08:34
2022년 9월17일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내성천에서 먹이 활동을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고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2022년 9월17일 경북 영주시 이산면 두월리 내성천에서 먹이 활동을 갔던 제비들이 돌아오고 있다. 김영길 작가 제공


인간에게 자연은 오랫동안 약탈과 정복의 대상이었다. 특히 산업화 이후 인간은 자연을 도구 삼아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자부하며 자연의 영역을 마음껏 침범해왔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연이 자신의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해 어떤 작용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을 움직이지 않는 이상 자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

이런 생각이 착각이라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간이 자유롭게 존재하고 행동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과 식물, 나아가 사물에 영향을 받고 행동하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스피노자는 인간만이 가진 특권은 없다고 봤다. 반면 자연은 주어진 상황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변용 능력을 무한정 가졌다고 생각했다.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도 앞선 인간의 착각을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가 ‘지구의 관리인’이라는 생각은 인간의 거만함에서 나온 하나의 증상이다.”

스피노자와 마굴리스의 사유처럼, 자연은 이미 인간의 오만함에 직접 경고장을 날려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인간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을 숙주 삼아 얼마나 빠르게 확산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체험했다.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던 바이러스를 백신으로 정복했다고 여겼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백신은 다만 인간이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도록 적응할 시간을 벌어줬을 뿐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인간은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산업화와 동식물의 영역을 침범하며 자행한 삼림파괴가 결과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을 낳았다는 사실도 차츰 인정하게 됐다. 기후위기로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서 열대지방에 사는 박쥐의 서식지가 확장됐고, 그만큼 인간과 박쥐가 접촉하는 범위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한겨레21> 이번호 표지이야기에서도 자연의 변용 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영주댐을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1급수와 모래가 함께 흐르던 내성천의 옛 풍경은 사라졌다. 그런데 댐 공사 이후 생긴 습지에 2018년부터 제비떼 10만 마리가 날아들었다.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에 신기하게도 또 다른 생명체가 문득 자리잡은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숙영지가 있던 곳의 제방을 철거했고, 제비떼는 다시 인간에 의해 숙영지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제비떼만이 아니다. 이번호 특집에서는 2022년 서울 은평구에서 시작해 올 들어 서울 전역으로 확산한 러브버그 대발생을 통해 인간의 오만함이 야기한 자연의 저항을 읽을 수 있다. 기후위기·삼림파괴와 함께 인간의 무분별한 살충제 방제 작업으로 인한 포식성 곤충의 떼죽음이 생태계 균형의 붕괴를 낳아서 대벌레와 러브버그 등의 대발생이 순차적으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결론으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자연은 착취 대상이 아니라 공생 관계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자연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빚지며 살고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겨레21>이 계속 강조하는 재자연화와 탈물질적 가치,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 회복이 그 열쇳말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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