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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람 위에 싸우는 사람들

등록 2024-07-12 21:18 수정 2024-07-13 19:26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새누리당은 한때 “선거의 귀신”으로 불렸다. 2007년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고 이후 8년 동안의 선거에서 승리는 대부분 새누리당 차지였다. 반이명박 정서가 강했던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박근혜를 앞세우고 진보 의제였던 경제민주화까지 선점하면서 승리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음에도 읍소 전략을 앞세워 6·4 지방선거에서 선전했고, 같은 해 7월과 2015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내리 이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발언이 터져나온 건 새누리당의 ‘승리 디엔에이(DNA)’ 분석이 이어지던 2015년 6월이었다.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정부의 시행령이 상위법의 취지와 어긋나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면 정부가 이를 따르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합의해 통과시켰다. 행정부가 의회가 만든 법에 따라 국가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법치주의가 엄연한데도, ‘법 위의 시행령’을 만들어 이 원칙을 유린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 뒤 “배신의 정치”라며 유승민을 직격했고, 유승민은 곧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훗날 탄핵으로 이어진 박근혜와 새누리당 몰락의 시작점이었다.

2024년 7월23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온 한동훈 당대표 경선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메시지 무시’ 파동은 9년 전과 닮았다. 대통령 권력이 당무에 개입해 최측근이던 여당 정치인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축출하길 원하고 있고,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친박근혜계 의원들처럼 행동대장으로 나서고 있으며, 파동 이후 여당의 몰락이 시작됐거나 시작될 것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문자 파동’은 ‘배신의 정치’보다 더 퇴행적이다. 대통령 권력을 휘두르는 주체가 선출 권력인 대통령이 아니라 법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 부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문자 파동’은 대통령 권력의 당무 개입을 넘어 비선출 권력의 국정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건희 여사에 대해서는 안 그래도 인사 등 국정 개입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돼왔다.

‘배신의 정치’는 최소한 법과 시행령을 둘러싼 정책의 옳고 그름에서 다툼이 시작됐다. 하지만 ‘문자 파동’에는 대통령 부부와 전직 당대표의 권력 다툼만 오롯하다. 파동을 둘러싼 논쟁에 아무런 공적 가치가 없다. 게다가 진보를 자처하던 유명 지식인까지 이 권력 다툼에 끼어들어 자신의 권력 친화성을 자랑하는 모습에서 퇴행은 절정에 이르게 됐다.

2024년 7월9일 새벽 5시12분 경북 경산시 소하천에서 쿠팡과 하루 단위 계약을 맺은 40대 여성 ‘카플렉스’ 택배기사가 폭우에 따른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이틀 뒤 숨진 채 발견됐다. 6월16일에는 전북 전주시의 한 제지공장에서 19살 노동자가 홀로 배관 점검에 나섰다가 쓰러져 숨졌다. 5월28일에는 쿠팡 자회사 소속 로켓배송 기사인 41살 정슬기씨가 심근경색으로 숨졌다. 정씨는 쿠팡 자회사 쪽의 배달 재촉에 “개처럼 뛰고 있다”는 답을 남겼다. 경기 침체로 붕괴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배달의민족이 다음달 9일부터 배달 중개이용료를 음식값의 6.8%에서 9.8%로 올린다고 발표하자 절망하고 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고통의 목소리가 가득한데, 정치는 권력의 장막 안에서 싸우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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