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청탁은 예상 밖이었다. 2024년 1월 초, 걸려온 선생의 전화에 나는 투병 중인 암에 대한 걱정부터 꺼내 물었다. 선생의 용건은 달랐다. 당신이 고문으로 있는 노동당에서 4·10 총선 울산 지역구에 이장우라는 후보가 출마했는데 <한겨레>가 다뤄줄 수 없느냐는 청탁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왼쪽 끝에 서 있는 좌파 정당, 하지만 의미 있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아 여론조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는 바로 그 정당이다. 생의 끝에 서서 병마와 싸우면서도 선생은 한국의 진보좌파 정치와 운동을 걱정했다.
당시 <한겨레>에서 탐사팀장을 맡고 있던 나는 <한겨레21> 동료 기자에게 그의 청탁을 전하며, 만약 노동당 후보만 다루는 게 옳지 않다면 다른 진보정당 후보들을 같이 다루면 어떻겠냐고 말을 보탰다. 그렇게 기획된 연재가 제1501~1505호에 실린 ‘4·10 진보의 얼굴들’ 시리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1502호부터는 편집장이 되어 <한겨레21>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번호에는 선생이 타계하기 나흘 전 병상에서 한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쓴다. 선생이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당부는 “구매력만 있으면 뭐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아니라 주체성과 비판성, 연대성을 지닌 민주시민이 돼라”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과정이 홍세화 선생이 남긴 공부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는 것같이 거짓말처럼 연결돼 일어났다.
인간은 연결된 존재다.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들은 내가 아니라 남에게서 왔다. 인간은 배움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깨닫는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미숙함과 무지는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끝없는 가능성까지 파악한다. 이런 주체들이 모인 사회는 끊임없이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개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와 너의 고결함을 박탈하려는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가장 아프고 힘없는 이들 옆에 서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선생이 말한 주체성과 비판성, 연대성은 이런 개념이다. 이를 위해 선생은 “70이 넘어서도 언제나 읽고 쓰고 번역하고, 젊은 사람들과 토론했다. 아니, 그냥 자연스럽게 묻고 답했다. 가르치되 가르치지 않았고, 가르치지 않았지만 늘 가르쳤다.”(이번호 표지이야기)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런 선생을 끊임없이 ‘아웃사이더’로 밀어냈다. 연결, 배움, 회의, 비판, 연대, 읽기, 토론과 같은 말도 선생과 함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 반면 “자신의 입지 강화를 위한 진보”(격월간 <아웃사이더> 제17호 머리글)를 추구했던 이들은 저런 말들을 활용해 명성을 쌓은 뒤 권력의 중심으로 부나방처럼 몰려갔다. 이런 시대에 진보좌파 정치의 쇠락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선생은 이런 시대에 실망하거나 어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선생에게 진보좌파 정치의 실패는 “저의 실패”인 동시에 “저 자신에 대한 질책”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제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 속에서 좀더 나은 것을 지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해 미안합니다.” 마지막 병상 인터뷰에서 선생이 남긴 말이다. 진보좌파의 마지막 어른은 그렇게 소박한 자유인으로서의 생을 마쳤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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