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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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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를 찾지 못해 막다른 벽에서…참사는 왜 반복되는가

등록 2024-06-28 22:52 수정 2024-07-05 20:02
2024년 6월26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6월26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설치된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 참사 추모 분향소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들도 ‘이름 없는 외국인’이었다. 2008년 1월7일 경기도 이천의 ‘코리아2000’ 냉동창고 건설 현장에서 화재 참사가 발생했다. 40명이 희생됐는데, 한국인이 26명, 중국동포가 13명, 우즈베키스탄인이 1명이었다. 중국동포와 우즈베키스탄인은 한동안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 용접 작업을 하다 튄 불씨가 우레탄폼에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폭발한 화재로 주검 훼손이 심각했고, 근처에 유전자(DNA)를 대조할 가족도 없었기 때문이다. 참사 다음날 소방대원들과 함께 들어간 현장 점검에서 희생자들이 탈출구를 찾지 못해 창고 벽을 기어오르려다 남긴 ‘최후의 흔적’을 발견하고 침통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2024년 6월24일 경기도 화성 리튬전지 제조업체 ‘아리셀’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에서도 상황은 반복됐다. 23명이 희생됐는데, 한국 국적이 6명(1명은 귀화 한국인), 중국 국적이 17명이었다. 결함이 생긴 리튬전지의 내부 온도가 1천℃ 이상으로 치솟는 ‘열폭주’ 현상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희생자들의 주검은 수습조차 어려울 정도로 훼손됐다. 역시 유전자를 대조할 가족의 부재와 함께,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이나 지나서야 신원이 모두 확인된 까닭이다. 이날까지 장례식장에서는 이름 대신 번호로 희생자들을 불렀다.

16년을 사이에 두고 발생한 참극은 발생 구조마저 판박이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때 희생된 노동자들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고용 구조가 복잡했다. 소속이 다른 노동자들이 한 공간에서 용접과 배선, 냉방설비 설치 등의 위험 작업을 동시에 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 안전교육을 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것도 화를 불렀다. 희생자들은 농한기에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하러 온 농민과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참사가 일어나기 다섯 달 전과 석 달 전 용접 과정에서 불씨가 튀어 불이 나는 등 사전 징후가 있었지만, 회사는 안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희생자도 상당수가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일용직이었다. 이들은 일용직이자 이주노동자라는 점에서 건물 내부 구조가 낯설고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업 현장 안전대책도 미비했다. 폭발 위험이 있는 리튬전지는 안전한 공간에 분리 저장해야 하고, 결함 발생 초기에 즉시 냉각해 진화할 수 있는 장비도 마련해둬야 한다. 하지만 아리셀은 노동자들의 업무 공간 바로 옆에 리튬전지를 쌓아두고 연쇄 폭발 위험을 방치했다. 참사 이틀 전 배터리에서 불이 나는 등 화재의 사전 징후가 있었지만, 역시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참사를 낳은 구조는 왜 나아지지 않고 되레 반복되는가. 그것은 한국 사회에 어떤 제도와 규제를 가져다 대며 안전 사회를 당겨 오려 하더라도, 이윤 극대화를 위해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힘을 더욱 강하게 밀어내는 일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이런 사회의 민낯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앞선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에서 마지막으로 신원이 확인된 우즈베키스탄 출신 희생자의 이름은 할리코프 누랄리였다. 당시 42살이던 누랄리에게는 타슈켄트에 있는 아내와 세 자녀, 노모와 남동생이 유가족으로 남았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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