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새 사이에 나온 뉴스가 모두 하나의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 2024년 5월25일 신병교육대대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쓰러진 훈련병이 끝내 숨졌다. 이 훈련병은 군기훈련 규정과 달리 24㎏ 무게의 완전군장을 하고 선착순 달리기와 팔굽혀펴기 등을 했다. 이후 근육이 괴사하고 신장 등 장기에 치명적 손상을 입었다. 더욱 치명적인 건 동료 훈련병들이 이 훈련병의 건강 이상을 보고했음에도 지휘관들이 대응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이는 동료 훈련병들도 함께 죽이는 일이다.
5월28일에는 제21대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최종 부결됐다. 이 특검법은 2023년 7월19일 폭우 피해 지역인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던 해병대 채수근 상병의 죽음에 대한 수사 방해와 사건 은폐 등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법안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이 수사 대상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권력자들이 치적을 위해 어린 장병을 사지로 내몰고도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2022년에만 장병 93명이 사망했다. 이 가운데 20명은 익사나 자동차 사고 등 안전사고로 숨졌고, 73명은 자살 등 군기사고로 숨졌다.
같은 날 교육부는 개별 학생과 고등학교의 수능 성적을 시·군·구 단위까지 100% 공개하기로 했다. 옆 책상에 앉은 학생보다 1점이라도 더 받아서 그를 짓밟아야 살아남는 학생 간 서열화와 함께 지역과 학교를 줄 세우는 서열화까지 조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때도 같은 장관직을 맡으며 자율형 사립고를 만들어 고교 서열화를 만든 주범이다.
5월29일에는 제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도 해산했다. 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시민 500명이 주말까지 반납하며 공부하고 숙의한 뒤 도출한 민주적 연금개혁안은 휴지 조각이 됐다. 시민 다수가, 특히 청년들까지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불안한 노후를 더 두텁게 보장받고 싶다고 했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이 바람을 외면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다.
같은 날 통계청은 2024년 1분기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0.7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1분기 기준 역대 처음으로 0.8명대가 붕괴했다. 올해 합계출산율은 벌써 지난해 0.72명을 밑도는 0.6명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니까 이 수치는 앞의 네 가지 뉴스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이 온 힘을 그러모아 재생산을 파업한 결과다. 국가의 부름에 응답했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겼는데 아무런 조처를 해주지 않고, 심지어 위험 작업을 시켜 사망에 이르렀는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현실. 학생의 시험 점수를 평가해 능력별로 줄 세우기 해서 청장년 시기 효율적인 착취 체계를 만들려고 하면서도, 정작 일하기 힘들 만큼 늙고 병들어 착취가 불가능해지면 노후 불안은 알아서 극복하라고 말하는 현실. 이것이 한국인들이 ‘내 아이마저 이런 현실을 겪게 할 순 없다’고 외치며 이 나라는 차라리 소멸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는 이유 아닐까. 이번호 <한겨레21>은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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