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25일 육군 제12사단에서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숨진 훈련병은 군 구급차로 속초의료원에 이송되던 도중 잠깐 의식이 돌아왔을 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군인권센터가 6월12일 기자회견을 열고 훈련병의 사인이 패혈성 쇼크에 따른 다발성 장기부전이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전한 말이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온몸의 장기가 차츰 기능을 멈추는 절명의 상황에서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했던 훈련병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했다. 저 말에서 자신의 생명보다 조직에 끼칠 피해를 먼저 걱정하게 하는 군대 조직의 퇴행성을 읽을 수도 있지만, 아픈 사람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 시선이 평소 얼마나 폭력적인지에 대해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한국에서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동시에 여러 가지 낙인을 얻게 한다. 사회의 요구에 따라 무언가를 해야 할 때 즉각 반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가 되기도 하고, 모두가 집단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고 있을 때 홀로 떨어져 나가는 낙오자가 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지 못해 몸을 아프게 한 죄인이 될 때도 있다. 한국에서 건강한 몸 상태는 ‘정상인’의 의무다. 그러니 아픈 사람에게 “도대체 뭘 잘못해서 아픈 거냐”고 묻는 말이 한국만큼 자연스럽게 나오는 곳도 없다. 군기훈련을 받다가 쓰러진 훈련병에게 중대장이 한 말도 “일어나, 너 때문에 애들(군기훈련 받던 다른 훈련병들)이 못 가고 있잖아”였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도 질병이 내 몸을 찾아온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무언가에서 감염됐을 수도 있고, 나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오랜 습관이 유발한 것일 수도 있고, 유전에 따른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추정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우리가 모두 아팠거나 아프거나 아플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점이 과거이거나 현재이거나 미래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는, 어떤 이유에서 병이 생겼든,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의지로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일에 대해 온전히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한 일이다. 그러니 모든 아픈 사람은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아울러 그 치료는 아팠거나 아프거나 아플 개인들이 연결돼 만든 사회가 담당해야 한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는 치료받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오랫동안 싸워온 한 엄마의 투쟁기가 담겼다. 직접 외국에서 의료기기를 도입해오고, 병에 걸린 아들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이 의료기기를 개조했다. 아들과 같은 병을 가진 수만 명의 동료에게 자신이 들여와 개조한 이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기도 했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도맡아 하면서 고군분투한 이 엄마에게 정작 국가가 한 반응은 관세청의 고발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검찰 송치였다.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규칙을 영혼 없이 적용하면서 국가기관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일에만 골몰한 관료주의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관료주의의 민낯은 우리가 군대라는 조직에서 자주 목격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한겨레21>이 투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유해 이 민낯을 고발한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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