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의 계절이다. 여기저기 냉면집에서 냉부심(냉면 자부심) 넘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평양에서 태어나 한반도 전체로 퍼진 냉면은 이제 전세계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그래서 냉면에 미친 냉면광, 냉면을 사랑하는 냉면애호가, 냉면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는 면스플레이너도 많다. 수많은 냉면광, 냉면애호가, 면스플레이너 속에서 냉면주의자를 자처하는 요리사가 있다. 바로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이다. 2024년 7월4일 서울 중구 남포면옥에서 박 요리사를 만나 냉면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VBBsWfIQ_8&t=2s)
—냉면은 여름 음식인가, 겨울 음식인가.
“이제는 사철 음식에 가까워졌는데, 원래는 겨울이었다. 냉면의 물성 자체가 겨울에 가능했다. 조선시대에 동빙고, 서빙고가 있었지만 여름엔 얼음이 귀했고 비쌌다. 전기를 이용해 제빙이 가능해진 일제 때부터 여름 냉면이 가능해졌다. 아무래도 더우면 사람들이 찬 걸 찾으니까. 그때부터 냉면의 상업화도 이뤄졌다.”
본래 냉면의 계절은 겨울이다. 냉면의 주재료 가운데 메밀은 가을에 거두고, 동치미는 겨울에 담갔으며, 꿩도 주로 겨울에 사냥했다. 통상 이 세 가지가 냉면의 원형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재료다. 또 냉면 먹는 풍경도 겨울이었다. 꽁꽁 언 한겨울 날, 쩔쩔 끓는 구들방 아랫목 삿자리에 앉아, 쩡하게 먹는 것이 냉면이었다. 이런 풍습에 대해선 백석의 시 ‘국수’를 포함해 많은 글과 증언이 남아 있다.
2024년 4월 서울의 대표적 냉면집 가운데 하나인 을지면옥이 종로구 낙원동에 다시 문을 열었다. 재개발로 2022년 6월 중구 입정동에서 문을 닫은 지 1년10개월 만이었다. 을지면옥이 ‘중구’에서 ‘종로구’로 옮겼다는 점에서도 화제였다. 그동안 서울에서 전통 있는 냉면집들인 우래옥, 필동면옥, 평양면옥, 평래옥, 남포면옥 등은 대부분 중구에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냉면집들은 왜 중구에 많은가. 실향민이 중구에 많이 사나.
“서울에서 상업이 활발한 중구에 이북 실향민이 온 것이다. 서울의 옛 시장은 대부분 중구에 몰려 있다. 10곳은 될 것이다. 장사를 많이 하던 곳에 해방 뒤 이북 실향민들이 더해졌다. 실향민의 생활 거점은 시장이었고, 거기서 실향민이 모이기도 했다. 실향민들이 모이니 냉면집도 생겼을 것이다. 또 냉면은 여름 한 철 장사니까 가능하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열어야 했다.”
냉면집이 주로 중구 쪽에 몰린 것은 해방 뒤에 두드러졌다. 일제 때도 상업 중심지였던 중구의 을지로와 청계천 주변에 냉면집이 많았다. 그러나 현재와 달리 종로구에도 낙원동 부벽루, 돈의동 동양루, 종로의 평양루 등 유명한 냉면집들이 있었다. 그러나 종로구의 냉면집들은 6·25전쟁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1946년 중구 주교동에 평양 사람 장원일이 우래옥(애초엔 서북관)을 열면서 현대 평양냉면의 시대가 열렸다.
평양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과 관련해 다양한 속설과 금기가 있다. 예를 들면, 면을 가위로 잘라서 먹지 말라든가, 겨자나 식초를 뿌리지 말라든가, 면수에 간장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서 마시라든가, 면을 먹기 전에 국물을 한 모금 맛보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냉면을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나. 냉면에 겨자나 식초를 넣어야 하나.
“그게 법칙이 없다. 그냥 각자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된다. 나도 보통 그냥 먹지만, 맛이 조금 난삽한 냉면에는 겨자나 식초를 친다. 2018년 4월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 남한의 냉면애호가들이 충격을 받았다. 평양냉면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간결하게 먹어야 한다는 냉부심이 박살 났다. 북한 냉면은 면이 시꺼멓고 겨자, 식초, 매운양념(다대기)을 다 넣어서 먹었던 것이다. 사실 우래옥에서 오래 근무한 평양 출신 김지억 전 전무에게 물어봐도 과거에 북한에서도 겨자, 식초를 다 넣어서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평양냉면도 시대에 따라 변해왔고 어떤 순정한 냉면이 있는 게 아니다.”
실제로 1998~2008년 금강산 관광 시기에 옥류관을 방문한 사람들은 북한 평양냉면을 보고 놀랐다. 냉면 사리 빛깔이 매우 검고, 식감도 당면처럼 물렁했기 때문이다. 남한의 사리는 옅은 회색이고 탄성이 없이 뚝뚝하다. 또 남한에선 겨자와 식초를 치지 않는 것을 ‘정통’으로 치는데, 북한에서는 안내원들이 면에 식초를 쳐서 먹으라고 권유할 정도였다.
냉면은 빈자의 음식 같은 이미지를 가졌지만, 현실에선 부자의 음식이라고 봐야 한다. 2024년 6월 서울의 주요 평양냉면집의 물냉면값은 1만5천원 안팎이다. 가장 오래된 냉면집인 우래옥의 물냉면 한 그릇은 1만6천원이다. 한국소비자원의 평균 가격으로도 냉면은 2024년 6월 현재 1만2천원 정도다. 비빔밥 1만1천원, 칼국수 9천원, 김치찌개 8천원, 짜장면 7천원보다 비싸다.
—냉면값이 최고 1만6천원까지 올랐다. 이 가격은 합리적인가.
“거지 같은 파스타도 2만~3만원 받는 경우가 있다. 냉면값이 1만7천원이어도 ‘그 정도 받아야지’ 생각하는 집도 있고, 1만4천원이어도 ‘무리하게 받네’ 생각하는 집도 있다. 근본적으로 메밀값이 밀값보다 훨씬 비싸다.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냉면 면을 만들 때 좋은 메밀 70%를 썼다면 메밀값만 해도 만만치 않다. 또 냉면은 아무래도 여름에 압도적으로 많이 먹으니 다른 계절엔 냉면집에서 임대료나 인건비도 내기 힘들다. 그런 비용도 일부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함흥냉면도 좋은 홍어나 가오리 쓰고, 값싼 타피오카 전분 대신 고구마·감자 전분 쓰면 가격이 올라간다.”
—냉면 먹을 때 ‘선주후면’(술 먼저 냉면 나중) 풍습이 있다.
“서민들은 할 수 없었던 양반들의 식습관이다. 양반들이 요릿집에서 술 마시고 (속풀이로) 국수를 달라고 한 것이다. 과거엔 국수가 귀한 음식이어서 권력 있는 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었다. 이들은 국수를 냉면으로도 먹고, 온면으로도 먹고, 골동면(비빔면)으로도 먹었다. 옛 그림에 나오는 것처럼 고기 구워 먹고 나서 국수 먹는 것은 경화세족(서울에서 대대로 사는 권력 가문)과 같은 이들이 아니면 어려웠다. 지금은 신분제가 없어지고 경제가 발전해 누구나 냉면을 쉽게 먹을 수 있게 됐다.”
과거 선주후면은 양반의 풍습이었다지만, 현재 선주후면은 술꾼의 풍습이다. 수육이나 만두, 어복쟁반을 안주로 먼저 술을 마시고 그다음에 냉면을 먹는 것이다. 냉면만을 안주로 술을 마시기엔 뭔가 부족하고, 냉면과 안주를 함께 주문하면 술을 먹는 동안 냉면이 불어서 맛이 없어진다. 현대에도 선주후면은 살아 있다.
냉면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평양의 냉면이지만 해주, 진주의 냉면도 과거부터 유명했다. 함흥 회냉면, 강원도 막국수, 부산 밀면, 일본 소바도 역시 냉면의 가지들이다. 함흥 회냉면이나 부산 밀면은 북한에 뿌리를 두고 남한에서 다시 태어난 냉면이다. 일본 소바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막국수도 냉면인가.
“냉면과 막국수는 물성적으로는 같다. 정치적으로 다른 것이다. 겨울에 강원도에서 살얼음 낀 동치미에다 메밀면을 넣으면 막국수가 된다. 강원도 시골에서 먹는 막국수는 좀더 평양냉면과 유사했을 것이다. 시골에서 먹던 막국수가 도시에 나와 상업화하면서 참기름, 양념, 김 등이 더 들어갔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냉면집은 어디인가.
“새는 가장 처음 본 존재를 자기 어미로 생각한다고 한다. 나도 처음 먹은 냉면집이 가장 맛있다. 지금 남아 있는 냉면집 중에서는 부원면옥과 우래옥이 어려서부터 먹던 곳이다. 부원면옥은 어머니가 좋아하셨는데, 남대문시장에 있는 서민적인 국숫집이다. 닭무침에 소주 마시면 맛있다. 우래옥은 특별한 날 아버지와 불고기 먹으러 가는 곳이었다. 냉면 애호가들이 부원면옥은 저가 냉면, 우래옥은 고급 냉면이라고 하는데 나는 관심 없다. 나중에 냉면에 대한 기준과 애호가 생겨서 을지면옥도 많이 갔다.”
—왜 사람들이 평양냉면에 점점 빠져드나. 대체 평양냉면이 뭐기에.
“하나는 이북 실향민의 힘이다. 평양냉면이 이미 조선 때부터 유명했고, 전쟁 뒤 실향민들이 남한에서 정치, 관료, 언론 분야에 진출하면서 냉면이 확산됐다. 그들이 냉면을 사먹고 이야기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또 그 아이들에게도 실향민 정체성이나 냉면 문화를 전달해 더 강화되고 있다. 사실 남한에서 맛있는 평양냉면의 기준을 결정한 것도 실향민이었다.
거기에 신비주의가 더해졌다. 우리가 평양냉면의 고향인 북한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99%의 한국인은 북한이 아닌 곳에서 북한 음식을 먹어봤고, 정작 북한에서 먹어볼 수 없다. 그러니까 북한의 진짜 평양냉면이 어떤지 궁금한 것이다. 그래서 이북에서 오신 분들이 문을 연 평양냉면집은 기본적으로 먹고 들어가는 게 있다.
마지막으로 평양냉면은 같은 냉면이 하나도 없다. 북한에서 옥류관이 유명하지만, 식당마다 면의 메밀 함량이나 국물의 고기 배합이 다르다. 북한의 유명한 냉면집을 많이 다녀본 일본인이 있는데, 그도 ‘식당마다 냉면 맛이 다르다’고 하더라. 결국 평양냉면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가 잘 모른다. 잘 모르기 때문에 신비하고 매력적이다.”
박 요리사를 만나 평양냉면은 무엇인지, 그 매력은 무엇인지 알아보려 했는데, 그는 “잘 모르기 때문에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야말로 평양냉면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북한 평양에서 태어난 음식, 조선 때부터 서울에서 유행한 음식, 지난 80년 동안 남한에서 따로 발전해온 음식, 유네스코 무 형문화유산에 오른 음식, 남북 정상회담 때마다 화제가 된 음식. 그런데 우리는 그 음식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른다.
—이렇게 냉면 좋아하는데, 냉면집 열 생각이 없나.
“정말 뛰어난 냉면은 2%의 비밀이 있는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신흥 냉면집들이 그걸 커버하려고 창의력 발휘해서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노포들이 가진 2%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냉면집은 냉면 만드는 전 과정을 직원들에게 순환시키지 않는다. 전 과정을 순환시키면 그 냉면집의 노하우를 알게 되니까. 그걸 알지 못하면 냉면집은 못할 것 같다. 그걸 알아야 진짜 냉면이 될 것 같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김남천·백석 등, <평양냉면>, 가갸날, 2018
박찬일, <내가 백년식당에서 배운 것들>, 인플루엔셜, 2021
박찬일, <노포의 장사법>, 인플루엔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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