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26일 경기도 화성시청 모두누림센터 2층 ‘유가족 대기실’. 이틀 전 화성의 리튬 1차전지(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숨진 희생자의 유가족 몇몇이 이곳에 모였다. 휴대전화 속 뉴스엔 온통 배터리 공장 화재 참사 소식뿐인데, 경찰과 화성시는 피해자 신원 확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지옥 같은 기다림의 시간에 유가족들은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힘없이 앉아 있던 나이 든 여성이 전화를 받더니 잠시 뒤 머리를 감싸쥐었다. 28살 딸을 잃었다는 사실이 끝내 확인됐다. 시신이 참혹하게 소실돼 신원 확인이 안 되던 딸이었다. 사람들의 다독이는 손길도 그에겐 닿지 않았다. 이 여성 옆에는 이번 화재 참사로 아내를 잃은 또 다른 유가족이 망연히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울었다.
이번 화재 참사로 숨진 노동자만 23명. 이 가운데 17명이 이주노동자다. 15명이 여성이고, 4명이 30살 미만 청년이다. 모두 아리셀 공장으로 출근했다가 끝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번 사고는 불량품에 의한 화재로 보이는데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여서 평상시 위험물 관리는 물론 사고 초기 대응도 잘돼야 합니다. 그런데 (배터리가 쌓여 있는) 현장을 보면 위험물 취급 시설이라기보단 마치 인형 조립 공장 같거든요. 작업하신 분들도 대피해야 할 타이밍에 소화기를 들고 있고요. 적어도 관리직 중엔 리튬 배터리 위험성을 아는 사람이 분명히 있었을 건데, (조직 전체에 위험을 전달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화재 참사 발생 당시 시시티브이(CCTV) 영상을 본 함승희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의 총평이다.
이번 화재를 촉발한 원인은 아리셀이 만든 원통형 리튬 배터리(‘리튬염화티오닐’ 배터리)다. 주로 배터리를 완충, 포장한 뒤 보관하는 과정에서 화재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불량품이 검수 단계에서 걸러지지 않고 보관 장소로 이동했다가 뒤늦게 불이 나는 경우다. 부품이 눌렸거나 분리막에 구멍이 나는 등 결함이 있으면 배터리 내부 온도가 급격히 올라 불꽃이 튄다. 주변에 가연성 물질이 있다면 불은 순식간에 커진다. 사고 영상을 보면, 아리셀도 리튬 배터리를 한데 쌓아두고 박스에 포장하는 방식이었다. 사고 당시 아리셀 공장 내부에 있던 배터리는 3만5천여 개에 이른다.
“리튬 배터리는 제조 단계에서 큰불이 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배터리가 충전된 이후, 특히 완제품을 포장하거나 에이징(배터리 전해액이 충분히 분산될 때까지 보관하는 공정)하는 단계에서 큰불이 나죠. 검수 단계에서 불량품을 못 거른 경우인데요. 코스트코처럼 커다란 창고에 대용량으로 배터리를 적재해놨는데 그중 불량품 하나가 불나면 끝이죠. 다른 배터리로 순식간에 옮겨붙으니까요.” 정기백 금속노조 삼성에스디아이(SDI)지회 사무장의 말이다.
이준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도 2019년 발간한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시설의 위험도 분류 및 방재기준 연구’ 보고서에서 리튬 배터리 에이징 공정의 풍경이 마치 ‘배터리 대형 창고’와 다름없다고 봤다. “충방전 전기설비를 제외하면 리튬이온 배터리가 대부분의 화재하중을 차지한다. 즉, 제조공정이라기보다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형 창고로 간주해 방호 기준을 수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화재를 막으려면 배터리를 가급적 소량 보관하고, 불량품을 발견하면 즉각 조처해야 한다. 전기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2차 전지(리튬 이온 배터리)를 만드는 국내 3사의 경우 셀과 셀을 처음부터 분리 보관해 불이 옮겨붙는 것을 방지한다. 또 열 감지 센서를 비치해 일부 배터리 온도가 특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자동으로 소화약제를 뿌린다. 여기서도 불길이 잡히지 않으면 스프링클러로 물을 들이붓는다. 경우에 따라 불이 붙은 배터리를 수조에 통째로 빠뜨려 냉각시켜야 할 수도 있다. 함승희 교수가 보는 리튬 배터리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은 불량품에서 가스가 나오고 6~8분. 이를 넘기면 불이 손쓸 수 없이 커진다. “사실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해놔도 불이 일단 번져버리면 방법이 없어요. 최대한 작은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죠.” 2차전지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특히 1차전지는 2차전지보다 더 위험하다. 재충전이 가능한 2차전지는 20~30%만 충전해 판매하는 반면, 건전지처럼 충전 없이 쓰는 1차전지는 상품을 출하할 때부터 100% 충전돼 있어서다. 그만큼 에너지 밀도가 더 높고 화재 위험도 크다. 배터리 보관에 각별히 신경 쓰고 설비 투자를 해야 했다는 뜻이다. “리튬 배터리를 취급하는 공장은 건물 설계도 잘돼 있어야 해요. 셀을 분산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고 대피로도 많아야 하죠. 아마 영세업체가 이런 투자를 자진해서 한 경우는 별로 없을 겁니다.” 2차전지 업계 관계자가 덧붙였다.
규제가 없는 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하위규칙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16조와 제17조는 리튬 배터리에 적용할 수 있는 보관 및 취급 관련 규제다. 위험물을 별도 장소에 보관하고, 비상구를 수평 거리 50m마다 확보하도록 했다.
하지만 아리셀은 공장 구조를 무단으로 변경해 배터리 보관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은 정황이 짙다. <한겨레21>이 정혜경 진보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아리셀의 사고 직후 공장 구조를 보면,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지점과 노동자 업무 공간이 전혀 분리돼 있지 않았다. 현장 CCTV를 봐도 리튬 배터리를 쌓아둔 곳 바로 옆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었다. 그 결과 불이 번졌을 때 삽시간에 작업장 쪽으로도 흰 연기가 퍼져 대피가 불가능했다.
반면 아리셀의 2018년 사용 승인 당시 공장 내부 도면을 보면,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 보관 장소가 별도의 독립 공간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작업장과 격리해서 배터리를 별도 보관한 것처럼 도면에 적었다는 뜻이다. 소방당국은 사고 직후 이 도면으로 언론 브리핑을 열었다가 실제 구조와 다른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화성소방서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아리셀이 2018년 제출한 도면을 기준으로 언론에 설명했는데, CCTV 영상과 비교해 보니 도면과 실제 구조가 다른 게 확인된다”며 “합동수사본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아리셀이 사용 승인 당시엔 위험물을 적재할 별도 공간을 갖춘 것으로 도면을 신고하고, 실제 사업할 땐 내부 구조를 임의로 변경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아리셀은 화재 위험을 거의 방치했던 듯하다. 사고 영상을 보면, 포장을 앞둔 리튬 배터리가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바구니 위에 바구니를 쌓는 식으로 배터리를 겹겹이 쌓아둔 상태였다. 그 바로 옆에서 노동자들이 일했다. 위험물을 보관할 별도의 공간도, 최소한의 가림막도 없이 위험물과 함께 일했다. 결국 쌓여 있던 배터리 중 일부 불량품에서 불꽃이 튀어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노동자들이 달려와 소화기를 들고 불을 끄려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삽시간에 흰 연기가 퍼져나갔다. 하필 전해액으로 쓰는 ‘염화티오닐’도 유해물질이었다. 사람이 이 물질에 닿으면 눈과 코가 따갑고 방향 감각을 상실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정작 회사가 가진 방재 물품은 초라했다. 2020년 아리셀이 화성시청에 제출한 ‘화학사고 위험 및 응급대응 정보 요약서’를 보면, 아리셀은 분말소화기 99개와 금속화재용(D급) 소화기 5개, 옥내소화전 5개를 보유했다고 썼다. 일반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ABC 분말소화기는 물론, 금속화재용 소화기도 리튬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하긴 어렵다. 불이 난 불량품을 즉시 다른 제품과 분리하고 빠르게 냉각시키는 설비가 있어야 했다. 당시 아리셀은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물품도 보호장갑과 보호복, 방독마스크 등 8개로 적었다. 일하는 사람은 52명인데, 화재 대비용 물품은 6분의 1만 보유했다고 적은 것이다.
리튬을 취급하는 기업 상당수가 영세업체다. 경기도에 있는 리튬 취급 사업장 86곳 중 73곳(84.9%)이 50명 미만 사업장이다. 사고가 난 아리셀도 50명을 겨우 넘긴, 상시 근로자 52명인 사업체다. 예산을 이유로 안전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호 소방재난본부장은 6월25일 브리핑에서 “바닥 면적 5천㎡ 이상인 공장부터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게 돼 있는데, 이 공장은 거기에 미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없어도 된다”고 말했다. 재난 예방 등을 고려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공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뜻이다.
설상가상으로 희생자 상당수는 ‘메이셀’이라는 하청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된 이들이다. 일용직으로 회사 요청이 있을 때 공장에 일하러 갔다고 한다. 건물 내부 구조가 낯설고 관련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불이 번지자 밀폐된 공간으로 대피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반면 건물 안 구조를 잘 알았던 또 다른 노동자는 2층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구했다. 노동부는 아리셀의 불법파견 여부를 조사 중이다.
리튬 배터리 화재는 한번 커지면 걷잡을 수 없다. 소방당국도 최적화된 소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상태다. 불이 나면 대피가 최선이라는 뜻이다. 건물에 대피로를 여러 군데 확보해두고, 평상시 탈출 시나리오와 건물 구조를 수시로 교육해야 유사시 탈출할 수 있다. 그런데 도면을 보면 비상계단 2개와 통하는 대피로는 출입구 하나였다. 그마저도 배터리를 쌓아둔 곳(발화 지점)이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출입구 바로 앞이어서, 불이 붙었을 때 노동자들이 그쪽으로 탈출하기 어려웠다. 노동자들은 치솟는 화염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가 막다른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화재 위험이 상존하는 리튬 배터리를 다루면서도 건물 구조상 신속한 대피가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아리셀은 코스닥 상장사 ‘에스코넥’ 자회사다. 모회사 에스코넥이 꾸준히 투자금을 대고 지원했다. 그런데 왜 안전 투자는 이토록 미진했을까. 리튬 배터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도와 안내부터가 부족했다. 현행 노동 안전 규제는 대부분 금속 리튬에 대한 일반론적 안내에 그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과 안전보건공단의 안내서를 보면, 리튬을 ‘물 반응성 물질 및 인화성 고체’로 분류하고 “물과 접촉을 금지할 것” “가열·마찰·충격을 가하지 말 것” 등을 안내하고 있다. 위험물안전관리법도 리튬을 ‘3류 위험물’로 분류해 별도 저장 장소 등을 안내한다. 그러나 리튬을 소재로 한 배터리의 고유한 화재 위험에 대해서는 보관 방법 등 구체적 안내가 없다. 리튬을 소재로 한 배터리는 금속 리튬과는 별개로 열 폭주 등 고유의 화재 위험을 안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따로 안내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직업안전건강관리청(OSHA)은 적어도 리튬 배터리가 들어간 소형기기를 썼을 때 생기는 문제를 자료로 안내하고 있다. 2019년 발행된 관련 가이드 자료엔 이렇게 쓰여 있다. “리튬 배터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화재나 폭발 위험이 생긴다. (…) 셀이 망가져 열이 발생하면 주변 셀들을 망가뜨릴 수 있고, 소위 ‘열 폭주’라 일컫는 연쇄 효과로 더 큰 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
국내에서도 리튬 1차전지 주요 고객인 국방부가 위험에 주목하긴 했다. 리튬 배터리 폭발 사고가 하도 많아, 2020년 관련 대책을 내고 대체품도 찾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튬전지 폭발 위험에 관한 군의 문제의식은 거기서 멈췄다. 군인에게 위험한 제품이었다면 이를 만드는 노동자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데, 노동부도 국방부도 제품 생산 과정까지 돌아보진 않았다.
정부는 사고 이후 부랴부랴 리튬 배터리 취급 사업장의 사고 위험을 파악하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6월25일 “전지 등 화재위험 방지 대책 티에프(TF)를 꾸리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리튬 1차전지 취급 사업장 전수 점검도 검토하고 있다.
경찰과 노동부는 6월26일 아리셀과 에스코넥, 인력 파견업체 메이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앞서 경찰과 노동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총괄본부장, 안전분야 담당자, 인력파견업체 관계자 등 5명을 업무상과실치상,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하고 전원 출국 금지했다.
“솔직히 리튬 배터리 폭발 문제가 제기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정부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관련 사업장에 좀더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규제도 정비했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제일 안타깝고 화나는 부분이죠.” 정기백 사무장이 말했다.
화성=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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