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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흑막’에 회장님 있었다

SPC그룹 노조파괴 사건 ②
가짜노조까지 동원해 노조 파괴
노조 증거자료·인터뷰, 검찰 공소장 등으로 7년 싸움 재구성
등록 2024-06-22 16:07 수정 2024-06-25 21:14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과 전국화학섬유섬식품노조 회원들이 2024년 5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에서 `에스피시(SPC) 파리바게뜨 노조파괴 범죄 처벌과 공범 노조 해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원 한겨레 기자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과 전국화학섬유섬식품노조 회원들이 2024년 5월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정문에서 `에스피시(SPC) 파리바게뜨 노조파괴 범죄 처벌과 공범 노조 해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영원 한겨레 기자


☞☞장편 기사는 분량을 나누어 독자께 선보입니다. SPC그룹의 제빵사노조 파괴를 다룬 이 기사는 ‘파리바게뜨 제빵사들, 7년 탄압 버텨내고 ‘최종 보스’를 만나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95.html)에서 이어집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잖습니까. (민주노총이) 자기 조합원 수가 줄어들었다고 남 탓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전진욱 피비파트너즈 노조위원장, 2021년 7월2일자 TV조선 인터뷰에서)

SPC그룹의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바로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노조(이하 ‘사쪽노조’)다.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사쪽을 두둔하고 민주노총 노조(이하 ‘민주노조’)를 비난했다. 검찰은 이 노조가 설립 단계부터 회사 지시로 세워진 가짜 노조라고 판단했다. 전진욱 위원장도 허영인 회장 등과 함께 노조파괴 혐의자로 재판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노조도 승자독식 체제다. 한 사업장에 노조가 2개 이상이면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노조가 모든 교섭권을 가져간다. 이 때문에 사쪽이 민주노조를 무력화하려 가짜 노조를 설립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사쪽노조가 교섭권을 가지면 민주노조와 교섭하지 않아도 되고 파업도 봉쇄할 수 있어서다.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6월14일 서울 영등포구 지회 사무실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이 6월14일 서울 영등포구 지회 사무실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SPC그룹이 정확히 이런 이유로 사쪽노조를 설립·지원했다고 검찰은 본다. 2017년 7월 불법파견을 문제 삼는 민주노조가 설립되자, 그해 12월 사쪽이 협조적 인물을 골라 사쪽노조를 부랴부랴 설립했다는 것이다. 이 노조는 회사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사내의 다른 노조와도 통합하며 급격히 세를 불렸다. 급기야는 2018년 8월 교섭권을 독차지(‘교섭대표노조’ 획득)했다.

회사의 신입사원 몰아주기 전략도 주효했다. 신입사원들에게 입사 조건부로 사쪽노조 가입을 유도한 것이다. 이 일로 6주 만에 조합원이 900명 불어나 제빵기사 절반 이상이 사쪽노조 조합원이 됐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이 역시 부당노동행위로 판단했다.

“사쪽노조는 신입 기사가 언제, 어디서 단체교육 받는지 다 아는데 저희는 몰랐거든요. 항의하니까 기사 개개인의 매장 첫 방문 시간을 알려주더라고요. 파리바게뜨 가맹점이 전국에 있으니까 12시에 목포, 1시에 서울 이런 식이었어요.”

“일단 그거라도 해야 해서” 일일이 찾아갔다. 그런데 신입 기사들은 이미 사쪽노조에 가입돼 있었다. ‘회사의 적극적인 홍보’가 있었다고 했다.

홍보 임원이 대필한 사쪽노조 입장문

SPC 쪽은 혐의를 부인한다. 사쪽노조도 자주적 노조이며, 제빵기사들의 자발적 지지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쪽노조의 활동은 주로 민주노조 위축시키기에 맞춰졌을 뿐 노조 본연의 활동은 관심 밖이었다. “노조 소개하는 시간이 단체협약에 있는데 사쪽노조만 참여가 보장됐어요. ‘우리도 들어가겠다, 뒷순서여도 상관없다’고 했더니 사쪽노조 쪽에서 뭐라고 답했는지 아세요? ‘그냥 둘 다 들어가지 말자’더군요.”

비슷한 정황은 또 있다. 사쪽노조를 홍보한다며 제빵기사를 찾아온 관리자가 사쪽노조 가입서 대신 민주노총 탈퇴서를 내밀었다. 또 민주노조가 회사와 갈등할 때면 사쪽노조가 앞장서서 민주노조를 비난했다. 이 역시 SPC그룹 홍보 임원이 직접 문장까지 써준 것이었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파리바게뜨지회 최유경 부지회장이 6월14일 서울 영등포구 지회 사무실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파리바게뜨지회 최유경 부지회장이 6월14일 서울 영등포구 지회 사무실에서 한겨레21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거기(사쪽노조)가 어용노조라는 게 현장에선 너무 당연했어요.” 임 지회장이 말했다. “그 노조가 처음 설립될 때 제빵기사 유○○씨가 위원장이고, 전진욱씨는 부위원장이었거든요. 원래 전씨가 유씨의 직속상사인데 노조에선 관계가 뒤바뀐 거예요. 겉보기에 제빵기사 노조여야 하니까요. 물론 실제 교섭엔 전씨만 나왔죠. 유○○씨는 그 시간에 빵 만들고요.”

사쪽노조는 민주노조의 교섭권을 봉쇄하는 데 온통 촉각을 곤두세웠다. 2022년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을 제안했을 때도 ‘왜 우릴 빼놓고 얘기하냐’며 항의했다. 회사는 이를 핑계 삼아 검증에 응하지 않았다. 같은 해 민주노조가 처우 개선에 관한 별도 합의(일명 ‘노사 상생 협약’)를 어렵사리 이끌어냈을 때도 사쪽노조는 효력을 정지하라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6월14일 1심에서 기각됐다.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면 모든 직원이 혜택을 본다. 자회사 직원도 본사직 수준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보장받는다. 그런데 사쪽노조는 자기 조합원에게도 득이 되는 길마저 막았다. 자주적 노조로 보기엔 의구심이 가는 대목이다.

2022년 8월4일 임종린 지회장이 SPC파리바게뜨 사태 해결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오체투지하고 있다. 김명진 한겨레 기자

2022년 8월4일 임종린 지회장이 SPC파리바게뜨 사태 해결과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용산 대통령실을 향해 오체투지하고 있다. 김명진 한겨레 기자


교섭권을 빼앗긴 뒤 민주노조 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소수 노조가 되면 회사랑 대화 자체를 못해요. 작은 거 하나 문제 제기해도 회사가 ‘교섭대표노조(조합원이 더 많은 노조)랑 얘기 중이니 너네랑은 안 한다’는 식이에요. 저희도 조합원 고충 들어오면 해결해야 한단 강박을 느껴요. 그런데 소수노조는 회사 시스템을 바꾸는 대화에 아예 낄 수가 없어요. 그러면 모든 사안을 전부 개별 대응해야 하는데, 노사 모두에 소모적인 일이죠.” 임 지회장이 말했다.

올해로 민주노조는 설립 7년째를 맞았다. 그중 4년을 회사와 싸우며 보냈다. “언제부턴가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우리가 맞는다고,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부당노동행위)이 있고부턴 ‘내가 주장한 게 다 틀린 건가’ ‘사쪽 주장대로 우리는 몽니 부리는 사람들인가’ 싶더라고요. 그래도 수사 결과가 나온 거 보고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어요. 우리가 해왔던 길이 그래도 옳은 일이었구나 싶어서요.” 최 부지회장이 말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현실은 고달팠다. “조합원이 용기 내서 진술해도 자꾸 녹취, 캡처 등 물증을 갖고 오라는 식”이었다. 고작 2년에 불과한 부당노동행위 형량도 실망스러웠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조합원 750명이 고통받았는데 고작 2년이 맞나” 허탈했다.

탄압의 쓰라린 경험도 아직 생생하다. “밖에서 요즘 ‘(조합원) 얼마 늘었어?’ 물어봐요. 저희가 맞는다는 신문기사가 쏟아지고 회장이 잡혀 들어가니까 그게 노조 가입으로 연결될 거라 생각하죠. 할 말이 없어요. 현장에선 여전히 ‘불이익이 있을 것 같다’ ‘관리자랑 척지기 싫다’며 (노조 가입에) 소극적인 반응이거든요.”

대표 구속되자 눈물바람

그래도 노조가 그룹사 회장을 부당노동행위로 재판에 세우는 일은 흔치 않다.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는 그 일을 해냈다. “황재복 대표 구속 결과가 나온 게 (2024년) 3월4일 밤 9시30분쯤이었거든요. 둘이 지회 사무실에 남아서 계속 뉴스를 새로고침 하는데 구속됐다더라고요. 막 울었어요. 이후 허영인 회장이 체포됐다는 소식은 더 믿기지 않았죠.” 임 지회장이 말했다.

조금이나마 지회를 찾아오는 이도 생겼다. “이 와중에 한두 명씩 새로 가입하고 있어요. 기존 조합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권한다더라고요. 그 전에는 본인이 민주노총이라는 것도 숨겨야 했거든요. 지금은 ‘회사가 나쁜 거야, 우리가 여기(민주노조)서 도움받은 게 많아’ 그렇게 말해준다고 해요. 그걸 보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최 부지회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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