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이럴 겁니까? 승진 차별 안 했다고요? 진짜예요?”
법정 앞이 소란스럽다. 재판받고 나오는 검은 양복 무리를 누군가 막아선다. 머리를 질끈 묶고 ‘투쟁’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이다. 그는 아무리 밀쳐내도 다시 외친다. “우리 조합원들이 뭘 잘못했어! 우리 조합원들이!”
한순간의 분풀이가 아니다. 회사 간부들의 조직적 노조파괴로 수많은 조합원을 잃으며 당한 고통이 분노로 터졌다. 이 사람은 2017년 파리바게뜨 최초의 제빵기사 노조(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를 만든 임종린씨다. 2024년 6월18일 노조파괴 작전의 ‘꼭짓점’ 허영인 에스피씨(SPC) 회장을 마침내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 피고인으로 세운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날 열린 첫 공판에서 허 회장 쪽은 “노조파괴도 승진 차별도 없었다”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함께 피고인 자리에 선 황재복 대표의 말은 달랐다. 황 대표 쪽은 “허 회장의 지시로 범행을 저질렀다. 탈퇴 종용과 승진 불이익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파란색 죄수복을 입은 허 회장이 건너편에 앉은 황 대표를 쳐다봤다. 황 대표는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7년. 노조를 지키려는 이와 파괴하려는 이의 긴 싸움이었다. 그동안 SPC그룹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겨레21>이 임종린 지회장과 최유경 수석부지회장 인터뷰, 노조가 모은 증거자료와 검찰 공소장 등을 바탕으로 7년의 싸움을 재구성했다.
“낌새가 이상했어요. 보통 한 달에 탈퇴서가 한두 장 들어오는 정도였는데 그달은 125장씩 들어왔더라고요. 현장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현장관리자(BMC·이하 관리자)들이 탈퇴하라고 찾아온다. 못 오게 막아달라’고요.”
‘그달’은 2021년 1월이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노조파괴를 본격적으로 지시한 시점이 이때다. 앞서 2017년 파리바게뜨지회는 파리크라상이 제빵기사를 직고용하지 않고 하청 노동자로 불법파견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고발했다. 고용노동부가 이를 인정해 과태료 162억원을 부과하고 SPC에 시정지시를 내렸다. SPC는 2018년 1월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빵기사를 자회사 피비(PB)파트너즈로 고용하되 임금 수준을 3년에 걸쳐 본사직과 맞추기로 했다. 편법이었는데, SPC는 이 합의마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노조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SPC는 다른 수를 꺼내 들었다. 노조 자체를 파괴하기로 한 것이다.
2021년 1월을 기점으로 노조는 크게 흔들렸다. 전국 각지에서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이 일하는 가맹점을 일일이 찾아가 민주노총 탈퇴를 회유하고 종용했다. “한번은 제가 밥도 자주 사드리고 연락도 주고받던 조합원이 첫 탈퇴서를 냈더라고요. 전화해 물어보니 ‘민주노총이 변질됐다’는데 다 사쪽 논리였어요. 마음 같아서는 반박하고 싶은데 기운이 안 나더라고요. 그냥 알겠다 하고 끊었어요. 그다음부터는 탈퇴서가 들어와도 연락을 못했어요. (마음이) 힘들어서요.” 임 지회장의 말이다.
탈퇴 명단에는 낯익은 이름이 많았다. 노조 도움으로 퇴사 위기를 넘긴 사람, 엊그제까지 함께 밥 먹으며 결의를 다지던 사람도 있었다. 주된 탈퇴 사유는 진급 불이익이었다. 위조된 탈퇴서도 있었다. 탈퇴한 줄 알았던 조합원이 노조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와 ‘왜 조합비 안 걷어가냐’고 물어왔다. 알고보니 본인은 탈퇴한 적이 없는데 누군가 그 사람 명의로 탈퇴서를 몰래 써낸 것이었다. 범인은 해당 조합원의 관리자. 그는 최근 사문서위조죄로 벌금형을 받았다.
설립 초기 750명에 달하던 조합원은 노조 탄압 약 6개월 만에 240여 명으로 급감했다. 관리자들은 매장 이동, 승진 차별 등 회사의 주요 인사 결정을 노조와 연관 지었다. 조합원 자신뿐만 아니라 상사의 진급에도 불이익이 간다고 겁줬다.
“멍청아, 민노(민주노총)는 진급 안 돼!” “승진하고 매장 옮기려면 일단 민노에서 나와야지.” “민주노총 탈퇴서가 있어야 윗분들한테 눈도장 찍을 수 있대요. 저 좀 도와주세요.” “탈퇴 생각해보자. 내가 더 잘할게.” 조합원 진술서엔 관리자들의 협박과 애원이 생생하게 적혀 있다.
노조 조합원 배아무개씨도 민주노총 소속이란 이유로 1년 가까이 원하는 지역 발령을 못 받았다. 전국적으로 민주노총 탈퇴 실적을 집계할 때라 노조 소속 기사가 오는 걸 어디서도 반기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관리자가 밥을 사주며 “꼭 민주노총에 있어야겠냐, 한국노총으로 넘어오면 지역 이동된다”고 설득했다. “도저히 길이 없으면 그거라도 잡아야 하나 싶다가도 배신자 같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사람들 간절한 마음을 쥐고 흔드는 회사가 너무 치사하게 느껴졌고요.” 그래도 배씨는 노조에 남았다. “내가 직장 내 괴롭힘 겪을 때, 관리자에게 막말 들을 때, 유일하게 나를 도와준 언니들”이라서다.
조합원 강아무개씨도 선임급 기사 등에게 수시로 탈퇴 요구를 받았다. 평판이 안 좋은 관리자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그 사람이 상사로 올 수도 있다”고 협박하거나 “이대로 1명도 못 데려가면 끝날 거 같다”며 애원하는 식이었다. “노조를 선택한 내가 잘못인가, 내 존재 자체가 조직에 혼란을 주는 건가 싶어서” 마음이 힘들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관리자들은 자발적으로 탈퇴 작업에 나선 게 아니라고 했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다”고 조합원들에게 말했다. 이들은 민주노총 탈퇴 현황을 매일같이 집계해 윗선에 보고해야 했다. 관련 단체 대화방이 수시로 만들어지고 사라졌다.
노조파괴 출발점이 허 회장이라는 소문은 임 지회장도 익히 들어 알았다. “관리자들이 근무시간 내내 품질 관리까지 제쳐두고 탈퇴 작업을 하는데 회사가 아무 제지를 않더군요. 어떤 관리자는 탈퇴 설득하러 왔다면서 본인이 벌벌 떨고요.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도 ‘조심하라. 회장이 시켰다고 한다’고 알려줬고요.”
검찰 공소장을 보면, 허 회장은 노조파괴를 수차례 직접 지시했다. 시작은 2019년 7월 임 지회장이 노동자 대표로 선출됐을 때다. 허 회장은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조합원 수가 더 많은 피비노조(사쪽노조)가 질 수 있는 일이냐”며 황 대표를 질책했다고 한다. 황 대표가 ‘사쪽노조를 키워 임 지회장을 떨어뜨리겠다’고 보고하자 그 계획도 승인했다. 또 2021년 1월엔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 숫자를 줄여서 시위할 수 없도록 하라”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매일 탈퇴 실적을 보고받곤 “정리 안 하냐, 속도가 늦다”는 재촉도 했다.
승진 차별이 조합원 회유 카드로 쓰였다. 노조파괴가 본격화된 2021년 5월, 피비파트너즈는 전체 진급자 956명 중 민주노총 조합원은 2.5%(24명)만 포함시켰다. 전체 사원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은 약 9%다. 게다가 승진 평가를 앞두고 민주노총을 탈퇴한 70여 명은 진급했다. 사업부장 1명이 수백 명을 정성평가하는 구조라 사쪽 입김이 작용하기 쉬웠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넣었다. 촘촘한 입증자료가 있어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부당노동행위로 인정했다.
“처음 노조 설립 때부터 ‘민주노총은 진급 차별받는다’는 얘기가 많아서 저희도 민감했거든요. 진급 발표 때마다 명단에서 조합원 수를 확인했어요. 그런데 그 전엔 민주노총 조합원 비중을 딱 맞춰 진급시키더니 2021년엔 그 비중이 확 떨어진 거예요. 현장에선 탈퇴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고요. 승진 차별이 맞다고 보고 자료 준비를 했죠.”
2024년 6월18일 첫 공판에서 회사는 당시 상황을 두고 승진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허 회장 쪽 변호인은 노조 조합원들을 가리켜 ‘희생정신 등이 부족해 점수를 낮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이기기 위해서라도 우릴 그렇게 능력 없고 하찮은 존재로 만들다니 너무 화가 났어요.” 최 부지회장이 말했다.
다시 2021년 5월로 돌아가, 노조는 피비파트너즈를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탈퇴 종용과 승진 차별 등 증거를 제출하며 “회사 차원의 노조파괴 전략이 실존한다. 수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2022년 2월 강제수사 없이 사업부장 이하 실무자 9명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기소 대상엔 대표이사는커녕 노무 담당 임원도 빠져 있었다. “카카오톡 증거를 어렵게 확보해서 제출했더니 수사관이 ‘내 휴대전화는 아이폰이라 노조가 보내준 화면이랑 다르다’는 거예요. 너무 답답했어요.”
솜방망이 수사는 현장의 부당노동행위를 억제하지 못했다. ‘사쪽이 남은 조합원을 퇴사시킬 것’이라는 소문마저 돌았다. 뭐라도 해야 했다. 2022년 3월, 임종린 지회장은 결국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때 어영부영 끝날 뻔했던 수사가 강제수사로 전환점을 맞는다. 검찰이 노동부로 사건을 돌려보내 윗선 수사를 지시한 것이다. 2022년 4월, 고소 1년 만에 첫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단식 농성장에 노동부 수사관이 찾아온 적 있어요. 압수수색했다면서 ‘봐라, 지회장이 노력하니 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럼 우리가 그동안 증거자료 모은 건 노력이 아니었나? 꼭 죽을 각오로 단식해야만 수사가 되는 건가? 허무했어요.” 임 지회장이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장편 기사는 분량을 나누어 독자께 선보입니다. SPC그룹의 제빵사노조 파괴를 다룬 이 기사는 ‘탈퇴 종용, 가짜노조 동원… 노조파괴 ‘흑막’에 회장님 있었다’(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696.html)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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