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사랑하면서 돼지를 먹는 우리에게

동물권 보호를 위해 싸워온 2030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가능주의자’ 개봉을 앞둔 2026년 7월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활동가 민선(왼쪽)과 박이윤정 감독을 만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무언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떤 어둠에 기대어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어둠의 빛에 눈멀어야 가능한 일일까요/ 세상에, 가능주의자라니, 대체 얼마나 가당찮은 꿈인가요.”
2026년 7월1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가능주의자’를 만든 박이윤정(28) 감독은 동물권 운동을 해온 2030 여성 활동가들의 역사와 연대의 기록인 이 작품의 제목을 고민할 때, 나희덕 시인의 시구를 운명처럼 만났다고 했다. 돌고래 방류, 개 식용 종식, 공장식 축산 문제 등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세상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변화를 끌어낸 자신들을 정의하기에 가장 맞춤인 단어였단다.
7월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이윤정 감독은 “이 영화는 ‘그게 가당키나 하냐’는 냉소와 비판에도 지난 13년간 포기하지 않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낸 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기록이자 헌사”라고 소개했다. 출연자 중 한 명으로 함께 자리한 국제 해양환경단체 활동가 민선(28)은 “때로 뒷걸음질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서로를 토닥이고 응원했던 동료들과의 연대가 담긴 작품”이라며 “관객에게도 이 영화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용기와 희망을 줬으면 한다”고 했다.

동물권 보호를 위해 싸워온 2030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가능주의자’ 개봉을 앞둔 2026년 7월7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실에서 활동가 민선(왼쪽)과 박이윤정 감독을 만났다.
영화는 돌고래 제돌이를 바다로 돌려보낸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돌고래’, 개 식용 종식 운동을 이끈 동물해방물결 대표 ‘지연’, 녹색당·멸종반란에서 활동하며 동물권과 기후정의를 함께 연결해 활동해온 차랑, 국내 첫 비거니즘 동아리와 연합 네트워크를 만든 비거니즘 활동가 혜수, 그리고 민선 등 2030 여성 활동가의 인터뷰와 활동 기록을 씨줄날줄로 엮어내며 동물권 의제가 단순한 반려동물 보호를 넘어 전시동물·식용동물의 문제로 확장돼온 과정을 다룬다.
비건 페미니스트가 비건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창작 크루 ‘비건먼지’ 팀의 일원이자 활동가(삐삐)이기도 한 박이윤정 감독은 “속된 말로 ‘맨땅에 헤딩’하면서 활동해온 2030 여성활동가들이 그간 ‘동물해방’이라는 원대한 꿈과 방향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가 이룩해낸 작은 성취에 대해 축하하고 기록을 남겨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며 “창작자로서 내 안의 갈증과 욕심, 우리 자신을 위한 헌사를 남겨보자는 대의가 섞여서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록은 저장될 때가 아니라 함께 기억될 때 비로소 역사가 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영화 ‘가능주의자’는 돌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낸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돌고래’, 개 식용 종식 운동을 이끈 동물해방물결 대표 ‘지연’, 녹색당·멸종반란에서 활동하며 동물권과 기후정의를 함께 연결해 활동해온 차랑, 국내 첫 비거니즘 동아리와 연합 네트워크를 만든 비거니즘 활동가 혜수, 국제 해양환경단체 활동가 민선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놀미디어 제공
이 여성 활동가들은 왜 동물권 운동에 뛰어들었을까? 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유는 다들 비슷하다. 민선은 원래 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했다. “제가 16학번인데, 3~4학년쯤 됐을 때 대학 안에서 비건 운동이 확산 중이었어요. 또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도 중요한 화두였죠. 어느 순간 장애인, 여성 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됐어요.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는 현실 역시 권력을 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면에서 너무나 닮았다는 걸 알았죠. 결국 그 기저를 파고들면 인간이 지구를 착취하는 환경 문제와도 연결돼요.” 감독이 말을 이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다보면 결국 권력관계의 문제라는 걸 알게 돼요. 그렇다면 내가 손에 쥔 권력은 무엇인가? 동물에게 행하는 권력이죠. 그걸 내려놓을 수 있는가. 그런 감수성을 갖게 되는 거죠. 상당수의 동물권 활동가가 비건이자 환경주의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이유예요.” 이 영화는 그래서 동물권 운동의 기록이자 페미니스트들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영화를 만들며 동물해방 운동에서 범주화된 반려동물, 식용동물, 전시동물, 실험동물 중 가장 많이 논의되는 반려동물을 제외한 나머지 세 분야 활동가 얘기를 고루 담기 위해 공들였다. 그는 “국내에서 실험동물에 관한 활동을 하는 단체나 활동가가 거의 없어 결국 두 분야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어 못내 아쉽다”고 했다.

2030 여성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가장 큰 가시적 성과는 2024년 1월 국회를 통과한 ‘개 식용 금지법’이다. 이놀미디어 제공
2030 활동가들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는 2024년 1월 국회를 통과해 유예기간을 거쳐 2027년부터 시행되는 ‘개 식용 금지법’이다. 일명 ‘김건희 법’으로도 불렸다. “윤석열 집권 당시 정치 역학적으로 김건희씨의 역할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어요. 계엄·탄핵 이후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긴 했지만, 김건희씨 영상도 원래 영화에 있었어요. 김건희씨 이전에 수많은 활동가의 활동이 쌓이고 쌓여서 힘을 받았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화엔 동물권 쟁취를 위한 직접행동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나 백래시 이야기도 담겼다. 민선은 “산천어 축제 등에 가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칠 땐 욕설도 듣곤 하지만, 결국 물살이(어류)를 희생시키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명분이 진짜 지역주민에게 이득이 되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설득해요. 지역의 소음 문제, 환경 파괴 문제, 과도한 부스 비용 문제 등을 함께 논의의 장에 끌어내면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백래시는 직접행동의 당연한 결과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게 박이윤정 감독의 생각이다.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고 하잖아요. 심한 악플은 대중들이 우리 편을 들어주고 싶게 하는 마음도 만들어내요. 화천 산천어 축제, 대구 치맥 축제 등에 대해 아무 문제의식이 없었던 언론도 활동가들이 뛰어들고 난 뒤 매해 축제 때마다 반대 운동 이야기를 다뤄요. 변화의 물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비인간 동물권 문제로 확장됐고, 환경운동·퀴어운동 등 다른 운동과의 연대로 계속 확장되고 있다. 이놀미디어 제공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며 용감하게 싸웠지만,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다는 게 이들의 평가다. 실험동물·전시동물 해방이 가장 당면한 과제고, 곤충 문제까지도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다른 운동과의 연대도 더 확장돼야 한단다. “환경운동이나 퀴어 운동 외에도 지역 소상공인, 성매매 여성, 판자촌 등등 어디에나 비건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침투해 있어요. 소외·착취·차별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어디든 우리가 있을 겁니다.”
박이윤정 감독은 영화를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과정만 돌아봐도 “나는 가능주의자”라고 했다. “배급사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고, 마치 청첩장을 돌리듯 알고 지낸 많은 사람에게 홍보 메일과 전화를 돌렸어요. 비건 연예인들, 예를 들면 이효리씨 소속사에도 메일을 보냈거든요. 하하하. 국내외 비건 석학에게도 메일을 보냈죠. 최재천 교수님과 멜라니 조이(‘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도 추천사를 보내주셨어요. 저, 가능주의자 맞죠? 하하하.”
민선도 감독도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함께 봤으면 한다고 했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동체 상영 신청도 받고 있다. “우리 뒤를 이을 ‘다음 가능주의자’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길을 찾느라 많이 헤매기도 했는데, 다음 가능주의자들은 우리가 쌓아놓은 것들 위에서 시작하길 바라요. 그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설 수 있도록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글·사진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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