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아티스트> <남동공단> 마영신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
이토록 신랄하게 ‘까는’ 이야기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42.html
내 이야기 혹은 내 이야기인 것 같은 이야기, 아니면 누군가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만화에 담아내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장르 만화가 아닌 작가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만화를 알게 된 건 새만화책을 통해서다. 새만화책은 김대중, 조경숙 공동대표를 중심으로 일본, 미국, 유럽의 작가주의 만화를 지향하던 작가 그룹이다. <새만화책>이라는 무크지를 냈고, 국외 작가주의 만화와 국내 작품을 출간했다.
“1960~1970년대 일본의 작가주의 만화를 접하며 새로운 만화에 눈을 떴습니다. 만화 창작을 하기 전 영화미술 스태프 했을 때 부산에서 세트장 만들면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때 얘기를 21살 때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하는데 이야기가 너무 방대하니 조리 있게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술자리에서 단순하게 이야기가 안 돼 공장에 다니면서 만화로 그려봤습니다. 혼자 그렸는데 한 49쪽이 나왔어요. 그렇게 완성된 작품을 내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만화를 본 친구들이 그제야 네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알겠다고 했죠. 그러면서 만화를 꿈꿨는데 그 당시에 만화가 거의 전멸이었잖아요(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만화는 학습만화를 제외하곤 지면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일러스트 이쪽으로 돈을 벌어서 만화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와중에 공장 끝나기 몇 달 전에 갑자기 새만화책을 알게 돼 여기서 만화 하면 되겠다고 생각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열심히 그린 작품을 지원사업에 제출했다. 지원사업 심사위원으로 당시 <팝툰> 전재상 편집장을 만났다. “‘이 만화 어디 안 실으실 거죠?’라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팝툰>에 싣겠다는 거예요.” 새롭게 창간한 잡지 <팝툰>에 데뷔하고 단편을 발표했다. 새만화책에서 만난 작가들과 이라는 독립 만화잡지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다들 젊고 치열했으니까. 결국 마영신은 26~28살에 혼자 다른 일을 하면서 집에서 <남동공단>을 완성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새만화책과 함께 일하게 됐다. 책을 내야 하는데 여러 사정이 있어 계속 나오지 못했다. 마영신은 50쪽짜리 콘티를 만들어 들고 갔다. 그동안 한국에서 나온 적이 없었던 단편 만화책의 시작이다.
“<빅맨> 콘티를 보여주니까 재밌다고 해요. 그래서 얇은 단편으로 책을 내자고 하고 제가 인쇄비를 줬어요. 그리고 몇 권 계속 냈죠.”
<빅맨>, <욕계>(2012), <길상>(2014)까지 세 권의 단편 만화책이 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 어린이책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거나 <고래가 그랬어>에 어린이 만화 <삐꾸 래봉>(2013)을 연재하기도 했다. 르포 만화 <섬과 섬을 잇다>(2014), <빨간약>(2015)에도 참여했다. 르포 만화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2020)까지 이어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4·3을 다룬 <빗창>은 김홍모, 4·19혁명을 다룬 <사일구>는 윤태호, 6·10민주항쟁을 다룬 <1987 그날>은 유승하 작가가 맡았다. 르포 만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분쟁도 많았다. 특히 5·18 관련해서는 다른 작품보다 더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야기는 내가 전문가인데 너무 짜증 나는 거예요. 말하기는 너무 길고, 그 안에 엮인 전문가, 단체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제 의견이 옳았어요.”
마영신은 자신의 경험을 담은 만화와 그 경험에서 뻗어나간 만화는 물론 어린이 만화 <삐꾸 래봉>,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19년 뽀삐>, 낮은 코를 성형하려는 여성이 주인공인 <콘센트>(2017), 허위의식이 가득한 예술가, 지식인들을 풍자한 <아티스트>(2018)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마영신은 이야기의 출발을 ‘불씨’에 비유했다. “저한테 불씨만 던지면 막 불을 지를 수도 있거든요. 근데 불씨 찾기가 어렵죠. 이야기 만드는 건 쉽지만 새로운 불씨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웹툰 보면 불씨 없이 누가 기름 팍 부어서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는 것 같아요. 작가 본인이 불씨를 살려가지고 나와야 소중한데, (화염방사기로 불을 지르는 건) 뭔가 인위적이라서 정이 안 가는 것 같아요.”
긴 인터뷰 중에 작가의 경험, 지인의 경험 같은 여러 불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초반 “지금은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라고 해 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마영신에게 여러 불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경험 때문에 창작 소재가 마르지 않을 것 같다고 질문했다. “재밌는 얘기는 항상 있어요. 있는데 제가 다 그릴 수는 없고…, 제가 사람을 만나면 소재가 생기는데 요즘엔 그냥 좀 귀찮은 것 같아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계속 물었다. “저 어릴 때 미군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쳐들어오고 그때 풀면 또 풀 게 많거든요.” 작가는 한남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한남더힐이 있는 곳이다. “제일 비싼 동네 있잖아요. 아파트 거기가 미군 아파트였거든요. 그때 걔네랑 몇 년 전쟁했거든. 이걸 풀까 하다가 귀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심했다. 여전히 마영신 마음에 창작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뻔한 질문, 하지만 듣고 싶은 질문인 “마영신 작가에게 만화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만화죠. 만화는 만화인데 제 이야기를 표현하기에는 아주 최적화된 매체예요. 영화를 찍어보니까 새삼 느끼는 건 한 컷 한 컷이 다 돈이고 여러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래서 제 뜻대로 안 나오거든요. 타협을 하는 거죠. 만화는 그게 아니잖아요. 제 실력대로 나오니까.”
작가 작업실을 스케치하며 신티크 없는 책상을 이야기했다. 인터뷰 본문에서 소개하지 않았지만, 마영신 작가는 종이에 연필과 펜으로 만화를 그려 스캔한 다음 디지털 원고로 제작한다. “굳이 그렇게 작업하는 이유는 제일 익숙하고 편해서 제일 잘 나와요”라고 여전히 종이와 펜을 고집하는 이유를 단순하게 설명했다. 일본에도 종이로 작업한 뒤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가가 많다고 이야기하자 “이토 준지가 제일 적응을 잘해서 디지털 작업으로 전환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선이 너무 깨끗한 요즘 이토 준지 만화보다 옛날 이토 준지 만화가 더 좋아요”라고 덧붙였다.
2000년대 이후 새로운 만화를 탐색하는 젊은 작가가 많이 등장했지만 마영신만큼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 작가는 없었다. 매번 기존 만화에서 보지 못한 인물, 공간을 다뤘다. 모든 만화가 르포를 보는 느낌이었다. 인터뷰 이후에 새로운 플랫폼 쇼츠에서 중편 <(락)이>가 오픈됐고, 카카오웹툰에 연재한 <호도>가 출판됐다. 그리고 여름쯤 연재할 작품도 대기 중이다. 인터뷰 말미에 ‘비트코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에게 추천해주기도 했다. “플랫폼에 내 작품을 제안하고 연재하는 것이 결국 돈 버는 행위잖아요. 제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더 자유롭게 작품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공부했죠. 플랫폼에 제 작품 보여주고, 기획서 보내고 하는 일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제가 출판만화 하고 싶다고 한 거예요.” 비트코인을 공부하고, 투자한 까닭이 하고 싶은 만화를 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여전히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서울웹툰아카데미 이사장
<남동공단>(2022, 송송책방) 2012년 경향 블로그에 연재해 2013년 새만화책에서 첫 단행본이 나왔다가 2022년 송송책방에서 재출간. 2002년 남동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병역특례로 일하며 겪은 공장의 일상을 1인칭 내레이션으로 기록한다.
<아티스트>(2019, 송송책방) 2018년 6월26일 연재를 시작해 2020년 4월28일 외전 <곽경수의 길>까지 완결. 오락실이란 예술가 모임에서 함께하는 화가 곽경수, 소설가 신득녕, 뮤지션 천종섭이 보여주는 욕망과 권력과 찌질함.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 선정.
<연결과 흐름>(2018, 송송책방) 두 번째 단편 모음집. 2008년 단편집 <뭐 없나?>가 청소년기 작가의 이야기라면, <연결과 흐름>에는 만화가 마영신의 이야기로 보이는 <긴겨울>과 <길상>이 있다. 단편 만화책으로 출간됐던 <빅맨>과 <욕계>도 수록됐다.
<엄마들>(2015, 휴머니스트) 욕망하는 중년 엄마들에 대한 이야기. 북미에 번역돼 2021년 하비상을 받은 작품으로 이후 언론에서 마영신을 주목하게 됐다.
<삐꾸 래봉>(2015, 창비) 새끼손가락이 옆으로 휘어 친구들이 ‘삐구’라고 부르는 키도 작고 싸움도 못하는 5학년 래봉이의 삶. 이 우울한 이야기는 보는 내내 힘들고,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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