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석고 떨어져 참변…안전모 써도 피할 수 없었다

석포제련소 잇단 노동자 재해, 이번엔 석고 깨던 노동자가 낙하된 석고에 맞아 숨져
등록 2024-03-16 17:39 수정 2024-03-17 19:37
환경단체 회원들과 강원도 태백 주민들이 2024년 3월12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와 환경부·고용노동부를 규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환경단체 회원들과 강원도 태백 주민들이 2024년 3월12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와 환경부·고용노동부를 규탄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강원 태백 주민들이 상여를 걸머메고 서울까지 왔다. 그들이 사는 마을 근처 커다란 아연 제련소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2024년 3월8일 영풍석포제련소 하청 노동자 오아무개(52)씨가 제1공장 냉각탑 안에서 석고를 제거하다 위에서 떨어진 석고 덩어리에 맞아 숨졌다. 오씨는 사고 당시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작업 위치가 달라 사고를 피했다.

냉각탑 석고 제거 작업(일명 ‘브레이커’ 작업)은 석고가 낙하할 위험이 크다. 전동드릴이나 해머 등으로 딱딱하게 굳은 석고에 충격을 줘 깨는 방식이라서다. 냉각탑 높이는 11m에 달한다. 오씨 사고처럼 작업 도중 석고가 떨어지면 맞음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작업 동선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도록 짠다거나 탑 아래쪽은 사람 출입을 막는 등 세밀하게 계획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 대구지청은 원청 석포제련소와 하청업체가 안전한 작업 절차를 마련하고 지켰는지, 또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안내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조사 중이다.

브레이커 작업은 하청업체 노동자 4∼5명이 주기적으로 해왔다고 한다. 제련소는 아연 미액이 냉각탑을 통과할 때 생기는 석고 찌꺼기 제거 작업을 주로 하청업체에 맡겼다. 돌발성이나 일회성으로 시키는 작업이 아니므로 적정한 작업 절차를 갖춰야 한다. 또 원청 사업주가 사내 하청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만큼 재해 예방 조처도 취해야 한다. 하청업체는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외부에서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오씨도 사고 당일 입사한 것으로 적혀있어, 일용직으로 일했을 가능성이 크다.

영풍석포제련소의 노동자 산업재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하청 노동자 2명이 각각 난청과 백혈병으로 산재를 인정받았고 그해 말 노동자 4명이 급성 아르신 가스에 중독돼 1명이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건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조사 중이다. 안동환경운동연합 등은 3월12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 사망사고를 기록한 1997년 이후 14번째 노동자 죽음”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공개한 희생자 명단을 보면 2002년에도 추락방지망이 없는 냉각탑에서 작업하다 추락사한 노동자가 있다. 이름은 오승렬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뉴스 큐레이터는 <한겨레21>의 기자들이 이주의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뉴스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