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대체불가토큰(NFT) 형태의 디지털 카드. 자신을 ‘슈퍼히어로’로 묘사하고 있다. 트럼프 트루스소셜 계정 갈무리
인스타그램에서 ‘가난’이라는 단어로 검색해봤다. ‘가난해지는 습관’ ‘가난한 자의 특성’ ‘점점 가난해지는 사람 vs 점점 부자가 되는 사람’과 같은 글이 쭉 떠오른다. 자기계발서에 담긴 글을 축약해서 올리는 이런 글은 대체로 비슷한 확신을 강조하고 있다. 가난은 구조 문제가 아니라 가난한 개인 당사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고, 핑계가 많고, 남의 얘기에 쉽게 흔들린다’는 식의 편견이 그런 확신의 근거처럼 담겨 있다. 개연성을 확인할 수 없는 이런 글은 근거의 정교함보다 확신의 강도가 강할수록 더 널리 공유된다.
사람들이 가난을 개인 책임이라고 확신하는 건 가난을 구제하는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이 구조 문제라면 왜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다가 지친 이들이 더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선 개인 간 연대가 필요하고, 연대하려면 공통의 가치를 실현해갈 수 있는 정교한 서사가 필요하지만, 이제는 그런 서사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고(‘거의 없’다고 쓴 이유는 이번호 ‘n번방 재판 방청기’에 나오는 ‘방청 연대’ 때문이다),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회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는 남을 설득하기 위해 애쓸 이유가 없다. 그저 조각난 ‘팩트’들을 근거로 누가 ‘비도덕적’인지 낙인찍고 배제하는 게임에만 집중할 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도 사회가 그대로 반영된다. 최근 한 드라마를 보던 아내는 “나는 저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생 2회차를 사는 여성이 불륜에 빠진 절친과 남편에게 ‘사이다 복수극’을 펼치는 드라마였는데, 등장인물들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서사는 생략돼 있고 오로지 복수하는 행위만 남아 감정을 이입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번호 ‘레드기획’에 오수경이 리뷰를 쓴 드라마 <살인자ㅇ난감>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동안의 드라마에는 ‘피해’나 ‘원한’ ‘욕망’ 같은 최소한의 동기가 ‘사적 복수’의 배경에 배치돼 서사에 그나마 개연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살인자ㅇ난감>에는 “정의에 관한 복잡한 질문도, 인간을 향한 두터운 이해도, 자신을 향한 성찰”도 없이 “그저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계기로서의 ‘사건’만 존재할 뿐”이다. 이번호 ‘이야기 사회학’에 실린 엄기호의 표현처럼 “이야기 바깥의 관중과 주고받으며 만드는 이야기”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런 흐름에선 서사야 어떻게 됐든 그저 최대치로 통쾌한 수단을 동원해 빌런을 응징하는 ‘안티히어로’만이 추앙받을 수 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에 등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런 시대의 상징 같은 인물이다. 의사당 난입 사태를 부추기고, 탈세와 횡령 등 각종 추문으로 기소됐지만, 그는 거짓말같이 2024년 대선 공화당 후보를 사실상 확정 짓고 재집권을 노리고 있다. 2023년 12월 콜로라도주 대법원이 내란선동을 이유로 대선 출마를 제한하는 판결을 내놓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슈퍼히어로’로 묘사한 대체불가토큰(NFT) 형태의 디지털 카드를 홍보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이번호에 빼곡히 담겨 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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