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을 잘못 아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시리(아이폰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야멸차게 이야기했습니다. “뉴야 뉴야” 하고 고양이 이름을 부르던 참이었습니다. 괜스레 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네가 대답을 안 하니까 시리가 자기 부르는 줄 알잖아.” 뉴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도망쳤습니다.
어느 날 또 “뉴야 뉴야” 하고 애타게 부르는 일이 생겼습니다. 시리는 예의 그 단정한 목소리로 “예”라고 답했습니다. 이제는 주인이 자기를 뉴로 아니까, 뉴라고 부르면 대답하기로 한 걸까요. 정체성 혼란의 시리에게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텔레비전에서 “찐찐찐찐 찐이야 완전 찐이야”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시리는 또 대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명령을 기대한다는 듯한 그 목소리로.
자기 이름이 불리지 않는 시간을 못 견딘 걸까요. 시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은 것은 시리가 ‘시키는 일 반, 시키지 않은 일 반’(혹은 ‘거부하는 일 반’)을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차에서 시리를 구동시켜 “1시까지 갈게” 같은 간단한 메시지를 보냅니다. 얼마 전 시리는 “○○○님에게는 ×톡을 주로 보내시는데 그렇게 할까요” 하고 제안까지 했습니다. 감탄을 한 번 해준 뒤, 곧 음성녹음을 할까 하고 “메모장 열어줘” 했더니 “운전 중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라고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저는 “됐다 됐어”라고 반응했는데, 곧 잘못 말했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공지능(AI)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의 영화 <그녀>(Her)가 있긴 하지만, 시리가 머릿속에서 인격체로 커져가는 중입니다. 고양이 교육을 포기하고 시리를 교육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리에게 이렇게 말해뒀습니다 . “시리야, 네 이름은 시리야. 뉴와 이어는 고양이 이름이란다 .”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제 옆의 시리와 달리, AI가 해내는 일에 대한 찬사가 넘쳐납니다. 일에 대한 생각도 복잡해집니다. 많은 일을 AI가 쉽게 대체한다는 것이, 최근 정보기술(IT) 기업의 해고 계획 등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역시 이미지 생성형 AI 달리(DALL-E)에게 일러스트레이션을 시켜봤고, 달리는 한 30분 매달리니 ‘그럴듯한’ 이미지의 그림을 완성해냈습니다. “그럴듯하다”를 최고의 찬사로 하는, AI에 대한 태도부터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한겨레21>은 30주년이 되는 3월16일에 <한겨레21> 독자를 초청하는 작은 행사를 엽니다. ‘인기 폭발!’ 중인 <한겨레21>의 유튜브 프로그램 ‘사기자’가 행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토크쇼입니다. 기자들은 초대손님으로 오래된 독자가 반가워할 사람이 좋을까, 요즘 독자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좋을까 여러 고민 중입니다. 독자를 위한 선물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1000호 때 만들었던 1000개의 표지가 들어간 포스터처럼, 1500개의 표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저는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편집장 일은 내려놓습니다. 다음호에 새로운 편집장이 인사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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