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힘들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더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과음한 다음날이 으레 그렇듯 오전 내내 숙취에 골골거렸다. 점심시간에 밥 대신 뜨끈한 바닥에 휴식을 청하며 누웠다. 연말 술자리였다. 불현듯 전날 밤 귀갓길이 기억났다. 저녁부터 내린 눈은 자정 무렵까지 내렸다. 길 위에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만취한 나는 휘청이는 몸으로 골목에 주차된 전동킥보드를 타려고 시도했다. 다행히 실패해서 걸어왔지만 뒷골이 서늘해졌다. ‘이렇게 마시다간 내가 나를 죽일 수 있겠어.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몰라.’ 처음 든 생각은 아니었다. 3개월 전 가을 주말 아침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과음 때문에 전날 밤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이 친구는 술자리에 없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대신 친구 집을 찾아가서 잔 것이다. 가족과 사는 친구에게 전화해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되느냐”고 물어본 뒤 “와도 된다”는 말에 그대로 갔다. 다음날 친구는 “마침 어제 집이 비어 있었고, 너희 부모님이 이 꼴을 보느니 우리 집에서 재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 집에 셀 수 없이 놀러 갔지만 이렇게까지 충동적으로 신세를 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맨정신으로는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다시 만취한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었다. 또 킥보드를 타려 한다거나 걷기 힘들다며 벤치에 주저앉아 잠들 수도 있었다. 운이 나쁘면 범죄 표적이 될 수도, 요즘 같은 겨울엔 동사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생의 최후를 맞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절주하는 법’ ‘알코올 클리닉’ ‘보건소 알코올 치료 프로그램’ 등을 검색했다. 원하는 결과를 찾기 어려웠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절주 실천 수칙은 내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술자리를 피하고, 남에게 술을 강요하지 않으며, 원샷하거나 폭탄주를 마시지 않고, 음주 뒤 3일 동안은 술을 마시지 말라.’ 이전부터 내 생활 패턴이 이랬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마땅히 눈에 보이지 않았다. 중증 중독 환자들이 입원치료를 받는 병원이거나 음주운전·주취폭력으로 형사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양형 자료를 만들어주겠다고 홍보하는 병·의원이 대부분이었다. 보건소 누리집을 탐색하다 ‘알코올사용장애 선별검사 도구’(AUDIT-K)로 자가 진단을 해봤다. 10개 문항에 답하고 총점을 더하는 방식이었다. 결과 화면에는 이렇게 떴다.
“당신의 음주는 매우 위험한 수준으로, 술을 끊거나 줄일 것을 권장합니다. 전문 병·의원, 알코올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도록 합니다.”
여성은 9점을 넘으면 알코올사용장애 추정군으로, 내 점수는 10점이다.
내가? 왜? 이해하기 어려웠다. 술꾼, 주당, 애주가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20대엔 대학 신입생 때를 제외하면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30대엔 사회생활 차원에서 1~2주일에 한 번씩 술자리에서 맥주 한두 잔을 마시는 정도였다. 집에서 혼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예외가 있긴 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땐 절제력을 잃곤 했다. 술을 연거푸 들이켜고 실수했다. 상사 앞에서 회사 욕을 하거나 퇴사 욕구를 서슴없이 드러내는, 사회생활에 도움될 리 만무한 실언을 했다. 밤에 친구나 회사 동료들에게 돌아가면서 전화한 적도 있었다.
친구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날 함께 술을 마셨거나 단지 나와 에스엔에스(SNS)로 연락한 적 있다는 이유로 전화를 받는 사람은 황당할 만했다. 하룻밤 새 많게는 다섯 명에게 전화한 적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이면 머리를 싸매고 후회에 몸부림쳤다. 한동안 절주했지만, 불행히도 스트레스 없는 삶이란 있을 수 없었다. 2~3개월 뒤면 후회와 다짐은 희미해졌고 다시 과음했다. 지난 2년간의 음주 패턴이었다.
술을 처음 마시는 20대도 아니고, 음주 습관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느끼긴 했다. 하지만 내가 알코올사용장애라고? 보건소 말고 다른 병원 누리집에 올라온 문항으로도 검사해봤다. 결과는 같았다. 술 많이 마시는 사람은 자기가 문제라는 생각도 없이 퍼마시는데,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권고받은 대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술 문제와 관련해 도움을 받을 프로그램이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내 문제 음주 행동을 들은 뒤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얼떨떨했다. 안내한 프로그램 중 상담 일정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알코올중독은 진행성 질환이에요. 지금 선생님은 초기 상태인 것 같은데, 여기서 더 진행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술로 인해 선생님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확신받고 싶지 않은 말은 점점 기정사실이 돼갔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만난 상담자는 중후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6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과거에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알코올중독이 심했다고 한다. 지금은 술을 마시지 않은 지 10년이 넘었고, 회복자 상담가 양성과정을 거쳐 알코올사용장애가 있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술 문제를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A·Alcoholics Anonymous) 모임에 참석하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있을 겁니다. 그러면 선생님 마음 안에서 어떤 결정이나 선택을 하는 게 더 편할 거예요.”
그는 내게 ‘단주’를 권했다. 단주는 절주, 금주와는 다르다. 절주는 술을 조절해 마시는 것, 금주는 건강상의 문제나 중요한 일정 등으로 일정 기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단주는 본인에게 술을 조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마시지 않는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뜻한다. 앞으로 살면서 한 잔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고? 이제는 사진 속 술이 될 것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무더운 여름날 목을 젖혀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 걸쭉한 맛이 일품인데다 배도 부른 막걸리, 머금는 순간 입안에 향긋함이 퍼지는 와인, 톡 쏘는 청량감 넘치는 하이볼 한 잔도 안 된다고? 다른 나라로 여행 갔을 때 식사하면서, 혹은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그 나라 술 한 모금도 마실 수 없다고?
일정 기간 술을 끊었다가 내 주량에 맞춰 규칙을 정하고 도수가 낮은 술을 조금만 마시면 되지 않을까? 체질상 못 마시는 사람이나 크게 아픈 뒤 술을 끊은 사람은 봤지만, 조절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위에는 없었다. 하지만 상담자의 조언에 따라 찾은 정신과 의사는 “알코올 사용 문제가 있다는 걸 지금까지 몰랐던 게 이상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알코올사용장애는 유전적·심리적·환경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내 경우엔 이 모든 요인이 아주 역동적으로 상호작용을 한 것 같았다. 돌아가신 양가 할아버지들은 약주를 무척 좋아하셔서 주변의 걱정을 샀다. 외할아버지의 주사를 보다 못한 외할머니는 ‘술 끊게 해주는 약’을 몰래 먹일 정도였다. 아마 지금은 판매가 중단된 디설피람인 것 같은데, 이 약을 먹고 술을 마시면 두통과 구토를 유발한다.
그들의 후손인 나는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등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직장은 음주에 관대한 한국 사회 안에서도 손에 꼽히게 알코올 친화적이다. 내 점수는 주변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낮은 편이었다. 친구나 회사 동료들에게 자가 진단을 해보라고 했을 때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훨씬 더 높은 경우가 많았다. 남녀 모두 20점을 상회하는 사람이 곳곳에 있었고, 며칠 전 “필름이 끊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술을 마시고 있었다. 10점인 내게 문제가 있다면 숱한 사람들이 이미 중독 스펙트럼의 중증을 향해 내달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모르시는군요. 다시 한번 알려드릴까요? 이미 이전에 단주하셨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얄미울 정도였다. 의사는 왜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냐고 반문했다. 우울증에 이어 알코올사용장애까지 정신질환 2관왕이 된다고 하면 기분이 좋을까요? 아무리 ‘정상은 없다’고 하지만,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 범주를 벗어나는 기분이 좋겠냐고요. 차마 이렇게 대꾸하진 못하고 처방전을 얌전히 받았다. 의사가 처방한 약은 술을 마시고 싶은 생각을 줄여준다는 항갈망제였다.
의사가 자기 주량과 문제 음주 행동을 과소 추정하는 다른 환자 사례를 많이 겪은 나머지 나도 그런 심각한 환자로 본 게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진짜 내가 알코올중독 초입에 들어선 것 같기도, 아니면 내가 지나치게 예민한 건강염려증 환자 같기도 했다. 어느 쪽도 완전히 무시하지 못해서 이도 저도 못하는 마음이 이어졌다.
내 주변 사람들은 도대체 왜 축하하거나 위로하는 방식으로 술을 택한 거야? 그리고 왜 내가 만취해도 “그 정도는 괜찮다”고만 해줬냐고! 살짝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좋다고 퍼마신 건 본인이면서 물에 빠진 사람 구해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나눠준 책자는 ‘중독성 사고’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부정·합리화·투사를 핵심으로 하는 ‘인지 왜곡’으로, 중독자에게서 나타나는 사고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중독자는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중독자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합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인 우울함을 술이나 약물을 통해 마비시키려고 합니다”. 알코올중독자가 쓴 에세이의 고전인 캐롤라인 냅의 <드링킹>에선 이를 좀더 우아하게 표현했다. “술에 빠진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까지는 안전하고, 바로 그다음 자리에 선 사람들부터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심란했다.
퇴근하고 틈틈이 관련 책이나 중독 전문가들이 나오는 영상을 찾아봤다. 알코올과 같은 중독성 물질은 뇌의 보상회로에 영향을 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중독회로’가 한번 만들어지면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술을 계속 마시지 않으면 이 중독회로의 스위치를 꺼둘 수 있지만, 단 한 모금이라도 마신다면 스위치가 다시 켜지게 된다. 체내에 들어가는 술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체내에 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알코올사용장애는 마실수록 중독회로가 강화되는 진행성 질환이다. 애당초 알코올사용장애가 있는 사람은 뇌의 보상회로가 고장 났기에, 이들이 술을 조절해서 마시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절주보다 단주가 더 쉬운 이유다. 그렇지만 중독자들은 절주 가능성에 집착한다. 회복자와 전문가들은 이를 ‘절주 망상’ ‘조절 망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내게 알코올 사용 문제가 있음이 맞는다면,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나와 내 주변을 파괴할 게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비명횡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조절 능력이 그대로 있는지 아니면 없어졌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생을 걸 수 없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과한 염려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사고 기사를 매일같이 봤다.
“안녕하세요, 알코올중독자 동작 김입니다.”
결국 나는 주말의 어느 날,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고 멀쩡해 보이고 선해 보이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했다.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단주 의지를 다지거나 자신의 경험을 공유한다. 영미권 영화·드라마에서 흔히 본 장면이라 익숙했지만, 내가 그 당사자가 되리라고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됐다. 어쩌겠나. “처음 오신 분을 환영한다. 앞으로 자주 봤으면 좋겠다”고, 옆자리에 앉은 중년 여성이 따뜻하게 말했다.
단주 24일째. 무알코올 맥주도 그럭저럭 마실 만하다. 탄수화물과 당이 제법 들어가 있지만 아마 알코올 섭취보다는 나을 것이다.
익명의 30대 알코올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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