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남 얘기만 해오던 <한겨레21> 기자들이 한 해를 보내며 ‘개인적인’ 올해의 ○○을 꼽아보았습니다. 테니스를 배우다 많은 공을 잃어버리며 “성장했다”고 우기는 서혜미 기자, 동화책 한 권에 울컥했다 설렜다 한 ‘언제나 초심 엄마' 손고운 기자, 잦은 출장에 밑창이 벌어진 등산화를 공개하며 편집장을 은근하게 규탄한 류석우 기자까지. 기자들의 ‘민낯'을 대방출합니다.―편집자 주
해가 저문다. ‘추앙’하는 작가가 쓴 문장 두 가지가 귓가에 맴돈다. 올 한 해 텃밭에서 동무들과 농담할 때, ‘비장의 카드’로 즐겨 썼다. 농담이면 괜찮은데 현실일 때가 문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23년 11월30일 오전 조선인민군 공군사령부를 방문했다. 오후엔 ‘제1공군사단 비행련대’를 찾았다. <조선중앙통신>은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닭알(달걀)에도 사상을 재우면(채우면) 바위를 깰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당의 힘에 대한 론리이고 정의이며 철학”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달걀로는 바위를 깰 수 없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관련 기사를 읽으며 문득 떠올렸다. “그러고도 당신이 유물론자요?”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지음)에 툭하면 나오는 이 문장은 주인공의 “시도 때도 없이 사회주의자”인 빨치산 출신 아버지가 역시 빨치산 출신인 어머니를 흉볼 때 주로 등장한다.
“그러고도 네가 유물론자냐”는 물음은 “지금 네 행태는 유물론자와 거리가 멀다. 그러니 바꿔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치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 속에 “지금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다시 제대로 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숨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쯤에서 다른 문장을 떠올려보자. <각각의 계절>(권여선 지음)에 등장하는 ‘사슴벌레식 문답’이다.
방충망이 있는 민박집 방으로 큰 사슴벌레가 들어왔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하고 물으면 “사슴벌레는 어떻게든 들어와”라고 답하는 식이다. 구구절절한 해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의젓한 방어의 멘트’가 아니다. “그러니 어쩔 테냐”는 식의 ‘강요’와 ‘차단’이 숨어 있다. 그러니 “나라 꼴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됐을까”란 물음에 정치인은 “어떻게든 이 지경이 돼”라고 답하지 마시라. 나중에 “우리가 선거를 왜 졌을까” 하고 물을 때, “너희는 선거를 왜든 져”란 답을 들을 수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올해의 ○○ 목록
올해의 산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4823.html
올해의 문장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19.html
올해의 출장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06.html
올해의 전시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4799.html
올해의 간식·운동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17.html
올해의 술자리 핑계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4827.html
한겨레21 올해의 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13.html
출판편집인이 뽑은 올해의 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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