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남 얘기만 해오던 <한겨레21> 기자들이 한 해를 보내며 ‘개인적인’ 올해의 ○○을 꼽아보았습니다. 테니스를 배우다 많은 공을 잃어버리며 “성장했다”고 우기는 서혜미 기자, 동화책 한 권에 울컥했다 설렜다 한 ‘언제나 초심 엄마' 손고운 기자, 잦은 출장에 밑창이 벌어진 등산화를 공개하며 편집장을 은근하게 규탄한 류석우 기자까지. 기자들의 ‘민낯'을 대방출합니다.―편집자 주
놓털카찡떼오흘내벌사. ‘술을 마실 때 잔을 비우기 전에 내려‘놓’거나 남은 술을 ‘털’거나, 마시고 나서 ‘카’ 소리 내거나, 얼굴 ‘찡’그리거나, 다 마시기 전에 입을 ‘떼’거나, 술잔을 입에 ‘오’래 대고 있거나 ‘흘’리거나 ‘내’버리거나 ‘벌’충하지 말고 건배‘사’는 꼭 하라.’ 검찰 출입 기자 시절 들은 ‘술 마실 때의 10가지 도리’입니다(들었던 이야기를 복기하느라 여러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이런 엉터리도 있지만, 진짜 주도(酒道)는 꽉막힌 세상을 슬쩍 파고드는 틈새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금세 파열음이 나곤 하는 술자리에서 주도라는 형식이 있어서, 주인은 술, 말은 객일 뿐. ‘술’자리의 주인이 술임에 편히 기댈 수 있습니다. ‘사마타’(평화를 얻는다는 팔리어)랄까요. 술 권하는 핑곗거리도 이 ‘주객’의 질서 아래에서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처럼’(김종삼의 시 ‘북 치는 소년’ 중) 다음날 숙취를 이겨내고 마음속 촉촉함이 남는다면 주도는 제 역할을 한 겁니다.
결혼한 지 10년 됐습니다. 2023년 초 처가에서 희석식 소주를 좋아하는 장인어른과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한 말씀 올렸습니다.
“장인어른, 한 사람이 평생 마실 수 있는 소주는 1만 병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잘 마시는 사람도 1만 병이 넘으면 더는 소주를 마실 수 없다는 것이 법칙이라고 합니다. 옛 소주인 30도짜리를 기준으로 이제 1천 병 정도 남으신 것 같습니다. 아껴 드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모실 테니 앞으로 증류식 소주를 드십시오.”
무슨 소리인가 듣고 있던 장모님과 처남, 와이프 그리고 장인어른이 ‘반짝이는 진눈깨비처럼’(‘북 치는 소년’ 중) 웃었습니다.
술을 좋아하기까지 해서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와이프와 송년 술자리를 마련해 이렇게 말할 생각입니다.
“나도 계산해보니 이제 3천~4천 병 남은 것 같아. 증류식으로 갈아탈까.”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올해의 ○○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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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간식·운동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17.html
올해의 술자리 핑계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54827.html
한겨레21 올해의 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13.html
출판편집인이 뽑은 올해의 책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48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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