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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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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트럼프에게 힘 과시? 권위주의 모방해 한국 민주주의 위협”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석좌교수 단독 인터뷰
“누구와 연대하고 어떤 정치체 만들지 상상력 발휘해야”
등록 2024-12-07 09:33 수정 2024-12-08 10:52
젠더 이론, 정치철학의 대가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계엄 해제에 대해 그는 “윤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한 것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젠더 이론, 정치철학의 대가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계엄 해제에 대해 그는 “윤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한 것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반대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주권적 권한을 시험했다. 진보적 활동가들, 저항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전체주의자이며, 북한에 의해 침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이 국가나 한국 민주주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정작 북한을 포함해 일부 국가의 권위주의 권력을 모방해 한국 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하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의 말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일종의 간접적인 고백이었다.”

‘리어왕’과 위태로운 삶

세계적인 석학, 젠더 이론과 정치철학계의 슈퍼스타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비교문학과 석좌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국외 석학 강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024년 12월4일 오전 서울 시내 한 호텔 카페테리아에서 한겨레21과 만난 그는 ‘한겨레’ 호외에 실린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오, 리어왕 같네요”라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리어왕’은 어리석은 판단으로 엄청난 파국을 불러오는 주권자의 비극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다. 2024년 12월의 한국, 리어왕과 위태로운 삶이 존재하는 “드라마틱한 현장”에 버틀러 교수가 운명처럼 와 있었다. 마침 약속된 강연의 주제는 ‘민주주의와 인문학의 미래’였다.

그를 세계적 페미니스트 철학자로 만들고 퀴어 이론에 큰 영향을 미친 1990년 주저 ‘젠더 트러블’ 이후 ‘안티고네의 주장’ ‘위태로운 삶’ ‘비폭력의 힘’, 그리고 2024년 출간된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는가?’(미번역)까지 그는 약자들의 정치철학, 윤리학에 천착했다. 정치철학자로서 그의 관심은 성소수자, 분쟁 난민,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취약하고 배제받는 위태로운 삶을 향한다. 그의 이론은 일관되게 ‘살 만한 삶’(Livable life)의 공유와 확대라는 윤리적 과제로 수렴된다.

이번 방한은 어렵게 성사됐다. 버틀러 교수는 2023년 6월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가 개최한 국제비평이론 학술대회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받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했다. 실제 방한까지 1년 이상 걸린 셈이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백래시(반동)에 시달렸다. 2021년 교육방송(EBS)이 ‘위대한 수업’ 시리즈에 그의 강연을 제작하자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게시판을 혐오 발언으로 도배하며 공격했다. 소아성애자, 마녀 등으로 지탄받았다. 이번에도 강연자의 안전 문제로 강연 시간과 장소 모두 엠바고(보도 시점 제한)가 걸렸다. 그러나 일정이 ‘유출’됐고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또다시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결국 버틀러가 온다”며 다시금 민원을 포화처럼 퍼부어 행사를 막으려 했다. 급기야 강연 장소와 시간이 하루 전에 모두 바뀌었지만 예상 인원을 훌쩍 넘겨, 100명 이상의 청중 앞에서 그는 장장 3시간이 넘는 열강을 이어갔다. 이 강연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역설”을 일깨웠다.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를 옹호하고 이민자,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를 통해 다시금 탄생한 것처럼, 취약한 사람들의 인권을 박탈하는 정치적 규범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민주주의라는 뜻이다.

“인종적, 민족적 증오 및 젠더와 성소수자에 대한 공격을 기반으로 하면서 자본주의적 축적을 추구하고 사회서비스의 파괴를 새로운 공공선으로 제안하는, 전쟁의 지속과 지구의 파괴를 추구하는 이 세계관에 맞서서 우리는 어떤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것인가? 앞으로 어떤 정치체를 만들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노학자가 전하는 이 말이 누구에게 어떤 위협을 가져다줄까? 한겨레21과 한 인터뷰 자리엔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문화전공 교수와 손희정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가 함께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디스 버틀러 교수는 “탁월한 분석,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폭력과 불의에 대한 보호를 위한 상상을 요구하고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주디스 버틀러 교수는 “탁월한 분석,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폭력과 불의에 대한 보호를 위한 상상을 요구하고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국의 계엄과 반젠더 운동

“윤 대통령의 계엄이 실패한 것은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견제와 균형이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혹시 트럼프에게 ‘나도 강한 남자’라고 어필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계엄령 선포가 곧바로 국회에서 거부됐기 때문에 그 자신이 매우 약한 대통령임이 밝혀졌다. 국민, 군대, 입법부의 존중과 지지가 없다면 그 계엄 선언은 공허하다. 약하고,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효율적일 수도 없다. 그는 강하고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기보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고 조롱당하고 취약한 존재가 됐다. 결정적으로 권력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버틀러 교수는 최근작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는가?’에서 새로운 우파 집단이 ‘젠더’를 공격 목표로 삼아 ‘판타즘’(Phantasm, 환영·허상)을 투영하며 두려움과 증오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젠더’는 권위주의 정권과 새로운 파시스트 그리고 이른바 트랜스젠더 배제 페미니스트(터프)의 공격 목표가 됐다. 성소수자, 난민, 이민자, 외국인 등 가장 취약한 사람이 가장 국가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기만적인 현실을 그는 비판한다. 이런 ‘반젠더 운동’은 공격적인 국가주의(내셔널리즘)를 부추기고 사람들을 권력에 예속되게 한다고 짚었다. 이택광 교수가 “지금 한국 상황이 당신의 책에 나타난 상황과 너무 비슷하다”고 말하자 그는 부연 설명했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싸움은 정확히 국가가 무엇이고 민주 국가의 조건을 누가 통제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반젠더’ 운동을 벌이고 있는 기독교 국가주의자(내셔널리스트)들은 이성애 가족, 결혼, 재생산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섹슈얼리티, 친밀한 관계, 파트너십에 반대하고 반이민주의, 외국인 혐오에 관심을 둔다. 매우 제한적 용어로 국가를 정의하는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총리인 조르자 멜로니의 주장을 예로 들며 기독교 국가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판타즘’의 정치적 구조를 설명했다. 한국에서 ‘남자 며느리가 웬 말이냐’는 구호가 있었던 것처럼, 멜로니 총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위협을 퍼트리고 이성애 가족만을 자연스러운 것, 신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기독교 국가주의적 프레임워크를 통해 공포 장면을 연출한다”고 버틀러 교수는 설명했다. 윤석열 정권의 경우 계엄이 아닐 때도 ‘젠더’를 공격 목표로 삼았다. 계엄하에서 ‘젠더’는 더욱 강한 공격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은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으로 “군복음화”를 사명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계엄 해제 이후 알려졌다.

“‘젠더 생물학자들이 우리 삶의 방식과 나의 정체성, 내 가족, 내 결혼에 대한 경건한 감각을 파괴하기 위해 오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 학자들이 내 삶의 가장 친밀한 차원을 공격하고 있다’는 식으로 두려움을 조장한다. 오히려 젠더 관련 정책은 아이들이 자신의 세계를 탐구하고 길을 찾는 자유와 능력을 존중한다. 이성애 가족 폐지가 아니라 동성애 커플의 가족구성권을 인정해달라는 요청일 뿐이다. 하느님이 주신 자신의 성정체성과 결혼을 유일하게 신성한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은 절대 그 평등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대안적 가치가 동등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젠더 이데올로기’라는 공격은 사실 삶의 복잡성에 대한 공격이다.”

‘나’는 많은 사람의 일부

버틀러 교수는 한국 여성들의 4비운동(비혼·비출산·비연애·비성관계)에 대해 “가부장적 또는 의무적 재생산 구조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이해하면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저항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애 부부 관계와 장기적 파트너 제도에 대해 설명하던 그는 “장장 34년” 동안 함께한 자신의 파트너 이야기를 했다. 현대 민주주의와 권력 이론의 석학 웬디 브라운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정치학 교수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결혼의 법적 혜택과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보자. 나는 34년 동안 미혼이더라도 생모와 동등한 양육권을 가질 법적 권리를 위해 싸웠는데, 사실 우리는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두 양육자일 뿐이다.(그의 아들은 ‘집에 퀴어 양육자가 아니라 석학 양육자가 둘이나 있는 것이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가부장적인 가족 재생산을 거부하는 여성이나 ‘자연 질서’에서 벗어난 트랜스젠더나 모두가 국가에 반하는 존재로 공격당한다. 길거리에서는 트랜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여성이 공격받는다. 누구도 길에서 공격받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위해서 연대해야 한다. 신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4비운동 또한 어떻게 연대하고 어떤 세상을 발명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는 페미니즘이 대부분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다른 사람들과 접속하고, 어느 순간 사회구조와 조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폭력적인 일의 발생 구조와 사회적 조건을 질문하면서 사회 변혁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이다. 억압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분석과 함께 ‘여성’ 운동의 분자화, 개인화를 뛰어넘는 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내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많은 사람의 일부다. 상호 연대가 가능하다는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이런 조건에 대한 탁월한 분석,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폭력과 불의에 대한 보호를 위한 상상을 요구하고 실천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의 인프라다.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신체에 대한 생각은 급진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된다. 장애학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일깨운다.” 그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는 서로의 인프라다.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신체에 대한 생각은 급진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된다. 장애학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일깨운다.” 그는 열정적으로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우리는 상호의존하는 존재다

2015년 버틀러 교수는 공공집회에 관심을 보이면서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를 썼다. 거리의 시위와 연대하는 사람들을 사유하면서 그는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했다. 그는 집회를 열고 참여하는 것이 곧바로 민주주의와 연결되지는 않는다며 무엇이 공공성이고, 누가 소속감을 갖게 되는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에 관해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한국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이동권 시위에 대해서도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성 보장은 민주주의의 근본적 이상인 평등한 참여를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운동가, 동물운동가 겸 작가, 한국에는 ‘짐을 끄는 짐승들’을 쓴 작가로 잘 알려진) 수나우라 테일러와 함께 장애 인권운동 유튜브를 찍었다. 공공장소 접근권을 주장하며 미국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벌인 가장 큰 시위 중 하나가 국회의사당 점거였다. 모든 사람을 위한 이동권과 참여를 위해 사회의 헌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몸은 열려 있다. 코로나19 때 깨달았듯 우리는 서로의 숨을 나누면서 연결되고, 키스할 때 타액을 교환한다. 서로 요리하고, 먹고, 넘어지지 않게 도우면서 계단을 오른다. 서로 넘어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의 인프라다. 관계적이고 상호의존적인 신체에 대한 생각은 급진적 개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된다. 장애학은 상호의존적 관계를 일깨운다.”

기후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젊은이들과 동물권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했다. 인간이 비인간 존재들과 연결하는 일을 그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상호의존성은 신자유주의 저항의 핵심이다. 인간만이 서로에게 상호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모든 생명을 희생하여 인간의 삶을 증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은 모든 곳의 생명 과정에 상호의존하기 때문이다.”

버틀러 교수는 에코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매우 강력한 운동”이라고 했다. 살아 있는 지구와의 관계를 성찰하고, 생명을 재생하고 지구의 오염을 막아야 할 우리의 의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했다. 도나 해러웨이를 언급하며 “인간을 관계의 집합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도 덧붙였다.

“우리는 동물과 분명히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는 동물이기 때문에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지만 서로 연결돼 있고 동물에게 일어나는 일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동물에 대한 의무가 있다. 노벨상 수상 작가(한강)의 작품에서 나타나듯, 한국에도 채식주의가 강력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노력에 감사한다. 동물, 공기, 토양, 물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은 확실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수행성 이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치 있고 애도가 가능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방법이었다”라고 주디스 버틀러 교수는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수행성 이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치 있고 애도가 가능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방법이었다”라고 주디스 버틀러 교수는 말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젠더부터 비폭력까지 일관된 이론

욕망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 ‘젠더 트러블’에 대해 그는 실제 1980년대 성소수자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그들의 진짜 삶, 진짜 사랑은 금지됐고 공적 애도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에이즈(AIDS) 위기 동안 많은 사람이 친구와 연인을 잃었지만 대중의 인정이 없다는 데 우려했다. 마치 부끄러운 죽음처럼 여겼고, 가장 가까운 연인이나 친구를 잃고도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당시 나는 비규범적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규범적 젠더보다 덜 현실적이라는 생각에 맞서 싸우려 했다. 수행성 이론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가치 있고 애도가 가능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 현실에 대한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당시 게이, 레즈비언 운동의 핵심적 이슈에 ‘두려움 없이 길을 걸을 권리’가 포함돼 있었다며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존재했고, 이 두려움 없이 어떻게 살아 숨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고 되돌아봤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통해 금지된 애도에 관한 정치적 윤리를 고려한 것도 그때였다.

“국가 폭력을 생각하면서 안티고네 이야기를 포함했다. 안티고네는 오빠를 매장하고 싶었지만 삼촌 크레온에 의해 매장을 금지당했고, 검열당했고, 살해당했다. 젊은 유대인으로서 나는 대량 학살을 포함해 폭력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맞서 싸워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나의 이런 유대적 가치는 국가 폭력과 공존할 수 없었다. 내 비폭력 이론은 아직 결실을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본인의 이론이 일관된 견해를 가진다는 점을 설명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찾아 아시아 페미니스트들의 아름다운 전시를 보았다며 젠더 수행성 이론과 연결해 설명했다.

“정말 아름다운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 일부 작업은 ‘제스처의 반복’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젠더 트러블’에서 어린 소녀가 반복 행동을 통해 어떻게 여성이 되는 법을 배우는지 양식화돼 있다는 점을 밝혔다. (신생아를 받은) 의료진이 ‘딸’이라고 선언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된 것처럼, 그때부터 딸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기대가 시작된다.”

그는 수행성 이론이 내포한 변혁의 가능성을 전달하고 싶어 했다. “성별이 특정한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게 되면, 그다음엔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식사 준비, 여성 노동, 매일의 대화와 같이 의무적으로 반복하던 일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우리의 반복적 수행이 어떻게 일상과 연결되고 어떻게 중단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결과는 달라진다. 어떻게 다르게 살지 고민하게 된다. 노동 조건을 바꾸고, 삶을 조직화하게 된다. 단순히 개인적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부과된 모든 종류의 제약에 맞서 함께 싸울 수 있는 자유가 중요하다.”

버틀러 교수는 그 자신 포스트휴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을 쓴 로지 브라이도티처럼 스피노자에 근거하여 낙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기에는 전쟁과 폭력이 저지른 살상에 대해 너무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학자로서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 9·11테러 이후 무슬림에 대한 배제와 차별, 유대의 시오니즘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기독교 극우세력과 근본주의자들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됐다. 그들이 믿는 유일신, 일원론을 유일한 세계 원리로 만들고 특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에 저항했다.

“누가 애도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 상태로 살아가는 이들과도 관련된다. 모든 삶은 애도될 수 있어야 하며, 애도될 가치가 있다고 하는 원칙을 세우는 것은 모든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모 없이 사라진 이들, 세상에 등장한 보고서의 인구 통계로 남아버린 이들의 애도 가능성을 확립하려는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노학자의 말이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대중 강연 중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디스 버틀러 교수. 사진 양혜우 제공

대중 강연 중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주디스 버틀러 교수. 사진 양혜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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