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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의 옆모습은 어떻게 찍혔나

등록 2025-01-31 18:17 수정 2025-02-03 08:55


“앗, 찍혔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이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정문을 피해 뒤쪽 가림막 출입문을 통해 조사실에 들어가는 순간, ‘현장풀’(현장 상황에 따라 구역을 나눠서 찍고 나중에 사진을 공유하는 공동취재 합의)에 참가한 기자로서 안도의 한숨과 씁쓸함이 교차했습니다.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전두환도 취재진 앞에 서서 ‘골목 성명’을 내놓았고, 역시 수사를 받았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도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섰습니다. 헌정 사상 첫 현직 대통령으로서 피의자가 되는 치욕적인 순간을 감추고 싶었던 걸까요.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뒤로 숨는 그의 모습은 치졸하고 비루해 보였습니다.

2025년 1월15일, 공수처는 윤석열에 대해 두 번째 체포영장을 집행했습니다. 공수처 앞은 취재진과 경찰로 북적였고, 만약을 대비해 현장 사진기자들은 건물 뒤쪽에서 ‘현장풀’을 하기로 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을 놓치지 않으려는 취재진의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사진기자협회 주최 보도사진전 대상을 받은 한 후배 기자가 건물 앞쪽 현관 옆 좋은 자리를 잡았기에 저는 현장풀에 참가해 뒤쪽에 자리했습니다. 3단 사다리 위에 올라 100-500㎜ 렌즈로 상황을 살펴보며 피사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셔터 스피드는 1000분의 1초로 맞춰뒀습니다.

오전 10시24분(아래 시각은 카메라 이미지에 기록된 시간입니다), 경호처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제가 서 있는 자리로부터 건물 입구까지는 약 40~50m 거리였습니다. 10시51분, 윤석열이 탄 차가 후문으로 들어왔고, 가림막 주차장 안에 멈춰섰습니다. 경호원이 내렸습니다. 잘하면 피사체를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차 한 대가 와 서며 앵글을 가렸습니다. “이대로 끝나는 걸까?”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그러던 중, 두 차 사이로 누군가 내리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안이 어두워 확실하진 않았지만, 대통령임을 직감했습니다. 10시53분14초, 그가 경사로를 오르는 모습이 보였고, 파인더에서 사라진 1초 동안 12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액정 속 이미지를 보자 윤석열임을 확인했습니다. 급하게 회사로 사진을 보냈습니다. 이후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유된 사진은 곧이어 방송에 보도되면서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 뒤 43일 만에 체포되는 순간을 전했습니다. 이 순간이 제가 늘 꿈꾸는 전설적인 보도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요?

“뒤쪽이 진실이다, 등은 거짓말할 줄 모른다. 뒷모습은 정직, 단순, 소박하고 너그럽다. 그러나 쓸쓸하다”라며 “마음과 의지에 따라 표정을 억지로 만들거나 꾸미는 정면 모습보다 뒷모습은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고 사진집 ‘뒷모습’(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에 나옵니다. 윤석열이 보인 옆모습도 투르니에가 말하는 뒷모습과 비슷할까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처럼,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때로 품위와 여운을 남깁니다. 윤석열의 옆모습은 역사의 기억에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지 궁금합니다.


사진·글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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