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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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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산도 알기 어렵다…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다

<한겨레21> 기자들이 꼽은 올해의 ○○-올해의 산 편
등록 2023-12-15 23:32 수정 2023-12-22 14:20
계룡산의 깊고 너른 동학사 계곡.

계룡산의 깊고 너른 동학사 계곡.

주로 남 얘기만 해오던 <한겨레21> 기자들이 한 해를 보내며 ‘개인적인’ 올해의 ○○을 꼽아보았습니다. 테니스를 배우다 많은 공을 잃어버리며 “성장했다”고 우기는 서혜미 기자, 동화책 한 권에 울컥했다 설렜다 한 ‘언제나 초심 엄마' 손고운 기자, 잦은 출장에 밑창이 벌어진 등산화를 공개하며 편집장을 은근하게 규탄한 류석우 기자까지. 기자들의 ‘민낯'을 대방출합니다.―편집자 주

20~30대 때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젊고 건강했기 때문에 운동이 필요하지 않았고, 산 정상에 오르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40대 후반이 되면서 스스로 산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몸이 늙어서 운동이 필요했고, 인왕산 자락으로 이사해 산에 가기 편리했다.

인왕산은 게으른 산행을 하기 좋은 곳이다.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도 1시간 남짓이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높이가 338m이고, 능선길도 그리 길지 않다. 인왕산에서 샘물을 떠다먹고, 땔나무를 주워다 불멍을 하면서 내가 자연의 순환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인왕산 애인’이란 건방진 별명을 붙여보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인왕산이 얼마나 좋은지 자랑했다. 이중환의 <택리지>를 본따 ‘인왕산 찬가’를 짓기도 했다. “백악은 빼어나지만 그윽하지 않고, 남산은 그윽하지만 빼어나지 않다. 낙산은 빼어나지도 그윽하지도 않고, 인왕산은 빼어나기도 그윽하기도 하다.”

인왕산에서 재미를 붙인 산행의 발길은 다른 산들로 옮겨졌다. 가까운 북한산은 자주 갔고 인왕산 다음으로 사랑하게 됐다. 서울을 둘러싼 관악산과 아차산, 용마산, 불암산, 수락산도 찾아갔다. 다른 지역의 산은 많이 가지 못했다. 다만, 황량한 정상에서 오직 버티고 선, 소백산의 주목에 놀랐고, 정상에 아름다운 주상절리(갈라진 기둥 바위)가 우뚝 선 무등산에 감탄했다.

다른 지역의 산 가운데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고향의 ‘계룡산’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나들이나 학교 소풍, 친구들과의 산행, 회사 모임 등으로 수십차례 찾아간 곳이었다. 그러나 2023년 4월8일 산행을 하고 나서야 그동안 계룡산을 알지 못했음을 알았다. 계룡산의 꼬리를 보고 계룡산이라고 생각해왔다.

특히 삼불봉에서 관음봉 사이의 천길 낭떠러지 등성이길에서 바라본 동학사의 깊고 너른 계곡은 장관이었다. 진달래꽃으로 물든 절벽에서 가늘고 길게 흘러내리는 은선 폭포도 아름다웠다. 사람도 알기 어렵지만, 산도 알기 어렵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깨닫는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올해의 ○○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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