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하청 노동자로 일했다는 한 주민이 휴대폰으로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류우종 기자
오래된 다방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렸다. 다들 입맛이 제각각이었다. 두 사람은 우유를 시켰고 두 사람은 연한 커피와 생강차를 마셨다. 헤어지며 손에 박카스를 쥐여주는 정 많은 이도 있었다. 개성도, 말씨도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영풍석포제련소 하청노동자로 일하던 중 병을 얻었고 이를 직업병(산업재해)으로 인정받길 원했다.
더 나은 삶을 바라고 직장을 얻었다가 도리어 몸과 마음이 병드는 일이 한국에선 드물지 않다. 회사가 취급하는 유해물질이 뭔지 아무도 모르거나 적절한 보호장구를 지급받지 못한다. 업무 환경을 바꿔달라는 건의사항은 원청까지 가닿지 않는다. 직원들은 자기 몸에 찾아오는 변화를 모른 채 일하다 어느 날 몸이 망가진다.
몸이 아파도 그것이 직업병임을 입증하는 길은 산 넘어 산이다. 노동자가 수년에 걸쳐 일한 작업환경이 측정기관 앞에 그대로 복원되는 일이 드물어서다. 외부기관이 주기적으로 회사를 방문해 측정하는 유해물질 수치는 늘 ‘인체에 영향이 없을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기관 방문 일정을 회사가 대략 알고 대비하는 관행이 있다는 건 ‘안 비밀’이다.
산재를 심사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일회성 검증도 열악한 작업환경을 좀처럼 포착하지 못한다. 노동자가 수년에 걸쳐 일한 공정을, 공단이 그때로부터 한참 지난 시점에 방문해 측정하는 것이 전부라서다. 백혈병에 걸린 석포제련소 하청 퇴직자 진현철씨의 경우 그가 일한 업무 기간(2009∼2017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21년 2월 공단 산하 연구기관이 한 차례 현장을 방문한 게 끝이다.
그래도 그 측정값은 직업병 여부를 판가름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진씨가 일한 현장에서도 카드뮴, 납, 포름알데히드 등 수많은 발암물질이 검출됐지만 그 수치는 노동부가 정한 유해 기준보다 낮았다. 공단은 이를 근거로 진씨 산재 신청을 기각했다. 그 마을의 많은 이가 공단이 정한 문턱에서 미끄러져 산재 신청을 포기했다. “너무 억울해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는 아주 소수 만이 소송을 선택했다.
법원은 이들 손을 들어줬다. 2023년 4월 석포제련소 하청노동자로 일한 배아무개씨가 법원에서 소음성 난청을 산재로 인정받았다. 이 사건은 공단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2023년 11월 백혈병 질환자 진현철씨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마찬가지로 공단이 아닌 법원 판결로 인정받았다. 2017년 3월 암 진단 뒤 6년8개월 만이었다. 공단은 12월5일 항소했다. 자신의 병이 직업병임을 인정받으려는 노동자의 긴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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