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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석포제련소 아르신가스 중독, 2017년 2022년에도 있었다”

강희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 인터뷰 “아르신 중독 환자 업무관련성평가서 써줘”
등록 2023-12-15 02:42 수정 2023-12-15 03:57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3년 12월9일,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한 62살 하청노동자 김아무개씨가 쓰러졌다. 진단명은 ‘급성 아르신가스 중독’. 그는 아연 찌꺼기가 담긴 탱크의 부속품을 교체한 뒤 혈뇨와 복통 등을 호소하다 치료 중 숨졌다. 그를 포함해 노동자 4명이 현재까지 아르신가스 중독을 진단받았다.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가 있다. 강희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2017년과 2022년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한 노동자 2명의 아르신가스 중독을 진단하고 이들에 대한 ‘업무관련성평가서’(노동자가 가진 질병의 직업병 여부를 검토한 보고서)도 “업무로 인한 중독이 확실하다”는 취지로 써준 적이 있다. 제련소 노동자의 아르신가스 중독 실태를 더 자세히 듣고자 <한겨레21>이 12월13일 강원도 원주시 강원근로자건강센터에서 강 교수를 만났다.

미 질병등록청 참고치보다 400배 높아
—석포제련소에서 일한 노동자를 두 번이나 아르신가스 중독으로 진단했 다고.

“첫 환자는 응급의학과 협진 의뢰로 진료했다. 이미 아연·벤젠 등 여러 (유해물질) 검사를 했는데 원인을 못 찾은 상황이었다. 나도 아르신가스 중독을 교과서로만 배우다 그때 처음 (실제 환자를) 봤다. 환자는 빈혈에 콜라색 소변을 봤고 간 수치도 높았다. 노동자가 일한다는 제련소에 대해 의학 논문을 찾다 아르신가스 중독 증상을 알게 됐다. 환자의 증상과 일치했는데, 혈중 비소 농도가 미국 독성물질 질병등록청(ATSDR) 참고치보다 400배 이상 높았다. 24시간 소변 비소 농도는 ATSDR 참고치가 따로 없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참고치와 비교했는데, 참고치보다 70배 이상이었다. 증상이 발생하고 엿새가 지난 시점이었다.”

—2022년 만난 두 번째 환자는 어땠나.

“그 환자도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 왔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때문인 줄 알고 지역 내과의원 등을 다니다 마찬가지로 콜라색 소변을 보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환자 소식을 전해듣고 2017년 환자가 바로 떠올랐다. 비소 검사를 해 보니 이분도 혈중 비소농도가 참고치(ATSDR)의 200배 가까이 됐다. 콜라색 소변을 본 지 열흘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소변 비소농도는 참고치(ATSDR)의 7배 가까이 높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아르신가스 중독이 일상에서 흔한가.

“간혹 해산물을 먹어서 혈중 비소 농도가 오르기도 한다. 근데 두 환자는 모두 해산물 섭취로 올라갈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기엔 너무 높았다.”

—아르신가스에 중독되면 어떤 증상을 보이나.

“가장 흔한 것은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매슥거리고 구역질, 배가 아프거나 숨이 가쁜 증상이다. 특히 콜라색 소변을 보고 나서 병원을 찾게 된다. 아르신가스가 몸에 들어와 깨뜨린 적혈구가 소변으로 나오는 것이다. 병원에서 검사해보면 적혈구가 깨져 빈혈 소견이 있고, 콩팥 기능이 떨어지며, 간 수치가 올라가고, 근육이 손상된 소견을 보인다.”

—아르신가스로 사망에 이르기도 하나.

“노출된 가스의 농도와 시기를 놓치지 않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앞서 만난 두 환자는 퇴원할 즈음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됐다. 하지만 농도가 짙은 아르신가스에 노출되면 콩팥 기능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제련소에서 아르신 중독 사고가 잦은 이유
—아르신가스는 주로 어떤 공정에서 발생하나.

“아르신가스는 삼수소화비소라고도 부른다. 고체인 비소가 기체가 된 것이다. 제련소의 전체 생산과정을 본다면 아연광(광물)을 황산에 녹이는 ‘용해공정’과 용해된 액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액공정’이 아르신가스 발생 위험이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된다. 아연 추출을 위해 아연광을 황산에 녹일 때 불순물인 비소가 황산과 반응해 아르신가스가 된다.”

—두 사람은 각각 제련소에서 어떤 일을 했나.

“한 사람은 여포(아연 찌꺼기를 여과하는 천)를 세탁해 접는 일을 했다. 여포를 접는 장소가 폐수액이 모이는 탱크 위였는데, 하루는 유독 여러 배수관에서 폐수액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독 증세를 보였다. 또 다른 사람은 황산에 녹은 아연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액공정에서 일했다. 황달과 구역질, 어지럼증, 근육통을 동반한 콜라색 소변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강희태교수가 화면을 보며 설명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르신가스가 늘 발생하는 현장 같은데 그게 항상 사고로 이어지진 않는 것 같다.

“건설현장 추락도 똑같다. 같은 환경이어도 누구나 다 추락하진 않는다. 그렇다고 사업주가 ‘추락 안 하겠지’ 하고 위험한 현장을 내버려두는 건 안 되지 않나. 아르신가스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농도가 낮아 그냥 지나갈 수 있고, 또 어떤 날은 중독을 일으킬 만큼 농도가 높을 수 있다. 사업주가 중독을 예방할 때의 기준은 물론 가장 농도가 높을 경우다. 최악에 대비해 계획해야 한다.”

최근 아르신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하청노동자 김씨는 정액공정에 사용하는 탱크를 손본 뒤 중독 증세를 호소했다. 탱크 안에 저장된 아연 찌꺼기가 불상의 물질에 화학반응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 노동부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회사 쪽은 탱크 안에 담긴 물질이 아연 찌꺼기와 ‘중성액’이며 황산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가스중독 막으려면 ‘송기마스크’ 써야 했지만
—제련소는 아연광과 황산을 취급하는 특성상 아르신가스가 발생하기 쉬울 것 같다. 어떤 조처가 필요하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권장하는 보호장구는 송기마스크긴 하다. 공기호스가 달린 마스크라 부피를 많이 차지해 여럿이 한데 모인 작업장에서 쓰기는 만만치 않다. 2022년에 온 환자도 (송기마스크가 아닌) 방독마스크를 썼다고 했다. 2017년에 온 환자는 방독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급성 중독을 일으키는 가스인데 방독마스크로 충분할까.

“방독마스크가 있으면 원칙적으론 가스로부터 어느 정도 보호된다. 그런데 실제론 작업자가 밀착해서 착용하는 법을 잘 모르거나 (필터가) 포화되면서 기능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많다. 가스중독을 진짜로 막으려면 노동자 얼굴에 방독마스크가 밀착됐는지 안전관리자가 작업 때마다 수시로 확인해야 하고, 필터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적절한 시기에 교체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작업하며 항상 밀착해 쓰기가 쉽지 않다.”

—작업자가 일하는 방식과 보호장비가 딱 맞진 않을 테다. 그래도 그 틈새를 메우는 게 사업주 역할 아닌가.

“사업주 의지가 제일 크다. 어떻게든 (문제를) 잡겠다고 하면 했을 것이다. 보호장구 착용을 강화하면 노동자도 싫어할 수 있다. 일하기도 바빠죽겠는데 업무 속도가 느려지니까. 그래도 그냥 방치하면 사고가 나니까 어떻게든 현장 노동자와 소통하고 싸워가며 (개선을) 하는 것 아니겠나. 이곳도 작업위험도를 구분해서 아르신가스가 생길 가능성이 많은 작업은 공기호흡기를 지급하는 등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고 본다. 특히 이번 사고처럼 설비 유지·보수 같은 ‘간헐적 작업’은 늘 이뤄지는 것이 아니니, 그때만이라도 송기마스크를 쓰라고 할 수도 있었다. 실제 그렇게 안전관리를 하는 곳도 있다. 안전관리 잘하는 기업들은 보호장구 제대로 안 낀 노동자에겐 아예 일을 못하게도 한다. 여기(제련소)는 그렇게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석포제련소가 어떤 보호구를 지급·관리했는지는 수사 대상이라 아직 알 수 없다. 제련소는 “하청업체에 확인한 결과 방독마스크가 제대로 지급됐다”는 입장이다. 다만 석포제련소 하청노동자로 일한 이들은 2017년까지 방진마스크를 쓰다 이듬해인 2018년에야 방독마스크를 지급받았다고 입을 모은다.(관련 기사=“시나브로 이가 다 빠져버렸어” 영풍석포제련소 퇴직자의 호소) 방독마스크를 써도 유해가스를 막기엔 역부족이고 그마저도 개수가 모자라 원청노동자에게 빌려 쓰는 일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영풍석포제련소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진현철씨가 12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풍석포재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에서 당시 작업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영풍석포제련소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진현철씨가 12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풍석포재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기자회견에서 당시 작업환경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학술적으로 제련업 노동과 아르신가스 중독의 연관성이 다뤄진 적 있나.

“2005년 한 제련소 노동자의 아르신가스 중독 사례가 논문(‘급성 비화수소 중독 증례’)에서 다뤄졌다. 그 뒤 2012년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과 의사들이 아르신가스에 중독된 제련소 노동자 3명의 사례를 모아 논문을 썼다. 외국 논문으로도 제련 노동자의 아르신가스 중독 사례를 종종 찾을 수 있다.”

강희태 교수가 소개한 2012년 논문은 미국 학회지에 실린 ‘아르신가스에 의한 급성 신장 질환: 신장 초미세구조병리학’(Acute Kidney Injury by Arsine Poisoning: The Ultrastructural Pathology of the Kidney)이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아르신가스 중독을 진단받은 강원도 태백 출신 노동자 3명(45살 여성 1명, 63살 남성 2명)의 사례를 다룬다. 이들은 모두 황산을 이용해 아연 찌꺼기를 청소하는 일을 했다가 오심과 구토, 혈뇨를 봤다. 논문을 쓴 의사들은 “이들이 청소 과정에서 발생한 아르신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재해자들 소변에선 카드뮴도 다량 검출됐다.

논문에 재해자들 직장이 적혀 있진 않으나, 이들의 출신지와 업종으로 보아 석포제련소일 가능성이 있다. 강원도 일대에 다른 제련소가 없고, 상당수 태백 주민들은 10㎞ 남짓 떨어진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로 출퇴근한다. 최근 백혈병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석포제련소 하청노동자 진현철씨도 태백 주민이다. 이들이 석포제련소 노동자로 확인되면 동 사업장의 아르신가스 중독 환자는 진단된 이만 9명에 이른다.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노동자 사망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제련소 쪽 아르신가스 위험성 알았을 가능성 커

—두 환자를 만난 뒤 어떤 조처를 했나.

“계속 일이 터지니 또 비슷한 사고가 날까 걱정됐다. 2017년 안전보건공단에 보고했고, 2022년 노동부에 직업병 발생 신고도 했다. 신고할 때 ‘여기 관리 잘하셔야 한다, 이러다가 또 사고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두 분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업무관련성평가서를 발급했다.”

—제련소가 사고 예방을 위해 무얼 했어야 할까.

“법에 따라 사업장이 ‘위험성평가’라는 걸 하지 않나. 자기 사업장에 어떤 위험 요인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해서 관리하는 일이다. 제련소 공정을 보면 정액공정의 아르신가스 노출 위험이 확률적으로 크다. 어느 공정에서 아르신가스가 많이 나올지 제련소가 예측해 관리 방안을 계획해야 하는데 그런 게 잘됐을지 모르겠다.”

—아르신가스 중독은 어느 업계에서 주로 발생하나.

“아르신가스를 생산에 활용하는 건 반도체업계다. 제련업계는 생산과정에서 부산물로 (아르신가스가) 발생하는 듯하다. 특히 걱정되는 건 재활용업계다. 영세기업이 많은데 재활용하는 금속 중에 비소가 있을 수 있다. 작은 업체면 의료 접근성이나 안전 인프라가 부족할 텐데 금속을 취급하다 비슷한 사고가 생길 수 있다.”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조기 진단받지 못해 병원을 전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2015년 광주광역시 남영전구 사건 때도 그랬다. 그나마 2016년 메탄올 중독 사고는 이대목동병원 김현주 교수가 (직업병임을) 빨리 진단했다. (그간) 놓치는 게 많았을 거다. 그래도 최근엔 직업병안심센터가 생겼다. 직업환경의학과 없는 병원도 협약을 맺으면 직업병 의심 신고를 할 수 있다.”

경영책임자 등이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을 알고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경영책임자가 처벌될 수 있다. 강 교수가 2022년 노동부에 직업병 발병 신고를 한 만큼 석포제련소도 아르신가스 위험성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노동부는 12월12일 보도자료를 내어 “(석포제련소가) 사전에 충분히 위험을 파악하고 평가했는지, 필수적인 안전보건 조치를 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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