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명가 케이씨씨(KCC)가 부산으로 이적하는데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까요? 이렇게 화가 나는데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민주당을 굳이 뽑아야 할까요? (…) 총선거 때는 우리의 분노를 투표로 결과를 보여줍시다! 부끄럽지 않은 전라도민 전주시민이 됩시다!”
2023년 9월9일 전북 전주시청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등록된 글이다. 전주를 연고로 한 농구단 KCC 이지스가 부산으로 갑자기 연고지를 옮기자 팬들이 분노를 표출했다. 자유게시판에는 이를 항의하는 글이 계속 올라와 팬들의 상실감을 헤아릴 수 있다. 건축자재 등을 생산하는 KCC 공장은 전주에 인접한 완주군 봉동읍 일반산업단지(전주3공단)에 있다.
케이비엘(KBL)은 2023년 8월30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KCC의 연고지를 부산으로 옮기는 안을 승인했다. 새로운 홈 경기장은 부산 사직체육관이다. 2001년 대전 현대 걸리버스 프로농구단을 인수한 뒤 전주를 연고로 운영해온 KCC가 22년 만에 안방을 떠나게 된 것이다. 이전이 결정된 뒤 최형길 KCC 단장은 “연고지를 옮기면서 가장 고민되고 가슴이 아팠던 부분은 그동안 응원해주신 전주 팬들이다. 지금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죄송하다는 얘기뿐”이라고 말했다.
KCC의 부산 이전은 홈구장으로 써온 전주체육관을 둘러싼 갈등이 이유다. 이전설은 2015년에도 나왔다. 2001년부터 홈구장으로 쓰던 전주체육관(1973년 완공)이 노후해 안전문제(C등급)와 협소한 공간 등이 지적됐다. 당시 KCC는 수도권 경기도 수원으로 이전을 추진했다. 전주시는 “2023년 12월까지 새 체육관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해 문제가 일단락됐다.
하지만 KCC 이전설은 2023년 8월 중순 다시 불거졌다. 전주시가 새 체육관이 완성도 되지 않았는데, 전주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다. 전주시는 체육관 터를 소유한 전북대가 국책사업인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사업’을 위해 체육관을 2025년까지 철거하기로 했다는 점을 들어 이렇게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시가 약속했던 체육관 신축은 빨라도 2026년에나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KCC는 최소 1년 이상을 홈구장 없이 지내야 할 판이었다. 프로농구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전주시는 체육관 신축을 2016년부터 추진했지만, 2022년 3월이 돼서야 전주시 덕진구 장동 월드컵경기장 인근에서 체육관 기공식을 열었다. 2023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비 522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3층 6천 석 규모의 다목적체육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당시 발표했다. 하지만 2023년 8월 초에야 공사를 발주했다. 전주시는 지연 이유를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영향으로 건설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 설계를 여기에 맞추느라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한편으로 전주시는 2023년 6월 전주 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야구장·육상경기장 건립을 위한 공사에 착공했다. 야구장·육상경기장·체육관 등 국제경기가 가능한 종합스포츠타운 조성사업의 일환이다. 7년간 추진이 지지부진한 체육관 설립에 비해 이 공사의 추진은 빨랐다. 이로 인해 전주시가 농구보다 야구에 더 관심을 두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KCC 쪽은 “2023년 4월 새 체육관을 직접 지으라는 지역 국회의원 요청이 들어와 이상 징후를 감지했다. 5월에는 전주시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야구장 건립 활용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보고 농구는 뒷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전주 공장의 한 간부는 “야구장 착공(6월)을 체육관(8월)보다 먼저 한 걸 보고 마음이 떠난 걸 알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KCC의 연고지 이전은 체육관과 관련한 표면적인 이유 외에 기업의 마케팅 측면이 고려됐다는 분석이 있다. 실제 홈구장 사용에는 당분간 별문제가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전주시가 체육관 철거 시기를 2026년 이후로 미뤘고, 신축 구장도 2026년이면 완공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주시 등에서는 KCC가 마케팅 효과가 큰 대도시로 연고지 이전을 하고 싶은 터에 체육관 철거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빌미로 삼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관중 동원력에서 인구가 많은 대도시가 유리하다는 논리다. 2015년에 연고지 이전을 검토했을 때도 비슷한 평가가 있었다. 당시는 수원이었고, 이번에는 부산인 셈이다.
전주시는 불쾌하다는 입장이다. 홈구장 문제를 빌미로 KCC가 이익만을 좇는다고 비판했다. 전주시는 입장문을 내어 “KCC는 언론을 통해 이전설을 흘리고 KBL(한국농구연맹) 이사회에 연고지 이전 안건을 상정한 보름 동안 22년간 연고지인 전주시와 팬들에게 어떤 입장 표명도 없었다. 졸속적·일방적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이전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전주시의회도 “경제적 측면과 홍보 효과 등 기업의 상황을 이해하더라도, 홈팬에게 최소한 도의적 입장 표명이라도 했어야 마땅했다”고 지적했다.
KCC의 연고지 이전으로 프로농구 10개 구단 가운데 이제 호남 팀은 없어지게 됐다. 전북의 프로스포츠단은 현대모터스 축구단만 남았다. 2000년에 전북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됐다. 이후 전북도는 프로야구 제10구단 유치를 위해 힘을 모았으나 실패했다. 전주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글이다.
“어떻게 하면 전북현대와 상생할지 지원도 하고, 교통망 개선도 하고, 시에서 도울거리가 뭐가 있나 찾아보기라도 하고, 원주는 어떻게 체육관을 지었는지 가서 좀 배우고, 7~8년 동안 왜 전주는 (체육관 공사 없이) 잡초만 무성히 키웠는지 반성도 좀 하고, 전주 농구 서포터들 찾아가서 사과와 해명 좀 하고, KCC 구단 탓 좀 그만해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무능과 무지와 무책임도 죄다.”
전주=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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