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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타고 ‘불방’ 때리는 MB맨들이 돌아왔다

대통령 미화하고, 비판방송 불허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다시 일어나지 말아야 할 과거
등록 2023-09-02 10:49 수정 2023-09-07 13:29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 KBS 9시 뉴스의 모습. KBS 갈무리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을 강조한 KBS 9시 뉴스의 모습. KBS 갈무리

“박근혜 대통령의 미공개 동영상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공개됐습니다. 공식 석상에선 볼 수 없었던 친근한 대통령의 모습, ○○○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엄근진’(엄격+근엄+진지)한 한국방송(KBS) 앵커가 운을 뗀다. 곧이어 대통령 모습이 화면을 채운다. 기자의 음성이 겹친다.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인기. 감춰뒀던 중국어 실력.” 당신이 미처 알지 못한 대통령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라고 권한다. 이것은 뉴스인가 홍보인가. 2013년 9월22일 KBS 간판 뉴스 프로그램 <뉴스9>에서 실제 방송된 리포트의 일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KBS·MBC·YTN 등 공영 성격의 방송사 구성원들은 ‘낙하산’ 사장을 비롯해 방송 제작 과정에서 각종 ‘외압’을 실현하려는 간부들과 일상적으로 다퉈야 했다. 때로는 막아냈지만, 자주 힘에 부쳤다. 민주화 이전에나 보던 ‘땡전뉴스’ 부활에 숱한 시청자가 등을 돌렸다. 윤석열 정부는 당시 방송을 이끌던 이들을 대거 복귀시키는 중이다.(‘윤 정부, 이렇게 ‘날리면’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나’ 기사 참조) 어쩌면 곧 국민이 다시 목도하게 될 미래 상황을 과거 사례에 비춰 네 유형으로 정리했다.

① 설마설마했던 그가 왔다… 어디서 많이 본 ‘낙하산’ 사장님

2008년 7월 YTN 사장이 된 구본홍씨는 2007년 한나라당(옛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때 이명박 당시 후보 캠프의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으며, 경선 승리 뒤에도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방송상임특보를 한 이력이 있었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언론특보로 ‘모시려고’ 큰 공을 들였다고 알려진 김인규씨는 2009년 11월 KBS 사장에 임명됐다. YTN, KBS 모두 낙하산 사장 저지 투쟁으로 갈등을 겪었다.

2008년 8월 ‘MB맨’들이 한 호텔 음식점에 모여 KBS 새 사장 인선 문제를 의논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이동관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정정길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이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방송계 현안에 대해 얘기한 것뿐”이라며 부인했다. 2016년 뒤늦게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KBS 정기이사회-사장 임명 논의’ 등의 메모가 발견돼 KBS 이사·사장 선임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② 4대강 비판 ‘불방’, 이승만·박정희 친일 행적 ‘불방’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단골’ 성명 가운데 하나는 프로그램 불방(방송 보류)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2010년 MBC <피디(PD)수첩> ‘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의 경우 언론에 배포한 사전 프로그램 소개 자료를 본 국토해양부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이 기각했다. 그런데도 김재철 MBC 사장은 불방 결정을 내리고 ‘사전 시사’ 뒤 방송을 내보냈다. 같은 해 KBS <추적 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 편도 2주 연속 불방되며 구성원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자 3주 만에 전파를 탔다.

미루고 미루다 방송되지 못한 프로그램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 서훈 내역 72만여 건을 처음으로 전체 입수·분석한 KBS 탐사보도팀의 <훈장> 시리즈는 8개월여의 불방 논란 끝에 2016년 반쪽만 방송됐다. 미방송분에는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절 친일파에게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KBS 경영진의 ‘박근혜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③ ‘수신료의 가치’는 정부 홍보 방송에만 적용되나

‘반정부’로 찍힐 만한 비판 방송이 사라진 자리는 ‘친정부’ 방송이 채운다. 2009년 12월 KBS <과학카페>는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과 맛을 홍보했는데 “철저한 검역을 거친다”는 정부 주장만 충실히 전했다. 뒤늦게 해당 방송을 농림수산식품부가 협찬한 사실이 드러나 한우업계가 반발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비슷한 시기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다룬 MBC <피디수첩>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상태였다.

2010년 KBS <열린음악회>는 한국전력공사 협찬으로 ‘한국형 원전 수출’을 기념하는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원전 수출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치적으로 내세운 사업이다. 예능프로 <미녀들의 수다>는 법무부 협찬으로 ‘법무부와 함께하는 미수다’로 꾸미고, 이귀남 당시 법무부 장관이 2분40초가량 홍보 연설도 했다. 2009년 서울 용산 참사의 과잉 진압 비판에 부닥친 경찰청은 KBS 드라마 <수상한 삼형제> 제작을 지원했다. 해당 드라마는 시위대에 맞아서 다친 경찰, 시위대 과잉 진압 책임으로 경찰직을 그만두고 싶어 하는 간부를 일방적으로 감싸는 내용 등을 담아 ‘국정 홍보 드라마냐’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엔 KBS가 박근혜 정부 국정 과제를 홍보하려고 정부 부처와 협의한 내용이 담긴 문건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정 홍보가 아니어도 ‘비판 없는 뉴스’는 만들 수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2013년 5월23일부터 6월21일까지 한 달 동안 MBC와 SBS 메인 뉴스 상위 10개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 MBC는 SBS에 견줘 민감한 정치권 이슈 보도량이 적은 대신 자극적인 사건·사고 뉴스가 많았다. 고라니·멧돼지·진돗개 등 동물이 등장하는 뉴스도 SBS보다 많았다.

KBS 탐사보도팀이 기획·제작한 <훈장> 시리즈는 제작진 중 한 명인 최문호 기자가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긴 뒤 추가 취재를 거쳐 완성했다. 뉴스타파 갈무리

KBS 탐사보도팀이 기획·제작한 <훈장> 시리즈는 제작진 중 한 명인 최문호 기자가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긴 뒤 추가 취재를 거쳐 완성했다. 뉴스타파 갈무리

④ YTN 민영화 절차 진행… 공영방송 몇 개 팔아치울까

MBC와 KBS 2TV 민영화론은 노태우 정부부터 꾸준히 제기된 의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조선일보>의 미디어 정책 질의에 “KBS2를 KBS에서 분리하고 MBC의 단계적 민영화 추진 등”을 공개적으로 답한 뒤부터, 보수 정당에서는 ‘1공영 다민영 체제’로 바꾸자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관 신임 방통위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솔직히 말해서 공영방송을 폐지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 아닌가” 말하면서도, “공영방송은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말하자면, 민영화라는 표현은 별로 좋다고 보지 않지만 경쟁체제 속에서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르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YTN의 공적 지분을 매각하는 방침이 이미 결정됐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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