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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이렇게 ‘날리면’ 나중에 어쩌려고 저러나

정권 따라 휘청여온 공영방송…윤석열 정부는 최소한의 명분도 없이 ‘연쇄 날림’ 최종 목표는 KBS·MBC 사장
등록 2023-09-02 01:38 수정 2023-09-07 02:21
2023년 8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수여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3년 8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수여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튜브 채널 <신의 한수>에 출연해 ‘보수 우파의 제대로 된 분들은 지상파 방송을 보지 않는다’ 이런 말씀 하셨더라고요. 이동관 후보는 제대로 된 보수 우파입니까?”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변 의원: “지상파 방송 보지 않습니까?”
이 후보자: “요 근래 편향된 뉴스가 너무 많기 때문에 문제 보도라고 생각하는 걸 보는 것 외에는 잘 안 봅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후보자님, 현재 ‘방송장악 기술자, 민주주의 파괴’ 등의 악의적 프레임으로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내로남불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 후보자: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 8월18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방통위) 후보자는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전국언론노동조합, 문재인 정부 등에 대한 ‘반감’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속했던 이명박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련 언론통제 문건들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했다.

왜곡된 언론관도 고스란히 드러냈다. <조선일보>를 포함해 정권에 불리한 보도를 ‘문제 보도’로 관리해온 사실에 대해 질문받자 “문제 보도라는 표현이 말하자면 통상적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되는 보도라는 의미”라고 답했다. “좌파 세력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논조를 유지”한 ‘VIP(이명박 대통령) 전화 격려 대상’ 언론인을 관리한 것에는 “사실 이 정도 일은 어느 정부에서나 다 하는 거”라고 말했다. 청문회 끝자락에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 때 정치적 후견주의를 끊”기로 약속해달라고 재차 질의하자 “노력하겠다”면서도 이렇게 답했다. “왜 앞 정부(문재인 정부)에서 그것 못했나요, 그러면?”

날리면 날리면 날리면

국회에서 민주주의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며 언론 자유도를 추락시키는 사이, 언론계에서는 ‘연쇄 날림(해임)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2023년 5월30일 한상혁 방통위 위원장 면직을 필두로, 윤석년 KBS 이사, 정미정 교육방송(EBS) 이사, 남영진 KBS 이사장,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 이광복 방심위원 등이 해임되거나 해촉됐다. 석 달 새 벌어진 일이다. 지나친 속도전에 방송계 일각에선 ‘이동관 후보자가 방통위원장에 임명된 뒤 이사들을 해임하면 야당에서 방통위원장 탄핵을 추진할 우려가 있어 미리 처리해둔다’는 해석이 떠돌기까지 했다.

“일종의 이어달리기죠. ‘형식적 법치주의’의 횡포고요.” 강형철 교수(숙명여대 미디어학부)의 말이다. 현행 법제도상 방통위, 방심위, KBS 이사회, 방문진의 인적 구성은 모두 ‘여대 야소’다. 정부·여당이 추천한 인사가 야당 추천 몫보다 수적으로 많고, 의사결정은 다수결을 따른다.(제1467호 ‘대통령이 싸움 거는 공영방송 쟁탈전’ 참조) 그러니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에 임명된 방통위원장을 날리면, 바통을 받은 방통위는 KBS 이사회와 방문진의 더불어민주당 추천 몫 이사를 자를 수 있다. 위원장 날아간 방통위지만, 남은 위원 3명만으로도 의결이 가능하다는 게 방통위의 법 해석이다. 방통위로부터 바통을 건네받은 공영방송 이사진은 방송사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 연쇄 해임 사건의 끝이 ‘KBS·MBC 사장 교체’라는 전망이 우세한 이유다. MBC 대주주인 방문진보다 먼저 바통을 받은 KBS 이사회는 이미 김의철 KBS 사장 해임 제청안을 8월30일 정기회의에 의결 안건으로 올렸다.

무더기 해임에 이어 그들의 빈자리를 대체할 인사도 속속 진행됐다. 대대적 물갈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이동관 신임 방통위 위원장이다. 이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 대변인, 홍보수석비서관, 언론특별보좌관 등을 거쳤다. ‘엠비(MB)맨’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국회 입성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2012년 제19대 총선,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공천을 신청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MB의 입’이라 불리던 그는 2021년 대통령선거 운동부터 ‘윤석열의 입’으로 거듭났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미디어소통특별위원장, 당선자 특별고문,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23년 5월 말 방송통신정책을 총괄하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방통위 위원장에 내정된 사실이 알려진 뒤 모처럼 언론의 큰 관심을 받았다. 여당 의원들은 ‘방송 정상화의 적임자’로 환영했지만, 야권과 언론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방송 독립성 침해 이력이 재차 회자하고 자녀 학교폭력 은폐와 부인 인사청탁 의혹 등이 불거졌다. 여론조사에서도 ‘부적합하다’(59.8%)는 응답이 높았다(그래프 참고). 하지만 윤 대통령은 8월25일 이 신임 위원장에게 직접 임명장을 줬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관도 똑같습니다”

김영식 의원: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2021년 6월29일부터 7월30일까지 무려 11일간이나 윤 대통령 비판 방송에 집중했습니다. KBS도 마찬가지입니다. (…) MBC, KBS가 공정성을 무시한 채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후보자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이 후보자: “이것은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관도 똑같습니다. 저희는 정권의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 왼쪽으로 기울어 있는 방송 지형을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똑바로 평평한 곳에서 공정하게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태도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고 (…).”

이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언론관이 똑같다”는 자신의 말을 입증이라도 해보이듯 8월28일 취임사에서 대통령이 자주 쓰는 단어인 ‘카르텔’ ‘자유민주주의’ 등을 활용했다. “정치적 편향성과 가짜뉴스 확산은 물론, 국론을 분열시켜온” 공영방송을 “획기적으로 개혁하겠다”는 목표도 다시 상기했다. 말뿐만이 아니다. 이날 그는 방통위원장으로서 주재한 첫 회의에서 EBS 이사회, 방문진의 빈자리를 채울 보궐이사 임명을 강행했다.

이동관만큼 화려한 귀환은 아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언론계에서 ‘한가락’ 한 다른 사람들의 복귀 소식도 이어진다. 대표적 ‘낙하산’ 인사이자 노조 탄압으로 비판받은 김재철 MBC 사장 시절에 홍보국장·기획홍보본부장을 맡았던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은 국민의힘 추천 몫의 방통위원으로 내정됐다. 판사 출신 차기환 변호사는 8월9일 방문진 보궐이사로 임명됐다. 그는 새누리당 추천으로 방문진·KBS 이사 등 공영방송 이사만 9년가량 지냈으나,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게시글을 소셜미디어(SNS)에 퍼나르는 등의 활동 탓에 공영방송 이사에 걸맞지 않은 ‘극우 성향’ 인사란 비판을 받았다. 차기환 이사는 <한겨레21>에 “한겨레 등 매체가 극우 개념을 악용해 낙인찍기에 사용하는데, 나는 극우가 아니며 중도 우파에 가깝다. 국민 절반이 의심을 가진 사안에 대해 공론장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노황 전 연합뉴스 사장은 미디어재단 TBS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연합뉴스 사장 때 보도 공정성을 위한 제도적 장치인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하는 등의 행위로 회사 안팎에서 비판받았다.(제1056호 ‘누구를 위한 공영통신인가’ 참조) 류희림 전 YTN플러스 대표는 방심위원으로 위촉됐다. 그는 ‘MB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YTN 직원들의 해직 사태가 벌어졌을 때 YTN 경영기획실장이었다. 류 위원은 최근 <미디어오늘>에 “노조와 대척점에서 일하다보니 내가 한 것에 대해 과장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방송 장악’하면서 동료인 강규형 KBS 이사가 이사회에서 무참하게 쫓겨난 걸 곁에서 봤고요. 그 뒤 KBS가 너무 편향적인 걸 보고 ‘방송 정상화’를 위해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차기환 이사에게 다시 방문진 이사를 맡은 계기를 물었더니 이런 답을 내놨다. 이는 여당에서 이동관 신임 방통위원장을 감싸고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방송 장악’에 대한 비판이 나올 때마다 반박하는 ‘단골’ 논리와 같다. 이른바 ‘내로남불’론. ‘방송 정상화’는 2016~2017년 촛불혁명 때 ‘언론적폐 청산’과 함께 내걸린 구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내로남불’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틀린 일

하지만 지금 추진되는 일들이 정말 로맨스와 불륜을 대하는 입장 차이와 이중 잣대의 문제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앞에서 강형철 교수가 “형식적 법치주의의 횡포”라고 평가한 것처럼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정부·여당 입맛대로 주무를 수 있는 건 현행 법제도의 문제다. 민주화 이후 정부 차원에서 감사원과 검경 등을 동원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털고 강제 해임까지 나선 것은 이명박 정부가 최초였지만, 문재인 정부 때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가 해임된 것도 사실이다.(표 참조) 강규형 전 KBS 이사, 고대영 전 KBS 사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했다.

‘내로남불’ 주장은 정권교체 뒤 승자독식 정치의 결과로 정부·여당과 ‘코드’가 맞는 인사로 교체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주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때 틀린 일은 지금도 틀린다. 전 정권의 성찰을 촉구하려 이중 잣대 주장을 하는 거면 몰라도, 틀린 일을 반복하면서 ‘전 정권도 똑같았다’고 주장하는 건 사실상 방송 장악을 시인하는 셈이다.

또한 정부·여당은 ‘좌로 기울어진 공영방송의 균형을 잡겠다’며, 진보-보수 이념대립과 공정성 문제로 틀 지으려 한다. 하지만 언론학자와 언론시민단체는 방송 독립성 침해·훼손의 허울에 불과한 명분이라고 본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모든 권력이 언론을 통제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점에서 역대 정부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윤석열 정권의 방송 장악은 권위주의의 문제”라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언론 유관 기관에 다시 불러들인 인물들은 과거 정부가 언론을 ‘도구화’해서 정부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홍보하거나 비판 보도를 막는 데 앞장서거나 일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낙하산 타고 ‘불방’ 때리는 그들이 공영방송 팔러 온다’ 기사 참조)

김동찬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이 방송제도 개혁을 방치한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 정치적 무능력과 개혁의 실패를 권위주의 문제와 등치시키면 안 된다”며 “지금 방송 장악보다 더 무서운 건 ‘권위주의로 방송을 정상화해도 된다’는 비정상적 생각이 정상화(뉴노멀)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도 “민주공화국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을 바꾸고, 사장 이하 전 간부를 갈아치우는 일이 반복되면서 공영방송이 만신창이가 됐다. 공영방송 제도가 풍전등화 상태”라고 말했다.

법원이 해임사유 아니라 했는데도

“태극기집회에 수십 만이 모여도 (사람이) 덜 모인 데를 찍어서 내보내면 편파방송이지만 조작은 아닌데. (<피디수첩>에서) 태극기집회 참여자가 돈 받고 (집회에) 참여했다고 하면 편파 왜곡을 넘어서 조작 아닙니까?” 2017년 2월23일 방문진이 MBC 사장 후보자들을 면접하는 자리에서 고영주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한 후보에게 던진 질문 가운데 하나다. 그는 다른 후보자에게 “(만약 사장이 되면) 이것을 엄히 감사를 해서 징계할 생각이 있는가” 묻기도 했다. 고 이사장의 이런 행태는 방송 독립성 침해로 그의 해임 사유에 포함됐다.

그러나 고 이사장이 방통위를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은 고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런 행태가 “구체적인 취재 내용을 문제 삼아 방송편성에 직접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에게 징계 및 감사를 요구하는 것은 취재진 등이 자유롭고 활발하게 취재 및 방송편성에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방송편성의 자유에 관한 우려할 만한 간섭 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해임까지 할 근거가 된다고 보지 않았다. 대신 방통위가 재량권을 일탈하거나 남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고 이사장 판결만 그런 게 아니다. 강규형 KBS 이사, 고대영 KBS 사장의 해임처분 취소 소송 판결문들도 비슷하다. 판결 취지는 간단하다. 방송관계법들이 방송 독립성을 보호하려고 공영방송 이사·사장의 신분 보장도 중시하므로, 이들의 해임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연쇄 날림’은 최소한의 명분 쌓기도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가령 강규형 KBS 이사는 감사원 감사 결과 업무추진비 327만3300원을 부당집행했다는 결과 등을 바탕으로 해임됐는데, 법원은 그 사실이 해임할 사유까지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윤석열 정부는 남영진 KBS 이사장을 해임하면서 ‘국민권익위원회가 남 이사장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의혹을 조사 중’이라는 사실을 사유에 포함했다. 권익위가 남 이사장의 720만원 규모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가 확인됐다며 검찰에 수사를 요구한다고 밝힌 것은, 남 이사장이 잘리고 39일이 지난 뒤였다.

남 이사장을 비롯한 해임 이사들은 법원에 해임처분 집행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과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하지만 방통위는 법원이 가처분 신청 사건 심문기일을 열기도 전에 보궐이사들을 임명했다.

‘방송 전쟁’은 정치 양극화도 심화한다

권력이 벌이는 ‘방송 전쟁’은 공영방송만 망치는 게 아니라 정치 양극화도 심화한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의 적합도를 둘러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 일부도 ‘부적합’ 반응이 높지만 양당 지지자별 답변이 확연히 나뉜다.(표 참조) 조항제 부산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는 “서구 공영방송들도 편향 논란이 있고 좌우 양쪽에서 욕먹는다. 그렇게 양쪽에서 비판받는 걸 신뢰의 기반이자 정체성으로 확립해온 공영방송 역사와 조직문화가 존재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공영방송이 저널리즘 원칙보다 진영논리에 휘둘리는 ‘정파적’ 행태는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공영방송 제도를 공격하고 독립성을 짓밟는 형태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품질과 신뢰 문제는 ‘비민주적 물갈이’로 해결할 영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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