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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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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되면 대박”…코인 열풍에 다단계 사기 판친다

등록 2023-06-23 21:57 수정 2023-06-30 11:15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반려견의 코주름(비문)을 찍으면 개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장비 ‘비문리더기'를 개발했다. 이 사업에 투자하면 100일간 매일 1.2~1.5% 수익금을 자체 개발한 코인(가상자산)으로 지급한다. 이 코인이 대형 거래소에 상장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2023년 6월21일 경기남부경찰청은 반려견 플랫폼 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속여 1년간 투자금 1664억원을 받아 챙긴 불법 다단계 조직을 적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전국에 62개 지점을 두고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는데, 피해자 대부분은 가상자산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수사 결과 비문리더기는 코주름 식별 기능이 없고, 자체 개발했다는 코인 역시 국내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며 브로커에게 1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의 범행은 후순위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선순위 투자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돌려막기 형태의 폰지사기였습니다.

이 사건은 코인 사기 범죄의 전형적인 방식을 따릅니다. ‘상장 대박'을 내걸어 투자자를 유인하고 투자자 모집은 불법 다단계로 하는 겁니다. 코인 사기 범죄 실태를 다룬 제1468호 표지이야기(‘코인 시장은 총체적 난국’)는 바로 이런 사기 행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현행법으로 왜 처벌이 쉽지 않은지 등을 짚었습니다.

기사를 본 뒤 한 독자는 이런 전자우편을 보냈습니다. “저도 한때 퇴직금으로 코인에 투자했다가 갑자기 리딩방(투자 정보 제공방)이 사라져버려 힘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제게는 큰돈이었지만 보상받지도 못하고 인생의 수업이구나 생각하며 지냅니다. 이러한 현상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절박한 청년들에게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요.”

코인 범죄 피해액은 이미 보이스피싱 피해액의 세 배가 넘을 정도로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이 독자의 얘기처럼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 많은 사람이 코인 사기를 당해 고통받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기사 댓글에는 “투자자가 부주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법 있었습니다. 물론 투자는 개인이 책임지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혼탁한 코인 시장을 방치하는 정부에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현재 코인 시장은 심각한 정보 비대칭 상태입니다. 일반 투자자는 투명한 정보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코인 대박' 유혹에 노출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한 전문가는 “투자 정보를 모르고 투자하는 것이 곧 투기다. 가상자산 시장의 투기성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가상자산은 우리가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가상자산 투자 물결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주요국들은 가상자산의 실체를 인정하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할지 고민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와 국회도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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