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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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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 전액 지원 코딩 교육은 어쩌다 ‘청춘의 덫’ 됐을까

‘비전공자도 개발자 취업 책임진다’ 홍보해서 청년 취준생 모은 부트캠프 업체들
커리큘럼과 강사 수시로 바뀌는 등 교육과정 부실… 국비 쏟는 정부는 관리·감독 소홀
등록 2023-05-20 04:39 수정 2023-05-25 02:01
한 청년이 코딩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 청년이 코딩을 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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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나 피고 출석했습니까?”

“피고 출석했습니다.”

“1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의 청구 중 이 사건 계약서에 인정되는 1292만원에 한해 인용합니다. 주문. 피고는 원고에게 1292만원과 이에 대해 2022년 6월9일부터 갚는 날까지 연 15%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2023년 4월2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별관 법정. 선고가 끝날 때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곧바로 다른 사건 선고를 내리는 판사를 뒤로하고 이계진(26)씨는 법정을 나왔다. 민사소송 선고기일엔 당사자 출석 의무가 없지만 그는 이날 휴가를 내고 출석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걸린 소송이었다.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그는 별다른 말 없이 담배 연기만 내뿜었다.

선불 890만원, 후불 최대 1500만원짜리 강의

계진씨는 3년차 앱 개발자다. 고등학교 졸업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군대에서 개발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엔 유튜브를 보며 독학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지인에게 한 학원을 추천받았다. 국내 1세대 코딩 부트캠프(Boot Camp) ㅋ사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부트캠프는 ‘신병훈련소’를 부르는 명칭에서 따왔다. 단기간에 집중해 코딩을 교육하고,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수강생들이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컴퓨터공학 전공 등 관련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비전공자를 주로 대상으로 한다. 부트캠프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수업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꽉 채워 진행된다. 기간은 보통 3~6개월이다.

부트캠프가 국내에서 급격히 늘어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다. 코로나19 유행 시기를 거치며 정보기술(IT) 업계 일자리가 늘었고, 개발자의 고액 연봉 등이 화제가 되며 많은 사람이 개발자에 시선을 돌렸다. 그 와중에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연봉도 높고 일과 삶의 균형도 찾을 수 있는 ‘워너비’ 회사로 떠올랐다. 실제 이런 회사들이 뽑는 사람은 경력이 많거나 정말 뛰어난 실력을 지닌 소수의 개발자임에도,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은 저마다 환상을 품고 부트캠프로 들어왔다.

당시 계진씨가 듣고 싶었던 웹 개발 과정(20주) 수강료는 선불로 내면 890만원이었다. 계진씨 수중에 그런 큰돈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ㅋ사가 2016년 도입한 ‘WeWin’(위윈) 소득공유제도였다. 일단 무료로 교육과정을 듣고 취직 이후 소득이 생기면 24개월 동안 월소득의 17%를 지급하는 제도다. 소득에 따라 최대 1500만원까지 납부할 수 있는 구조였다. 2023년 기준 ㅋ사의 부트캠프를 거쳐간 수강생은 8천여 명이다. ㅋ사는 소득공유 모델을 선택한 수강생의 인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2020년 7월, 계진씨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위윈’이라는 말처럼 일단 계약하면 학원에서 엄청 잘해주겠구나, 서포팅을 많이 해주겠구나 생각했어요.” 그 예상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으로 바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ㅋ사 교육은 대부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기주도적 학습 방식으로 진행됐다.

계진씨는 학원에서 짝지어준 다른 수강생과 함께 과제를 수행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모든 수업은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강의는 녹화된 영상이었고, 나머지 시간은 다른 수강생과 과제를 했다. 모르는 것을 실시간으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서너 시간 진행되는 ‘오피스아워’가 유일했다. 그나마도 질문받는 이가 6개월 전엔 같은 수강생 신분이던 강사가 많았다.

“과제를 할 때 경험이 많은 수강생과 없는 수강생으로 조를 짜거든요. 사실상 수강생한테 강사 역할을 맡기는 거죠. 오피스아워를 주관하는 강사도 이전 기수의 학생인 경우가 많아 답변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많아요. 질문하면 `구글링해보라'고 앵무새 답변만 했어요.”

강사는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같은 수강생 신분

결국 계진씨는 계약서에 사인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 계약서상 매달 소득의 17%인 약 50만원을 납부해야 했지만 공유하지 않았다. ㅋ사가 낮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했고 취업 연계 프로그램도 부실하게 이뤄졌기에 채무불이행이라고 생각했다. 웹 개발 과정을 들었지만 앱 개발 회사에 들어간 것이 학원 교육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ㅋ사는 계진씨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소송 과정에서 1심 재판부는 계진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약서 서명은 유효했다. “이 사건 계약 제4조 규정에 따라 계산한 금액인 1292만원에 한해 원고 청구를 인용한다”는 1심 판결문에는 판결 이유가 없었다. 소액사건은 판결 이유를 자세히 기재하지 않아도 되는 탓이었다. 계진씨는 항소했다.

소송에선 졌지만 계진씨의 문제제기는 ㅋ사 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물꼬를 터줬다. ㅋ사에 집단소송을 걸어보자는 제안에 80명이 손을 들었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구글폼으로 신청받았는데, 이 중 75명이 구체적인 문제점을 적어 보냈다. 그중 가장 많은 문제점이 ‘교육과정이 부실하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1세대 부트캠프의 교육과정에 문제제기가 나온 셈이다. 교육과정과 관련해 가장 많이 나온 지적은 ‘강사 자질 부족’ ‘낮은 강의 퀄리티’ ‘자기주도학습을 위시한 방치’ ‘취업 연계 부족’ 등이었다. 계진씨는 “(ㅋ사 과정을 듣는 것은) 시간 낭비, 돈 낭비다”라고 비꼬았다. ​

이런 불만이 쌓이는 동안 ㅋ사는 국비 지원 기관으로 거듭났다. 2020년 9월, 고용노동부의 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 훈련(K-디지털 트레이닝·KDT) 사업에 선정된 것이다. 유현영(29·가명)씨는 2020년 ㅋ사의 국비 과정 ‘AI(인공지능) 부트캠프’에 처음 참여했다. 현영씨는 무료라는 데 눈이 번쩍 뜨였다. ㅋ사 누리집엔 ‘전액 무료’라는 단어가 강조됐다. 큼지막한 ‘2032만원’이라는 금액에 줄이 그어졌고, 옆에 ‘무료’라는 글자가 배치됐다. ‘취업’이란 말도 솔깃했다. 광고창에는 ‘졸업하면 끝이 아닌 끝까지 함께’ ‘데이터 직군의 취업을 책임지는 1:1 맞춤 커리어 코칭’ 등이 쓰였다. ‘AI 부트캠프 졸업생’ 취업 현황엔 쿠팡과 케이티(KT), 엔씨소프트 등 대기업 로고가 즐비했다. 그러나 현영씨는 기대했던 취업 연계 부분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더 빠르게 취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들어갔어요. 그런데 명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취업하는 데 도움 안 돼요. 취업이 목적이면 절대 듣지 않는 게 맞아요.”

국비 운영 과정의 정부 지원 비용은 개인당 1천만~2천만원대다. ‘믿기지 않는’ 파격적인 지원이다. 막대한 돈은 ‘위윈’ 등 취업을 미끼로 수료생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던 학원의 숨통을 틔웠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약 100억원이던 ㅋ사의 교육매출은 2022년 358억원으로 세 배 이상 뛰었다.

파격적인 지원은 이전에 ‘코딩’을 취업 가능성 후보지에 놓지도 않은 사람들까지 끌어들였다. <한겨레21>이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을 통해 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KDT 수료생의 이공계 비율은 2021년 53%에서 2022년 41%, 2023년(3월 기준) 30%로 줄었다.

IT ‘비전공자’ 타깃 모집해놓고 질문하면 “구글링하라”

유명 학원들의 ‘타깃’은 ‘일반인’으로 바뀌었다. ㅋ사 누리집 첫 화면에선 수료생 현황을 공개하며 IT 비전공자 비율이 80%임을 알린다. 다른 부트캠프 대표들도 여러 경로로 비전공자의 유입을 권유했다. “비전공자도 몸값 올리려면 코딩 배워야”(멋쟁이사자처럼 이두희 대표, <아이티조선> 인터뷰>) 한다거나, “코드스테이츠가 비전공자를 ‘개발자’로 키우는 방법”(김인기 대표 인터뷰, <블로터>) 등의 기사가 이어졌다.

학원들도 비전공자 대상의 광고를 쏟아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비전공자의 성공 사례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서른 살 비전공자지만 늦지 않았다’ ‘비전공자 개발자 취업 스토리’ ‘단 120일 만에 개발자가 될 수 있었다’ 등. 자신의 전공과 직업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보편적인데, 전공자가 아닌 경우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는 SNS상에서 재생산됐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이연서(26·가명)씨도 광고를 보고 학원에 지원했다. 그는 대학 졸업 뒤 사회복지사로 2년을 일했지만, 급여에 불만을 갖고 퇴사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ㅍ사 광고를 보고 지원했다.

연서씨가 ㅍ사 빅데이터 관련 과정에서 만나 친해진 김준연(30·가명)씨와 유혜정(30·가명)씨, 김현대(28·가명)씨도 경영학이나 심리학 등을 전공한 비전공자다.

<한겨레21>이 만난 코딩학원을 경험한 청년 10명.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한겨레21>이 만난 코딩학원을 경험한 청년 10명.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준연씨는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공인회계사시험을 준비했다. 오래 공부했지만 몇 번의 실패 뒤 취업을 결심했다. 회계사 공부만 하다보니 취업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그는 코딩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ㅋ사 과정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뒤 ㅍ사 왔다. 비전공자에겐 ㅋ사로 들어가는 시험도 어려웠다.

준연씨 역시 수업 질에 불만이 많았다. “질문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의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어요. (강사들도) 수업 준비 부족이 많이 느껴졌고요. 학원하고 실력 없는 강사만 배부른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연서씨도 질문하면 “구글링해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구글링해야 잘 나오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하라고만 했”(현대씨)다.

더구나 ㅍ사가 운영하는 과정은 한 가지 분야가 아닌, 여러 분야를 동시에 배워야 해서 따라가기 버거웠다. 준연씨는 “비전공자 처지에선 소화하기 어려웠다. 이를테면 파이선(프로그래밍 언어)을 배운다고 하면, 한 달 정도는 배워야 할 것 같은데 약 1주 만에 한 과목을 끝내버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다보니 체화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김지연(27·가명)씨는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훈련 과정을 통해 ㄱ학원에서 빅데이터 수업을 들었다. 초반에 진도를 한 번 놓쳤는데 이후 따라가기 어려웠다. 하루에 6시간 강의를 듣고 6시간 복습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무리해서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강의를 마치고 종일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코딩을 반복하니 ‘게실염’까지 얻었다. 그는 “비전공자가 하기엔 학습량이 너무 많았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출결 체크 화면. K-디지털 트레이닝 과정을 듣는 교육생은 이 앱을 이용해 출석을 알린다. 정성환 제공

고용노동부의 직업훈련 출결 체크 화면. K-디지털 트레이닝 과정을 듣는 교육생은 이 앱을 이용해 출석을 알린다. 정성환 제공

강사·커리큘럼 바뀌고, 수강 철회 기간엔 정보 부족

준연씨는 결국 과정을 따라가길 포기했다. 출석률을 채워야 훈련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출석만 체크한 뒤, 다른 공부를 한다. ㅍ사는 “팀 프로젝트의 참여를 권고하지만, 지속해서 팀 프로젝트 참여를 거부할 때는 부득이하게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중간에 수시로 강사가 교체되고 교육과정이 바뀌었다. “강사가 바뀔 때마다 이전의 커리큘럼도 모르고 강사끼리도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듯했다.”(연서씨) “커리큘럼은 이미 정해놓고 강사들이 뒤늦게 결정돼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다시 커리큘럼을 짜서 수업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 홍보된 커리큘럼과 실제 수업의 괴리가 컸다.”(준연씨) 낮은 수업 질을 아예 ‘사기’라고 느끼는 이도 많다. 부트캠프에 ‘입소’하면 수업계획과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으니 정보의 깊이는 다를 수 있죠. 근데 커리큘럼은 굉장히 객관적인 거잖아요. 그게 잘못됐다는 건 교육생을 기만한 거죠.” 두 번의 국비 지원 과정과 한 번의 유료 부트캠프를 거치며 김동겸(32·가명)씨는 ‘속았다’고 느꼈다.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학을 공부한 동겸씨는 집안 사정으로 중퇴하고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다가 2022년 그만뒀다. 자신의 원래 전공과 관심사를 따라 코딩에 도전했다. 동겸씨가 처음 찾은 곳은 국가기간·전략산업직종훈련 과정이었다. 강의 형태로 진행되는 과정(500만원대)인데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 강사가 개발자 경험이 없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다음으로 노동부의 K-디지털 트레이닝(KDT) 과정으로 선정된 ㅁ사에서 운영하는 부트캠프로 향했다. 백엔드 분야를 배우는 과정 1기에 타이밍이 맞아 들어갔다. 5개월 과정의 수강료는 1400만원대였다. 동겸씨는 전액 지원을 받았다. “프로젝트를 하러 오는 경우도 많았고, 포트폴리오(때문에 오는 사람)도 있”는 등 앞서의 부트캠프와 달리 IT 전공자도 많았다. 해당 과정의 모집글에 ‘개발자와 협업하는 실전형 프로젝트' 등이 적혀 있었는데, 현직자와 프로젝트를 하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국비 과정 비판하는 업체도 ‘부실 교육’ 마찬가지

그러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처음엔 우수 수료생만 기회가 있다고 하던 학원은 중간에 전원 대상으로 추진 중이라고 했다가 프로젝트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ㅁ사는 <한겨레21>에 “다른 훈련 과정의 수료생들과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였다”며 “수료생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니만큼 훈련 과정 종료 이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동겸씨는 이런 부분이 더 화난다고 말했다. “일부러 모호하게 써놓아 법적으로 문제없을지는 몰라도 저희는 기만당했다고 느끼는 거예요.”

동겸씨는 제대로 판단할 수 있었다면 ㅁ사 부트캠프에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수강 철회가 가능한 일주일간은 녹화 동영상만 봤기 때문이다. ㅁ사는 “강사진과의 라이브 강의를 진행하기 앞서 훈련 과정 초기에 자체 기초 IT 교육을 선행하고, 학습 수준을 정규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겸씨의 세 번째 캠프는 유료 부트캠프였다. 유명한 코딩 관련 기본서를 낸 저자가 새로 운영하는 학원이었다. 평소 유튜브 등에서 국비 지원 과정의 문제점을 설명해온 인물이라 더 신뢰가 갔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보니 ‘포장’과 달랐다. 막히는 부분에서 도움을 줘야 할 조교들은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고, 진짜 강사는 계속 자리를 비워 질문조차 하기 어려웠다. 동겸씨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1기 기수 20여 명은 모두 과정을 중간에 그만뒀다. 동겸씨는 현재 독학으로 코딩을 공부하고 있다.

갑자기 많아진 수요를 학원들은 감당하기 어렵다. IT 개발자 헤드헌팅 업체 ‘이브레인’과 개발자 커뮤니티 ‘OKKY’를 운영하는 노상범 대표는 “부트캠프에 사실 수준이 떨어지는 강사가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원이 누가 가르치는지를 보안사항으로 둔다”며 “괜찮은 사람은 섭외하기 어려워 최근에는 보수를 올려서라도 구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KDT 사업에 참여하는 훈련기관 강사 양성 과정을 2022년에야 도입했다.

강사 문제를 포함해 국비 지원 부트캠프의 운영 부실은 3년이 지나면서 표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ㅋ사가 운영하는 KDT 과정은 새로운 기수 모집이 잠정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부는 국비 지원 과정을 조사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자세한 사항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ㅋ사를 조사하는 것은 맞다”며 “조사 결과 문제가 발견되면 처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이익 우려로 문제제기 어려운 ‘취준생’ 신분

계진씨는 총 8회의 강의 평가에서 평균 4.5점을 줬다(5점 만점). 주관식 평가에선 “새로운 방법을 접할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여러 방향과 시각으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썼다. ㅋ사가 제공하는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송까지 갔던 그가 이런 평가를 내린 배경에는 ‘취업준비생’이라는 신분이 있다. 조금이라도 불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쉽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도 얘기하고 싶은데 당시 심정은 이랬어요. ‘뭐라고 하면 취업 연계를 안 해주겠구나.’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 것 같아요. 혹시 뭐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 아닐까. 참가동의서 조항 중에 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조항도 있고요.”

마음먹고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창구가 없거나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국비 지원 과정을 관리하는 노동부에 알려도 답답한 상황이 이어졌다. 수강 철회 기간이 지나 안내된 커리큘럼과 다르다며 노동부에 문제를 제기했던 동겸씨는 “(노동부 산하) 담당고용센터에서 내게 문서 등을 통해 증명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직업훈련포털(HDR-Net)에서 과정을 마친 뒤 수강후기를 적을 순 있지만, 과정 중간에 문제를 알리는 창구를 찾기는 어렵다. 동겸씨는 노동부로부터 “수강생들이 민원서를 따로 제출하지 않는 이상 노동부에서 (훈련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수료 이후에 적는 후기도 적나라한 비판을 적기 어렵다.

부트캠프를 나와 또다시 부트캠프로

<한겨레21>이 만난 부트캠프를 경험한 청년들은 동겸씨처럼 또 다른 부트캠프를 찾았다. 김별희(26)씨는 KDT를 통해 인공지능 관련 부트캠프 과정을 수료했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이후 다시 기업에서 운영하는 부트캠프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지연씨도 현재 한 대기업이 지원하는 부트캠프 과정 참여를 준비하고 있다. “대기업이라는 큰 보증이 있고요. (해당 업체는) 비전공자를 나눠서 뽑는데, 비전공자를 가르쳐본 데이터베이스가 있을 테니 좀더 (비전공자에게) 맞는 학습과정을 주지 않을까 해요.” ㅍ사를 아직 다니는 연서씨도 수료하는 대로 대기업 지원 부트캠프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끊임없이 다른 캠프로 발걸음이 향하는 것은 불안해서다. 현영씨는 비지원 과정과 기업이 지원하는 과정까지 2년 동안 네 번의 과정을 거쳤다. “혼자 공부하다보면 그 전의 부트캠프가 좋지 않아도 자꾸 소속되고 싶고 그러더라고요. 취준생의 마음이 그렇잖아요. 어느 한곳에 소속되고 배우고 있어야 안심돼요.” ‘무료’ 국비 지원 과정을 듣고도 해소되지 않은 청년들의 불안감을 땔감 삼아 ‘유료’ 부트캠프는 또 굴러간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정성환 교육연수생 pray95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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