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기사 안 쓰는 기자는 왜 법조기자실에 있었나

15년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으로 있었던 김만배
사업의 ‘보험’ 격으로 기자들에게 금품 제공했나
등록 2023-03-03 22:22 수정 2023-03-12 16:43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인물인 김만배씨가 2021년 10월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들어선 다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핵심인물인 김만배씨가 2021년 10월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들어선 다음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년에 두어 차례 김만배와 골프를 쳤고 골프 비용은 대체로 김만배씨가 부담했습니다.”(<한겨레> 편집국 간부의 돈거래 사건 진상조사보고서 ‘한겨레 윤리는 어디에서 실패했나?’에서 발췌, 52~54쪽 참조) 김만배씨와 부적절한 돈거래를 한 석진환 전 <한겨레> 편집국 신문총괄은 검찰·대법원을 출입하는 법조팀에서 김씨를 만나 수년간 어울렸다. 김만배씨가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으로 15년간 재직하면서 다른 언론사 법원·검찰 출입기자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며 환심을 샀던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차 트렁크에 명품 신발이 크기별로

1992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김만배씨는 <뉴시스>를 거쳐 2004년 <머니투데이>로 이직한 뒤 2019년까지 줄곧 법조팀장으로 일했다. 김씨와 함께 법원·검찰을 출입했던 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만배씨는 법조기자단 안에서 ‘기자 같지 않은 기자’로 통했다. 기자들은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만 김만배씨는 기사보다는 본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뒀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민원을 해결하는 ‘브로커’에 가깝다는 평가도 많았다.

김씨는 탄탄한 재력을 바탕으로 타사 기자들에게 밥을 사주고 선물을 주면서 영향력을 확대했다. 차 트렁크에 유명 브랜드 구두를 싣고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 중앙일간지 법조팀 기자 출신 ㄱ씨는 “오래전 서울중앙지검을 지나는데 김만배가 나를 보더니 주차장으로 오라면서 대뜸 ‘구두 신냐’고 물었다. 내가 ‘신는다’고 답하니 자기 차로 데려갔고 트렁크를 여니 유명 브랜드 구두가 사이즈별로 있었다”고 말했다. 김만배씨는 “지인이 구두공장을 하다가 망해서 구두를 넣고 다닌다”라며 ㄱ씨에게 “형이 구두 하나 주겠다”며 발 사이즈가 몇인지 물었다고 한다. ㄱ씨는 고가의 구두인 것 같아 에둘러 거절했고 그 뒤로 둘 사이가 서먹해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후배 기자들에게 ‘비싼 밥과 술을 잘 사주는 형’이었다. 검사장과 만나는 자리에 후배 10여 명을 데리고 나가서 계산은 본인이 했다는 일화도 있다. 김씨는 검찰청과 법원 직원들에게도 밥을 자주 샀다. 판검사뿐만 아니라 행정 업무를 하는 직원들까지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판검사들이 알지 못하는 밑바닥 정보를 듣고선 본인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타사 법조기자에게 기삿거리를 주는 방식으로 기자들을 서서히 자기편으로 만들기도 했다.

50억, 49억… <머니투데이> 회장과의 거래

김씨가 법조인과 법조기자와 인맥을 쌓은 것은 본인의 사업이나 회사의 법적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터진 뒤 화천대유의 로비 대상으로 의심받는 ‘50억 클럽’의 6명 가운데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이 언론계 인사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실제 김씨가 홍 회장과 수상한 돈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 수사 결과 2019년 10월 홍 회장은 김씨에게 50억원을 무이자로 빌렸다가 두 달 뒤 갚았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022년 11월25일 홍 회장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한 탐사보도매체 <뉴스타파>가 공개한 김씨의 검찰 조사 내용을 보면, 2021년 6~8월에는 김씨가 연대보증을 서고 홍 회장의 두 아들 계좌로 천화동인 1호의 자금 49억원을 보냈다가 약 한 달 뒤 돌려받기도 했다. 2021년 10월11일 검찰 조사에서 검사는 “홍 회장이 화천대유 사업을 양해해주는 대가로 홍 회장의 자녀에게 돈을 줬다가 문제가 되자 돌려받은 것 아니냐”고 물었고, 김씨는 “그런 것은 아니다. 회장님 자식들이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해서 제가 모시는 회장님인 관계로 담보도 제가 부담하겠다고 해서 대여했다”고 진술했다.

김씨는 법조기자단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려 했다. 다만 법조기자단에 등록된 언론사는 42곳(2023년 2월 기준)인데 이 가운데 김만배씨와 친하게 지낸 기자는 일부다. 김씨의 ‘기자답지 않은 모습’에 멀리했다는 기자도 여럿 있다. 한 방송사 기자는 “김만배는 법조를 잘 알고 인사이트가 있는 기자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했는데, 이빨이 안 들어가는(말발이 잘 먹히지 않는) 사람하고는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법조기자단에서 주류라기보다는 주류와 어울리려 노력했다는 취지다.

김씨와 어울린 일부 기자는 시나브로 윤리의식이 무뎌져갔고, 돈거래까지 이어졌다. 2023년 1월 초, 김씨한테 억대의 돈을 빌린 사실이 드러난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을 지내면서 김씨와 친분을 쌓았다. 석 전 <한겨레> 신문총괄은 2019~2020년 서울 서초구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뒤 계약금과 중도금 9억원을 빌렸다. 차용증을 쓰지 않고 이자율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가성이 없는 정상적인 거래”라고 주장했지만 <한겨레> 진상조사위원회는 “비상식적 돈거래”로 규정했다. <한겨레>는 2023년 1월9일 그를 해고했다. <한국일보> 전 편집국 고위 간부는 2020년 5월 김씨한테서 주택구입자금 1억원을 빌렸다. <한국일보>는 이자 지급 시기나 이자율이 통상적 수준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해 1월12일 그를 해고했다. 이 간부는 차용증이 있는 등 ‘정상 거래’라고 주장하며 회사를 상대로 해고 무효 소송을 냈다. <중앙일보> 전 편집국 고위 간부는 2018년 김씨에게 8천만원을 빌려준 뒤 7개월 뒤 이자를 포함해 9천만원을 돌려받았고, 2020년엔 1억원을 빌렸다. 그는 2023년 1월11일 사표를 내고 회사를 그만뒀다.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

김만배씨는 정말 선의로 돈을 빌려줬을까. 아니면 기자들을 관리하고 ‘보험’을 들어놓는 차원이었을까. <뉴스타파>가 공개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에는 김씨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김씨는 대장동 사업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금품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비용 좀 늘면 어때…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2020년 3월24일) 넉 달 뒤(2020년 7월29일) 대화에서는 정 회계사가 “형님, 맨날 그 기자분들 먹여 살린다면서요”라고 묻자 김씨가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 걔네들은 현찰이 필요해… 걔네들한테 카톡으로 차용증을 받아. 그런 다음에 2억씩 주고. 차용증 무지 많아. 분양받아준 것도 있어. 아파트.” 김씨는 <한겨레> 진상조사위에 제출한 서면답변에서는 “정영학과의 대화는 저의 과시와 허언이었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대장동 개발업자인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법조팀장과 <한겨레>등 언론사 세 곳의 전 법조팀장들 사이에 돈거래를 한 사실이 두 달 전 보도됐다. <한겨레>의 신뢰는 크게 훼손됐고, 기자들의 언론윤리 의식을 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들린다. 뼈아픈 내부 성찰이 우선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맥락을 짚어보려 했다. 김만배씨가 활동해온 ‘토양’은 법조기자단이었다. 돈거래를 한 기자들은 모두 법조팀장으로 있으면서 김씨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물론 모든 언론사 법조팀장이 김씨와 돈거래를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의심한다. 도대체 법조기자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검찰과 언론의 유착 의혹, 기자단의 폐쇄적 운영, 법조 취재 관행 등을 두루 짚어본 이유다. 
이를 위해 지난 한 달여간 전·현직 법조기자 22명에게 법조 취재 관행의 속살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 10여년간 문제가 됐던 법조 취재 사례도 검토했다. 김만배씨의 15년간 법조기자 생활을 톺아보고, <한겨레> 진상조사보고서도 요약해 싣는다. 느슨해진 언론윤리와 이해충돌 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언론학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언론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까. 법조기자단 문제를 다룬 것을 시작으로, 추락하는 언론 신뢰 문제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과도 머리를 맞대고 싶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