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이틀 앞둔 2023년 1월19일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버스를 탔다. 경남 창원의 최저기온은 영하 3.4도로 뚝 떨어졌다. 엿새 전만 해도 영상의 따뜻한 날씨였다. 이동민(26·가명)은 까만 정장을 입고 코트를 걸친 채 집을 나섰다. 보풀이 옷에 묻을까 싶어 목도리도 하지 않았다. 마산고속버스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를 탄 뒤 스르륵 잠이 들었다. 눈떴을 때는 오전 10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이 보였다. 이날 서울은 영하 6도. 차가운 바람이 지역이 달라졌다는 것을 더 느끼게 했다.
“아버지 세대와 선배들을 보면서 20년간 생각해왔던 미래가 무너져내렸다.” 4개월간 창원·김해 등의 지역 대기업·중견기업 등 50여 곳에 원서를 썼다. 과거에 경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다는 것은 창원 소재 중견기업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과 비슷했다. 호황은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사라졌다. 최근 창원공단에 본사를 둔 중견기업에서는 좀처럼 취업공고가 나지 않았다.
2023년 졸업 즈음에는 창원공단 소재 대기업을 중심으로 입사 제도가 공채로 바뀌었다. 창원의 일자리를 두고 전국에서 온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다. 이동민은 얼마 전 효성중공업 창원공장에 지원해 면접을 기다리다가 만난 경쟁자의 스펙을 보고 기가 죽었다. “이런 친구가 왜 이런 곳 시험을 보나 싶었죠. 학점 4.5 만점에 4.3, 인턴다섯 번. 제가 봐도 그 사람 뽑아요.” 1년 계약직을 뽑는 면접이었다. 경남 밖으로도 눈을 돌린 이유다.
이날 이동민이 면접을 보러 간 회사는 창원에 영업소를 운영하고 서울에 본사를 둔 제조업체였다.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강소기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어렵사리 찾아낸, 취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회사였다. 필기시험과 면접이 하루에 모두 진행됐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려 면접 대기 시간은 몇 시간이나 늘어났다. 예매해둔 버스표를 취소해야 했다. 연휴를 앞두고 창원으로 가는 버스표는 매진된 상황. 예매 애플리케이션을 수십 차례 새로고침 한 끝에 겨우 저녁 7시20분 출발하는 표를 구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2시. “(버스표를 못 구해서) 설날에 혼자 서울에 남게 될지도 모른다 싶었죠. 그때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어요. 이렇게 창원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
취업난은 청년 모두의 문제이지만, 지역의 청년들에겐 더 절박한 문제다. 교육부가 2020년 8월과 2021년 2월 대졸자 54만929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취업통계를 보면, 서울(70.1%)·인천(70.9%) 대졸자 취업률에 견줘 경남(65.9%) 취업률이 낮다. 경남 지역은 1인당 개인소득의 부침이 가장 심한 지역이기도 하다. 2001년만 해도, 경남의 개인소득은 울산-서울-경기에 이어 전국 4위였지만, 2020년 기준(1975만원)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최하위권이다(국가통계포털). 1위인 서울(2422만원)과 격차가 크다. 지역 경제가 쇠락하면서 청년인구 유출도 이어진다. 2023년 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국내인구 이동통계 결과’를 보면, 전국 지자체 가운데 20~29살 인구의 유출이 가장 많은 곳이 경남(16만6천 명)이었다.
경남 제1의 도시인 창원에서 대학을 다녔거나 다니는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에 주목하게 된 이유다. 2022년 10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창원을 네 차례 찾아가 취업준비생, 대학 관계자, 기업인 등 모두 20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23년 1월17일 저녁 6시20분, 경남대 후문에 자리한 ○토익학원. 40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강의실이 가득 찼다. 쉬는 시간에 임규범 원장이 자신의 취업 경험담을 풀어놨다. “저는 최종면접으로 엘지(LG)를 두 번 가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지방대 출신은 저만 있었어요. 면접 볼 때 꼭 표준어 연습하시고요. 우리끼리 있으니 잘 모르는데, 우리는 사실 표준어에 가까운 사투리를 씁니다. ‘맞지예~ 아니지예~’ 이 정도 사투리를 쓰는 건 아니지만요.” 갑자기 표준어를 연습하는 학생들로 강의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경남대 무역학과 출신인 임 원장은 외국계 무역회사에서 일하다가, 토익 강사 생활을 12년째 하고 있다. ○토익학원을 연 지는 3년이 넘었다. 그는 강의뿐만 아니라 해마다 300여 명의 취업을 관리해주는 일도 한다. 자기소개서 첨삭은 10년째 하고 있다. 토익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무료다. 그의 컴퓨터에는 수강생 이름, 전공, 학점, 토익 점수, 지망하는 회사 등이 적힌 엑셀파일이 빼곡히 저장됐다. 옛 제자들로부터 일자리 정보를 받아, 수강생에게 공유도 해준다. “서울 친구들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게 뭔지 목표 설정이 확실해요. 지역 친구들은 토익점수가 나오더라도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요.”
임 원장은 ‘어디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수강생에게 취업 컨설팅을 해주고, 면접 준비도 함께 해준다. 대학교에서도 취업률에 목을 건다. 우수한 학생을 특별히 관리해, 지역의 대기업에 취업시키는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200명 가운데 학점 좋은 학생 10~15명을 선발해요.”(이동민) 엘리트 트랙이다. 이 트랙에 오르지 못한 취업준비생은 일단 한 번 “낙오자”가 되어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취업률이 중요해진 대학이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 “대기업 가지 말고 중소·중견 기업 가서 취업률 높이라는 소리를 (학교에서) 많이 해요.”(이동민) ○토익학원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아라(24·가명)는 “학과에서 조기 취업 제안을 받았는데, 좋은 조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취업률 관리하려고 4대보험 되는 곳에 빨리빨리 넣으려는 거죠. 학교 입장은 이해하지만, 자기 딸이라면 그런 직장에 보냈을까요?” 경남대 법학과 졸업을 앞둔 그는 취업 제안을 거절하고, 다시 취업준비에 올인했다. 부산에 있는 대형 로펌에 비서직으로 취업하기 위해서다. 목표는 연봉 3천만원 직장이다. 경남대 체육 관련 학과를 졸업한 황인준(25·가명)은 혼자 취업포털 사이트를 뒤져 취업에 성공했다. “(과 친구들) 대부분이 퍼스널 트레이너로 많이 가요. 그곳을 가도 대학은 취업률에 어떻게든 끼워넣으려고 합니다.” 황씨는 학교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인서울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학교 소개로 회사 인턴을 나가는 걸 보고 부러웠어요.” 그는한 프로야구단 인턴 공고에 지원했고, 이 경력을 발판 삼아 서울의 중소 스포츠마케팅 회사에 2023년 취업했다.
2022년 경남대 취업률은 62.4%다(대학알리미). ‘유지 취업률’을 보면, 2021년 12월~2022년 3월까지 ‘1차 유지 취업률’은 90.5%였으나 2022년 11월 조사한 ‘4차 유지 취업률’은 78.6%로 급감했다. 수도권에 있는 성균관대의 경우 2022년 취업률이 78.5%, 1차 유지 취업률 96%, 4차 유지 취업률 91.1%로 취업한 뒤 이탈이 많지 않았다.
대학교가 ‘취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흐름에 지방대도 절박하게 나서고 있다. 경남대도 마찬가지다. 경남대는 2022년 한국어문학과, 영어학과, 사회학과,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등 6개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정치외교학과와 경찰학과는 통합했다. 2023년에는 중국학과, 환경에너지학과도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다. 취업에 유리한 스마트기계융합공학과 등 4개 학과를 새로 만들었다. 앞서 2021년 작업치료학과, 2022년 보건의료정보학과 등 보건계열 학과를 신설했다.
구영조(27·가명)는 창원에 있는 연구소에 데이터 분석 직무로 취업했다. “(사회학과에) 재학할 때도 학부 인원수가 적었는데 점점 정원 미달이 되니 폐과는 당연한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저는 운이 좋다고 생각해요. 군대 전역하고 2학년으로 복학하니, (데이터 분석을 가르쳐주는) 교수님이 계시더라고요. 교수님이 아니었으면 아마 자퇴했을 거예요. 3학년 말이 되어 어떻게든 창원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봐야 하겠다, 그래서 데이터 분석 이거 하나만 붙잡았어요.” 지역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주던 창원공단이 흔들리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인근 지역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의 불안감도 커진다. 2021년 기준 창원시 일자리의 중추인 제조업 전체 매출액은 84조5750억원으로 2년 전보다 10조원 가까이 줄었다. 매출이 줄어드니, 신규채용도 잘하지 않는다. 창원공단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29살 이하 비중도 9.2%(2021년 기준)로, 2019년 10.5%보다 줄었다. 창원시 제조업 사업체 1만274곳에 ‘1년 이내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 있냐’고 물은 조사에서도, 응답 업체의 26.9%만 ‘그렇다’고 했다. 이마저도 전기장비, 자동차, 기타 운송장비 업체 신규 채용 인력 25% 정도는 임시·일용직으로 뽑을 예정이다.(‘2021년 기준 창원시 경제지표조사(제조업) 보고서’)
대학 진학보다 대기업 생산직 취업을 먼저 선택한 청년들 역시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정의석(28·가명)은 창원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대를 다녀와서 2018년 한국지엠(GM) 생산직으로 취업했다. “멀리서 보면 (이름 있는 회사라 좋을 줄 알고) 희극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비극이었어요. 비정규직이 많이 잘려나가고, 공장이 문을 닫고.” 정의석은 현재 창원대 무역학과를 야간으로 다니며 다른 곳에 취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생산직 친구들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꼰대, 중공업, 미래 없는 사업, 저임금, 창원공단의 한계’ 같은 단어가 눈에 띄었다.
예전과 같은 ‘스펙’으로 취업을 준비하더라도 일자리의 질은 떨어진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 일자리를 구하려던 경남대생 박동한(27·가명)은 고졸 자격으로도 가능한 생산직에 취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취업 안 된다, 미치겠다 하며 중소기업에 취직해야 하나 했는데, 중소기업에서도 퇴짜 맞았요. 창원공단에선 ‘생산 오피(OP) 어떠세요’라는 말도 들었어요. 생산직을 그럴듯하게 말하며 사회초년생을 속인 거지요. 생산직종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사무직종을 원해서 갔는데 자존심이 너무 상한 거예요.” 2020년부터 3년간 취업 준비를 한 박동한은, 50군데 원서를 쓴 끝에 2023년 초 창원에 있는 한 기업에 영업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창원 출신의 엔지니어 ㄴ씨는 2011년 창원공단에 본사를 둔 자동차부품 회사에 취업했다. 회사가 서울에 연구소를 세우면서, 연구원인 그는 고향을 떠났다. “요즘 산업 추세가 중공업이 죽어가고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배터리 쪽이 늘어나다보니 창원공단이 힘들어진 거예요. 저도 창원 지역 회사로 이직할 생각이 있지만, 자동차부품 회사는 많은데 연봉이 맞지 않아 쉽지 않
아요.” 그는 고향 후배들이 창원공단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2년 국세통계연보의 ‘시·군·구별 근로소득 연말정산 신고현황’을 보면, 서울의 1인당 평균 급여 총계는 4676만원이고, 창원은 3986만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평균 1인당 급여총계는 4044만원이다. 입사 3년 이내 창원시 제조업 신규직원 평균 임금은 연봉 3천만원 미만이 69.4%를 차지했다(그림 참조).
본사를 창원에 둔 기업들도 소개·면접 중심에서 공채로 채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 “엄청난 딜레마예요. 서울에 올라간 친척들은 (서울이 집값도 물가도 비싸고 버티기 힘드니) 오지 말라고 하는데, 지역에 일자리는 없고. 옛날에는 경남대, 창원대 기계공학과만 나와도 창원공단에서 서로 데려가려 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이제 부산도 경제가 죽어버려서 (부산대 취업준비생도) 창원공단으로 넘어와버렸어요. 그렇게 (창원의 대학생들은) 밀려나는 거죠.”(이동민)
서울 집중 현상이 심해지면서, 기업들이 창원에 본사를 두더라도 영업 중심은 수도권으로 이동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영업직의 경우는 당연히 취업자도 서울·수도권 중심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창원에 본사가 있는 현대위아는 영업직을 경기도 의왕에서 뽑는데, 주 2회만 창원에 내려와 영업 업무를 한 뒤 다시 돌아가요. 품질생산, 사무 쪽도 마찬가지예요.”(정의석)
창원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사업을 하는 정민영 아이웍스 대표는 경남 지역 출신을 먼저 고용하려고 노력한다. 영업망 확보를 위해 아이웍스 역시 서울사무소를 운영하지 않을 수 없고 인재 역시 서울사무소에 모인다. 경력을 쌓은 뒤 창원으로 돌아와서 일하도록 하는 방안을 지역 인재 채용 차선책으로 삼고 있다. 정민영 대표 역시 경남 출신으로 경남과기대를 나와 창업했다.
“벚꽃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고 해요. 대학이 망하면 젊은이가 없죠. 젊은이가 없으면 지역도 산업도 망해요.”(정민영) 아직 대학이 망하진 않았지만, 청년들은 하나둘 이미 ‘벚꽃’
많이 피는 창원을 떠나고 있다. 창원에서 태어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강가연(25·가명)은 창원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면 돌아오고 싶다. “어릴 때부터 ‘인서울’이란 단어를 많이 들었어요. 서울로 가야 성공하는 거다 등등. 그래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상상한 것과는 좀 달랐어요. (지하철 2호선을 타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매일매일 살아갈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일자리는 창원에 없다.
강가연은 서울에서 인턴십 자리를 구했다. 그래도 미래의 창원에는 원하는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1월19일 서울까지 ‘원정 면접’을 보러 갔던 이동민은 그 뒤로 경기도 시흥과 김포, 대구 등 다른 지역으로도 눈을 돌렸다. “시흥이 창원보다 작은 도시이긴 하지만 제가 원하는 직군에 취업할 수도 있고 기업에서 영업용으로 차량도 주고 주거비도 매달 20만원씩 지원해준다고 해요.” 그는 시흥공단에 위치한 기업의 최종면접을 1월 말 보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창원=글 이정규 기자 jk@hani.co.kr, 사진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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