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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반대 단체에 대전 인권센터 맡기나?

대전·세종시, 반인권 개신교 단체에 인권·청소년 단체 맡겨
등록 2023-01-25 11:45 수정 2023-01-26 05:08
75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대전인권비상행동이 2022년 12월6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인권센터 수탁기관 선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75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대전인권비상행동이 2022년 12월6일 대전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인권센터 수탁기관 선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교회와 가정을 파괴하기 위한 사탄의 전략이다.”

대전송촌장로교회의 박경배 담임목사는 2018년 10월28일 ‘가증한 일, 동성애’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동성애가 인권일까? 나 개인이 행복하다고(행복해지기 위해) 사회적·도덕적으로 인정할 수 없고, 법적 체제를 무시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정직운동’을 주요 사업으로 내걸고 2015년 발족한 한국정직운동본부의 대표도 맡고 있다. 한국정직운동본부 역시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앞장서왔다.

“동성애는 타인에게 해 끼치는 행위” 주장

이 단체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건 2022년 11월 대전시인권센터의 새 수탁기관으로 선정되면서다. 대전시인권센터는 ‘대전시 인권보장 및 증진 조례’에 따라 설치된 인권 교육·홍보 전문기관이다. 2017년 개소 때부터 대전와이엠시에이(YMCA)유지재단이 운영해왔으나, 5년 만에 수탁기관이 바뀌었다. 새 대전시인권센터장은 바른군인권연구소장인 김영길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자신의 저서 <인권의 딜레마>에서 “양날의 칼처럼 인권을 가까이 두지만, 가까이할수록 결국 자신에게 독이 된다. 이에 인권을 분별하며 적용해야 하고 구분하며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전시인권센터의 새 수탁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자 지역 시민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75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대전인권비상행동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는 인권센터 선정 과정에서 자격을 갖춘 인권단체인지 가리지 않고 서류를 통과시켰다”며 “이번 결정으로 대전 시민은 인권 피해를 입을 우려가 커졌고, 전국적으로 대전시의 명예는 심각하게 실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시 인권위원회의 민간위원 10명도 “(한국정직운동본부의) 정치색, 종교색은 보편적인 인권 가치 정립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대전시장은 수탁기관을 가치중립적인 단체로 재선정하라”고 요구했다.

인권센터뿐 아니라 대전·세종의 청소년기관들도 차별금지법 제정과 동성애를 반대하는 활동을 해온 개신교 계열 단체가 선정돼 논란이 커졌다. 대전시는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새 수탁기관으로, 세종시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와 청소년활동시설을 운영할 기관으로 ‘넥스트클럽 사회적협동조합’을 선정했다. 넥스트클럽은 대전 동구 자양동 주가사랑하는교회의 남승제 목사가 대표로 있는 청소년 교육 단체인데, 남 목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고 동성애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공공연히 내온 인물이다.

차별금지법 반대 단체엔 청소년센터 맡겨

이와 관련해 한국청소년정책연대는 최근 성명을 내 “넥스트클럽은 표면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종교단체로 보이지만 동성애 반대, 성소수자 혐오, 혼전 순결 강조, 금욕 생활 주장, 차별금지법 반대, 학생인권법 반대 등 정치색이 진한 편향적 단체이다. 어떻게 이런 단체를 선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청소년기관 위탁 철회를 촉구했다.

대전=글·사진 최예린 <한겨레>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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