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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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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진단받고 학생 자격을 잃었네

ADHD·PTSD·불안장애 대학생의 학습권 분투기… 문의하고, 게시글 남기고, 전화하고, 교수실 찾아가도 열리지 않는 ‘다른 방법’의 학습
등록 2022-12-20 01:47 수정 2022-12-20 18:33
준우가 강의실에서 힘들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사하던 책을 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준우가 강의실에서 힘들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필사하던 책을 보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대학생 우리는 학사경고가 누적돼 제적당했다. 유빈은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았다. 민재는 두 번의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에 들어갔다. 준우 역시 학사경고를 받고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왔다. 다인은 자퇴하려다 못하고 학사경고를 받았다. 2022학번인 예나는 첫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다. 이들은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불안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을 진단받았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아 정부와 대학이 마련한 학습지원제도에서 예외가 됐다. 증상을 동반한 채 일상을 사는 이들은, 가장 먼저 학점에 타격받는다. 
<한겨레21> 제1회 표지이야기 공모제 당선작은 정신질환을 앓는 대학생의 학습권이다. 정혜빈 당선자는 어렵게 수소문해 여덟 명의 정신질환 대학생을 만났다. 대학교와 전공은 다르지만, 저마다 자리에서 그야말로 ‘버텼다’고 했다. 그들은 교육 책임을 방기하는 대학도, 마땅한 인식이 없는 사회도 아닌 자신을 원망했다. 학점은 보잘것없지만 등록금은 매 학기 똑같이 들어간다. 해가 갈수록 더 많은 학생이 아파하고 있다. 이제 대학이 답할 차례다. 과락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_편집자

*기사에 나온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다인(25)은 기말고사를 앞두고 자퇴를 신청했다. 자퇴 사유로 ‘개인사정’을 선택했다. 컴퓨터 화면에 ‘학적 변동상 입력할 수 없는 기간’이라는 안내 팝업창이 떴다. 대학 입학 순간부터 하루하루가 떠올랐다. ‘합격했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 동아리에서 버스킹 때 정말 즐거웠어. 분자생물학 강의가 재밌어서 내년에는 학부연구생을 하고 싶었는데.’ 대학생활은 2년 전 불안장애 진단과 함께 ‘과거’로 박제됐다. 이유 없이 불안과 걱정에 시달렸다. 절박한 심정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고 노력했다. 하지만 다짐할수록 더욱 긴장됐고 공부해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만 18~28살 최근 5년간 우울장애 120% 증가해

다인은 온종일 긴장하고 나면 사지가 마비된 것처럼 꼼짝할 수 없었다. 한밤중 잠을 못 이뤄 뒤척이고 화장실조차 갈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다. 매일매일 준비가 덜된 시험을 치러야 하는 듯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푹 자지 못한 다음날에도 수업 출석은 꼭 했지만 강의실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인은 지도교수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학생 개인 사정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하지만 본인이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니까 포기하지 말아요.” 교수는 열심히 하는 다인에게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다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수업에 출석했고, 아파도 강의를 듣고 싶었다. 교수 말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 수업, 취업 그 모든 것의 합보다 컸다.

복학이 다시 미뤄진 뒤 민재(27)는 학교의 재미없던 것들마저 사무치게 그리웠다. 강의실에 있던 고장난 빔프로젝터, 뒤쪽으로 난 창문, 책을 올려놓던 일체형 책상, <기초공학설계> 같은 교재…. 세세한 것도 떠올랐다. 태권브이처럼 생긴 공과대학 건물, 왼팔에는 핫초코 맛집이 있었고 오른팔에는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 의자에 앉으면 사시사철 꽃을 볼 수 있었다.

민재는 우울하고 등과 팔에 무거운 물건을 올려둔 듯한 만성통증에 시달렸다. 통증이 심할 때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효과 있는 항우울제를 먹으면 속이 메스껍고 어지러웠다. 휴학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계속 재발됐다. 아파도 복학하고 싶은 이유를 민재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소속된 집단이에요.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며 작은 성취라도 느끼고 싶어요. 치료 속도가 느려서 자퇴도 고민했어요. 우울장애 진단을 받은 뒤 망망대해에 남겨진 기분이라 기다리는 배라도 있는 게 낫겠더라고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급변하는 교육환경에 놓인 대학생의 정신건강을 두고 ‘코로나 학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대학생들이 낯선 캠퍼스 생활에 우울감을 호소한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최근 5년간(2017~2021년) 대학 재학 연령에 해당하는 만 18~28살에서 정신질환이 크게 늘고 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 제공, 35쪽 표1 참조) 2021년 우울장애 환자(17만8867명)는 2017년에 견줘 120%, 공황장애 환자(3만2471명)는 102% 늘었다. 해마다 양극성장애(조울증) 환자(2만8089명)는 17%,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2만5431명)는 30% 증가했다.

장창현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파악한 수치보다 실제 정신질환을 가진 대학생이 훨씬 많을 것으로 봤다. “정신과 이용률과 상관없이 그 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정신질환은 급성기 질환과 달리 환부를 수술하는 방식으로 치료되지 않아, 질환자는 증상을 동반한 일상을 살게 된다.”

전공 교재 대신 꺼내든 ‘수능 특강’

예나(20)는 학교 건물의 화장실에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험을 치다가 갑자기 공황발작이 일어났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해 대학에서 참다운 인재로 성장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2학번 예나의 입학식은 비대면으로 열렸다. 학장의 격려와 달리 팬데믹이라는 재난은 예나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입학식을 치르고 얼마 되지 않은 3월30일, 코로나19에 확진된 예나는 7일의 격리기간이 지나서도 이상증상이 계속됐다. 호흡곤란과 가슴통증, 만성피로와 멍하고 무기력한 증상이 이어지는 ‘롱코비드’였다.

“만 보를 걸어도 끄떡없었는데 코로나 이후 백 걸음도 걷기 힘들더라고요. 학교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지 못할 정도예요.” 일상활동이 불가능한 상태는 심리적으로도 예나를 위축시켰다. 학과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를 맺는 일도 거의 없었다. 수다스럽던 예나의 주변에 자신의 가쁜 숨소리만 남았다. 예나는 자신이 건강하지 못하다, 다시는 코로나19를 겪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사람이 많은 장소로 가면 숨이 가빠졌다. “학교에 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많았어요. 확진된 날처럼 식은땀이 나고 숨쉬기가 어려웠어요.” 학생이 가득 찬 강의실도 예나에겐 ‘불안’이 엄습하는 장소였다. “누군가 기침 소리만 내도 신경이 예민해지고 다시 감염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요.”

시험 시간, 분명히 아는 내용인데 답안을 작성하지 못했다. 볼펜 굴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것 같았다. 예나는 강의실을 뛰쳐나가 화장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교수를 찾아가 공황장애로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교수의 대답은 차가웠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예나는 수강 신청한 과목 중 절반인 4개의 교양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다.

학습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인 교육받을 권리에 속한다. 교육기본법 제3조는 “모든 국민은 평생에 걸쳐 학습하고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학습권’을 명시한다. 의무교육은 물론이고 모든 교육을 포함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특수교육법)을 통해 장애인 역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적합한 교육을 받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정신장애 환자(정신질환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학에서 장애학생 지원은 신체장애를 위한 경우가 많다.

우리(28)는 9월 모의고사 문제를 풀었다. 연신 동그라미를 치며 채점하면서 쾌감을 느꼈다. 어느 날부터 우리 책상 위에 전공 교재 대신 ‘수능 특강’이 자리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쳐서 다른 대학에 갈 생각은 없다. “제가 공부를 잘했던 사람임을 기억하고 싶어서 도망치는 거죠. 대학 공부는 제가 노력해도 따라갈 수 없거든요.”

우리는 집중하는 시간이 짧은 ADHD다. 강의 중에는 다른 학생의 기침 소리, 향수 냄새, 스마트폰 진동, 창문에 부딪히는 비까지 모든 자극에 주의를 빼앗긴다. 수업 시작 30분이 지나면 우리는 몸을 앞뒤로 흔들고 집중하려 화장실에 가기 위해 일어선다. 그러면 교수의 핀잔이 와서 마음에 박힌다.

글을 읽기 어려운데 전자우편으로 연락하라는 교수

우리는 고교 시절에 무리 없이 수업 진도를 따라갔다. 공부 내용이 교과서와 참고서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자막이 지원되는 교육방송(EBS) 강의도 도움이 됐다. 대학 과목은 교재만 보고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어 모든 강의를 녹음하는 방편을 택했다. 하지만 학사경고가 쌓여 결국 제적됐다. 학사경고장에 쓰인 ‘성적불량’은 빨간색이었다. “저에게 정신질환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 같아요. 학점이 미래에 미칠 타격도 있겠지만 그보다 당장 느끼는 좌절감이 커요. 그게 증상을 악화하고요.” 교수에게 강의 내용을 활자로 제공해달라고 해봤지만 교수는 “청각장애인도 아니면서 활자 자료가 왜 필요하냐”며 모멸감을 줬다.

유빈(27)은 노트북 앞에서 실시간 동영상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매분 ‘새로고침’을 눌렀지만 변화는 없었다. 유빈은 나중에야 1학기 중간고사 이후 대면수업으로 전환됐음을 알았다. 유빈은 A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교수님, 공지글을 이해할 수 없어 오늘 수업이 대면인지 알지 못했어요. 다른 방법으로 공지를 받을 수 없을까요?” A교수의 답변은 이랬다. “외국인 학생인가요?” 아니라고 답변하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결석이 질병 때문이라면 진단서를 제출하세요.”

“공지를 읽지 못하는 저도 문제지만, 왜 공지를 읽을 다른 방법은 마련해주지 않을까요?” 유빈은 3년 전 양극성장애를 진단받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스트레스가 더해지자 집중력이 낮아져 글을 읽기 어려운 증상도 나타났다. 유빈이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 질문을 남기자 A교수는 전자우편으로 연락 달라는 댓글을 남겼다. 글을 읽는 게 어렵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A교수에게 유빈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수신음만 끝없이 이어졌다.

다른 강의에서도 고충이 이어졌다. “진도 나갈 내용을 예습해 오세요.” “교재 한 챕터를 읽고 요약해서 온라인 강의실에 제출하면 됩니다.” 낱말마다 빗금을 치며 읽었지만 문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유빈은 머리가 하얘졌다. “교재를 그대로 옮겨 적으면 감점됩니다. 내용을 요약하세요.” 유빈은 B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감점은 불가피할 것 같으니 과제를 제출하지 마세요.” 게시글을 남기고, 전화를 걸고, 교수실을 찾아갔지만 메아리만 되돌려보내는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유빈은 팬데믹 3년 동안 두 차례 학사경고를 받았다.

대학은 누리집에서 ‘장애학생 지원 내용’을 안내한다. 서연(22)은 대학 누리집에서 내용을 보고 희망을 가졌다. 서연은 ‘조용한 ADHD’를 가지고 있다. ‘과잉행동’보다 ‘주의력결핍’이 두드러진다. 서연은 등록한 4개 학기 중 2개 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다.

누리집에 따르면 장애학생은 학습도우미를 통해 수업 내용 대필이나 대본 제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시험 볼 때도 대안적 평가 방법을 제시하고 별도의 시험장소나 시험시간 연장을 신청할 수 있었다. 진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장애학생은 튜터링 프로그램으로 보충학습도 받을 수 있었다. 서연은 단과대학에 학습지원을 문의했다. “장애인 증명서를 지참해서 장애학생지원센터로 방문하세요.” 서연은 되물었다. “장애인 증명서요?” 서연이 ADHD를 증명받을 길은 멀고도 험하다.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은 특수교육대상자에는 포함되지만 장애학생, 즉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의 정의에는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2021년 4월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복지서비스 수급권을 폭넓게 보장한다는 취지로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8개 질환(조현병, 양극성 정동장애, 재발성 우울장애, 조현 정동장애, 기질성 정신장애, 강박장애, 투렛장애, 기면증)만 정신장애로 인정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 예나, 불안장애를 가진 다인, 그리고 ADHD를 가진 우리와 서연은 해당되지 않는다. 또 정신장애는 1~2년 이상 지속적인 치료에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착됐을 때 장애를 진단하고 인정하게 돼 있다. 일종의 유예기간을 두고 지켜보는 셈이다. 한국정신장애연대 권오용 변호사는 “정신질환자 중 10%만 정신장애로 등록할 수 있다”며 “오랜 기간 성실히 내원하기 어렵고 부작용으로 약을 끊는 정신질환자도 많은데 의료적 판단에 치중돼 있다”고 말했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듣는 대학생. 한겨레 김혜윤 기자

비대면 온라인 강의를 듣는 대학생. 한겨레 김혜윤 기자

대학 35곳 중 23곳 “정신질환 대학생 지원 안 돼”

“끝이 보이지 않아. 출구가 있긴 할까. 발이 떼지질 않아. 잠시 두 눈을 감아. 여기 내 손을 잡아. 저 미래로 달아나자” 수민(24)의 메신저에 친구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라이프 고즈 온>(Life Goes On)을 보냈다. 수민은 노래를 듣지 않았다. ‘미래’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같이 느껴졌다. 수민은 복학을 앞두고 공부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전의 강의실에서 느꼈던 절망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수민이 찾아간 교육부 블로그에선 ‘학습의 장벽을 넘는 일을 함께 한다’고 적어놓고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로 신청하라고 안내했다.

“수업보조나 대필지원을 받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수민이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근로학생이 전화받아 담당 직원에게 연결해주는 동안 손에 땀이 찼다. “우울장애가 있어 강의를 듣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교육활동 지원이라는 게 있던데 받을 수 있을까요?” 직원은 곧바로 답변했다. “장애등록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데 알아보고 연락드릴게요.”

정부는 장애등록을 하지 않은 학생도 각 대학 특별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원하도록 했다. 관련 규정이 있지만 실효성 있는 지원으로 이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한겨레21>은 ‘2020 장애대학생 교육복지지원 실태평가’에서 최우수 등급과 우수 등급을 받은 4년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정신질환 대학생이 학습지원을 받은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35쪽 표2 참조) 전체 110개 일반대학 중 응답한 35개 대학에서 31개 대학은 ‘지원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23개 대학은 ‘정신질환 대학생이 아예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희대는 “정신질환을 가진 학생은 장애학생지원센터보다 교내 심리상담센터를 많이 찾는다. 대학은 이곳에서 학생이 정신건강을 증진하도록 돕고 있다”고 밝혔다.

‘등록장애인 외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 12개 대학 중에서도 8개 대학은 ‘전례가 없다’고 답했다. 지원이 가능하다고 한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 담당 직원은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된다”(서울대·이화여대)고 입 모아 말했다. 규정을 명확하게 할 책임이 대학에 있음에도, 직원과 교육자의 재량에 맡겨졌다. 이화여대 쪽은 “예산이 들지 않는 방식으로 도왔다”고 했다. 하지만 “교수자에게 학생의 고충을 전달해 이해를 구하지만 판단은 교수자가 하니까 어떤 도움을 받는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지원을 거부하며 예나에게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이유를 댄 교수처럼 ‘형평성’은 아주 쉬운 변명이 된다. 서울대 쪽은 “한 명을 지원하면 앞으로 비슷한 경우의 다른 학생들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고 했다. 학생도 같은 조건에서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지원’이라는 개념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이 많다. 충북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은 말한다. “학생들 쪽에서 오히려 꺼려요. 대학생활에 어려움이 있어도 센터 담당자나 다른 학생, 교수한테 장애를 알리면서까지 지원받고 싶지 않아서죠. 본인의 장애를 부정하는 경우도 많고요.”

“노력해도 의미 없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준우(26) 역시 자신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공정’에 대한 강박은 ‘능력’만이 절대적 가치 기준이 되는 사회의 다른 말이다. 준우는 대학 1학년 때 양극성장애와 공황장애를 진단받았지만 자신이 정신질환을 가진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가족과 의사는 준우에게 휴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준우는 다른 친구들을 보며 혼자만 멈춰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뇌의 도파민 전달을 자극한다는 찬물 샤워를 하고 명상음악을 들으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햇빛을 받으며 산책하는 습관이 정신건강에 좋다기에 여유 있게 학교로 출발했다.

준우는 다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지만 진단은 같았다. “저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정상이란 말을 듣고 싶어서 여러 번 검사지를 작성했죠. 적어놓은 제 대답을 찬찬히 보니 노력해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애를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증상은 전형적으로 발현됐다. “전공 개론 시간에 공황발작이 일어났어요. 심장이 빨리 뛰고 온몸이 떨리는 와중에 친구들이나 교수님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아 걱정됐어요. 이후 학교 정문만 봐도 발걸음을 돌리고 싶고, 강의실에 앉아 있으면 언제 공황발작이 일어날지 불안이 엄습했어요.”

준우는 자신이 남보다 못나서 불행해진 것 같았다. “다들 힘들 텐데 저만 우는소리를 하는 것 같아요. 정신질환을 핑계로 대는 건 아닌가도 싶고요. 지금 뒤처진 건 제가 노력하지 않은 탓이죠.” 서랍 속 두 개의 학사경고 통지서를 보면 자신의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예감이 들었다. 의사는 작은 성취를 이룬 자신을 칭찬하라고 조언했다. 준우는 ‘나는 오늘 밥을 잘 먹었다’는 칭찬을 노트에 썼다가 다시 검게 칠해버렸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인은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뒤로 학생의 자격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하면 제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강의실 책상과 무난한 학점을 얻는 데까지 이르지 못했어요.” 유빈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주유소에서 일했다. 함께 일하는 고졸 노동자를 보면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려고 대학에 갔어요. 그런데 사회에서는 제 학점을 보고 의지가 약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평가할 것 같아요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요.”

장애학생의 교육복지를 연구한 한국복지대 김주영 교수는 정신질환 대학생의 학습권 보장에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어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으로 바라보죠. 법과 제도는 강제력이 있어서 그런 인식을 바로잡는 역할을 해요.” 김 교수는 법적으로 지원할 기구와 권한을 줬는데도 이를 소극적으로만 활용하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각 대학은 책임지고 정신질환을 가진 대학생에게 학습지원을 한다는 규정과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의 상태를 진단해 학습지원 필요를 이해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필수예요. 넓게는 이런 것을 감독하는 사회적 인식의 제고도 장기적인 과제죠.”

완치는 요원한데 ‘건강해지라’ 떠미는 대학

수민은 “장애등급을 받지 않은 학생은 우리가 담당하지 않는다. 상담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학은 ‘우선 건강해지라’고 말하는 듯했다. 우울장애를 갖고 살아갈 미래가 두려워지는 순간이었다. 공부할 방법을 찾지 못한 수민은 복학하는 대신 정신질환자 인권 강의를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정신질환자는 사회에서 치료받고 분리돼야 하는 사람으로 여겨져요. 그 상태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보이지 않나봐요.” 강사는 여기 있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능청을 떨었다. 좌중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수민은 강의가 끝난 후 짐을 챙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대학에서도 느끼고 싶은 동질감이었다. ‘복학하면 수업을 잘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기 어려웠다.

정혜빈 제1회 표지이야기 공모제 당선자·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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