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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싫다’는 어른들 때문에, 9살 아이가 숨졌다

등록 2022-12-09 18:31 수정 2022-12-10 00:22
사고가 발생한 지점의 추모공간. 한겨레 서혜미 기자

사고가 발생한 지점의 추모공간. 한겨레 서혜미 기자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나오던 9살 아이가 인도가 따로 없는 갓길에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사고가 일어난 스쿨존은 수년 전부터 ‘인도가 필요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던 곳이지만, 주민들이 도로가 일방통행으로 바뀌는 데 반대하는 바람에 인도 설치가 무산된 바 있다.

2022년 12월2일 오후 5시께,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3학년 ㄱ군은 학교 후문 인근 길 가장자리에서 스포츠실용차(SUV)에 치였다. 머리 등을 크게 다친 ㄱ군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당시 0.08%를 넘어 면허취소 수준이었고, 운전자는 사고 이후에도 곧바로 차에서 내리지 않고 인근 빌라에 주차한 뒤 현장으로 돌아왔다.

사고가 난 스쿨존은 초등학교 후문 바로 앞인데도 인도가 따로 없었다. 언북초에 다니는 1학년 자녀 학부모 박아무개(37)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인도는 없는데 길은 경사가 가파르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차가 다니니까 인도를 만들 수 없으면 펜스 같은 안전장치라도 있어야 했다. 언젠가 일어날 사고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북초 스쿨존은 ‘2022 서울시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명시될 만큼 사고가 예견된 곳이었다. 언북초는 2019년 10월 강남경찰서·강남구청 등에 학교 인근 통학로 안전 개선을 위해 ‘보도(인도) 설치’를 요구했지만 주민 반대로 무산됐다. 폭이 좁은 도로에 보도를 설치하려면 양방통행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바꿔야 해서 강남구청이 인근 주민들 의견을 수렴했는데, 50명 가운데 48명이 통행 불편과 과속 위험 등을 이유로 반대했다. ‘아이들 안전’보다 ‘주민 편의’가 우선이었는지, 지방자치단체도 ‘개선 의지’가 부족했던 게 아닌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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