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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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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유권자는 우파에 표를 준다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인터뷰 “비접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지속될 경우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 줄 수 있어”
등록 2022-10-19 07:43 수정 2022-10-28 13:20
<고립의 시대> 저자 노리나 허츠 교수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소외, 배제, 양극화, 극단주의를 야기하는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박다해 기자

<고립의 시대> 저자 노리나 허츠 교수는 외로움과 고립감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소외, 배제, 양극화, 극단주의를 야기하는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박다해 기자

태어난 지 3개월 된 생쥐를 우리에 홀로 가뒀다. 4주가 지난 뒤 이 우리에 새로운 생쥐를 한 마리 투입했다. 혼자 생활하던 생쥐는 새 생쥐를 반겼을까? 답은 ‘아니요’다. 고립돼 있던 생쥐는 다른 생쥐를 ‘침입자’로 인식하고 공격했다. 고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공격적인 성향이 나타났다. 2003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실험 결과다.

인간은 생쥐와 다를까. 역시 답은 ‘아니요’다. <고립의 시대>(웅진지식하우스)를 쓴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노리나 허츠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 명예교수는 “외로움과 공감 능력 감소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뇌 연구가 있다.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관점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주변을 경계하고 위협 요소를 찾는다”고 말한다.

외로움이 혐오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지점이다. 혐오가 겉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징후라면, 외로움은 이러한 증상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다. 허츠 교수는 사회적 유대가 희미해지고 고립이 심화한 환경이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고 본다. 이민자, 성소수자, 무슬림 등을 ‘적 또는 침입자’라고 주장하며 이들에 대한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정치인이 그들이다. 그는 현대사회에 만연한 외로움 때문에 어떤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고립의 시대>에서 분석했다. 2022년 11월10일 한겨레신문사 주최로 열리는 ‘제13회 아시아미래포럼-분열과 배제의 시대: 새로운 신뢰를 찾아’의 기조 연사로 참석할 예정인 허츠 교수를 10월4일(현지시각)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허츠 교수는 “외로움이 사회적 위험이라는 걸 인식해야” 하며 정치적·경제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로움을 “주변화되고 무력해진 느낌, 고립되고 배제되고 자기 자리와 지원을 빼앗긴 느낌”으로 정의한다.

2016년 영국 조 콕스 하원의원이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을 하다가 극우주의자로부터 피살당했다. 생전 외로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유지를 따라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 장관’직을 신설해 사회정책 차원에서 고독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진은 그를 추모하는 현장. REUTERS 연합뉴스

2016년 영국 조 콕스 하원의원이 ‘브렉시트’ 반대 캠페인을 하다가 극우주의자로부터 피살당했다. 생전 외로움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의 유지를 따라 영국은 2018년 ‘외로움부 장관’직을 신설해 사회정책 차원에서 고독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진은 그를 추모하는 현장. REUTERS 연합뉴스

고립될수록 포용적 민주주의 연습할 기회 줄어

‘외로움’이 어떻게 극단주의와 연결되나.

“전세계적으로 우경화되는 포퓰리즘 현상을 연구하면서 ‘왜 우파에 표를 주는가’에 대해 인터뷰했더니 ‘외로움’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를 발견했다. 의존할 친구가 없고 정치, 정치인, 제도권으로부터 단절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이들에게 투표하는 거다. 동시에 이 ‘외로운’ 유권자들은 함께할 수 있는 커뮤니티, 즉 공동체를 찾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성향이던 철도 노동자들은 자신이 ‘경제적으로 버림받았다’ ‘(민주당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자 ‘국민을 보살피는 후보는 나뿐’이라고 주장하며 ‘우리’(We)를 자주 외치는 도널드 트럼프의 캠페인을 지지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극우정당도 이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해 정치 집회를 일종의 사교모임처럼 운영한다. ‘가족’ 같은 존재임을 강조하며 소속감을 조성하는 거다. (유권자는) 이곳을 자신이 속할 수 있는 공동체로 인식한다.”

실제로 미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이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에 견줘 의지할 수 있는 친구나 이웃이 더 적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시간은 2배 더 많았다. 유럽에서도 자원활동이나 마을조합 등에 참여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낮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허츠 교수는 고립될수록 “포용적 민주주의를 연습할 기회”가 줄기 때문에 포퓰리스트가 말하는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공동체에 끌린다”고 말한다. 고립돼 타인과의 차이를 조율하거나 협력하거나 신뢰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주도권을 쥔 정당이 불평등 심화, 실업 증가 등에 무관심했고 (유권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상실된 소속감 등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한국에서도 우파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정치인이 등장했다. 다만 인종보다 성별을 매개로 편가르기를 시도한다. 실제 현 정부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를 이행하려 한다.

“성별을 (정치인이) ‘무기화’하는 현상이 충격적이다. 특히 한국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18∼29살 유권자층에서 성별에 따라 차이가 두드러지는 점이 흥미로웠다. 유럽에서도 보수 정당 지지자 중 남성이 좀더 많지만 한국처럼 두드러지게 분열돼 있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젊은’ 남성들에게서 그런 성향이 나타난 점이 독특했다. 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궁금했다). 한국은 ‘레딧’(Reddit·미국의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도 발달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률도 매우 높은 거로 안다. 실제 한국 커뮤니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통상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이 중 남성 비율이 높고 온라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세계적으로도 ‘반향실’(Echo Chamber) 구실을 하는 온라인 공간에 갇혀 다른 관점을 접하지 못해 양극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영국도 브렉시트 논쟁 때 온라인에서 (극단적인) 분열이 벌어졌다. 특히 젊은층에서 대면 활동이 점차 줄고 온라인 활동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점차 더 많은 이가 사회적으로 고립될 거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하자 생긴 일

2018년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사용 여부와 감정의 관계를 살펴보는 대규모 실험이 이뤄졌다. 두 달간 약 3천 명을 대상으로 실행한 연구 결과,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한 집단은 인터넷 자체를 덜 사용하고 대신 친구·가족 등과 직접 만나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행복감과 삶에 대한 만족감이 늘어났고 불안감과 외로움은 이전보다 더 적게 느낀다고 답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치였다.

한국의 경우 이처럼 대규모 실험을 통해 SNS 등 온라인 활동 빈도와 외로움의 상관관계를 드러낸 연구는 없다. 다만 통계청 사회조사의 ‘사회적 고립도’ 지표(‘집안일을 부탁하거나’ ‘이야기 상대가 필요한 경우’ 둘 중 하나라도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를 보면 남성이 36.6%, 여성이 31.6%(2021년 기준)로 나타났다. 남성이 느끼는 고립감이 조금 더 높다.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안티 페미니즘’ 목소리가 심화한다. 페미니즘이 남성의 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정치인들은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서 목소리를 키운다.

“남성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불안과 스트레스가 클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자신이) 정치의 장에서 체스판의 말처럼 이용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또 페미니즘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폄하하지 않으면서 남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여러 성평등 지표가 매우 낮은 국가에서 한쪽 성별의 목소리만 듣는 정당은 최악의 형태다. 보수 정당 안에서도 극단적으로 가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들과 선을 그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공화당에서도 트럼프가 지나친 이야기를 하면 내부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존재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랜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됐고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됐다. ‘관계맺기’ 방식에 영향을 미쳤을 듯한데.

“(코로나19 이전) 스마트폰 이용량이 늘어나면서 소통 능력이 저하되자 미국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에서는 ‘표정 읽는 방법’이라는 수업이 개설됐다. 미국 보스턴칼리지의 한 수업에서는 ‘직접 만나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술을 마시지 않고 의사소통하기’를 과제로 내주기도 했다. 어색함, 떨림, 긴장감, 침묵 등이 소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반된다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로 인한 단절도 (스마트폰 확산처럼) 파장이 클 것이다. 만 5살을 가르친 교사를 인터뷰해보니, 아이들이 해당 나이에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얻기 힘들어졌다고 공통으로 말한다. 한편으론 (강제적 규제 외에) 음식 배달, 온라인 요가 수업처럼 ‘비접촉 생활’이 더 편리해서 ‘선택’하는 경우도 늘어났는데, 우려스럽다. 카페에 가서 바리스타와 30초만 대화해도 외로움을 덜 느끼고 호혜적 관계를 맺으며 시민성을 기를 수 있는데 (비접촉을 선호하는) 경향이 지속될 경우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국가와 시민, 또 시민들 간의 유대가 강력할 때 제대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SNS, 온라인 플랫폼은 21세기 담배산업

공동체 차원에서 고립 심화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외로움은 정치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 사회적 신뢰가 줄어들수록 혁신성이 떨어지는데 고립감이 바로 사회적 신뢰를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고립과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이 확보돼야 한다. 도서관, 공원, 노인정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공간 인프라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뉴질랜드가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목표로 ‘행복 예산’을 편성한 것처럼 국내총생산(GDP)을 산출할 때 정신건강과 삶의 질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중독성 측면에서 ‘21세기의 담배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SNS, 온라인 플랫폼에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기업들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노동자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이직하거나 퇴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 차원에서 시도할 방안은 없나.

“일상을 ‘잠시 멈춤’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해보라. 특히 ‘다름’에 더 많이 노출될수록 더 다면적이고 현명한 인간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런던(영국)=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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